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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할인이 아니라 정가 논의 필요”
“도서정가제, 할인이 아니라 정가 논의 필요”
  • 김재호
  • 승인 2020.09.23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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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도서정가제가 긴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의 핵심은 ‘할인’과 ‘예외’가 주요 키워드다. 할인 폭을 늘리려 하고, 예외 대상을 웹콘텐츠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제도의 이름이 보여주듯, 도서‘정가’에 대한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회장(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대표)을 지난 18일 전격 인터뷰했다. 

김 회장은 “도서정가제인데도 추가 할인만을 늘려 가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며 “이제 더 이상 할인 논쟁만 하지 말고 정가 논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즉, 책에 대한 추가 할인을 얼마나 할지 논의하는 게 아니라 정가가 적정한지, 책의 공급과 이윤 분배가 공정한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도서정가제는 2014년 11월 21일 개정돼 적용해왔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재검토하도록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즉, 2020년 11월 21일은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날이다. 그런데 아직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 업계(유통, 전자출판, 웹콘텐츠, 소비자 포함)가 의견 조율을 못하고 있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대표)은
도서정가제 논의가 ‘할인’에서 ‘정가’ 논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작자와 출판사·서점에게 공정한 대가를

김 회장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생산자에게 이윤이 돌아간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책은 저작자의 창작과 저술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야 창작자에게 제대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서점과 저자와 출판사, 제본소가 과연 어떻게 책값을 분배할 것인지는 도서정가제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는 국내 학술출판의 관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책들은 대중서들에 비하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도서정가제가 없다면, 출판 기회마저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도서정가제는 책의 헌법과 같다”며 “도서정가제는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과 동일한 조건으로 책을 공급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 도서정가제 주요 쟁점별 정리

내용(현 도서정가제)

민관협의체 합의(근접)안 공동대책위 검토안
(문체부 추가 검토사항)
> 대상 : 모든 도서 * 웹툰·웹소설 등 전자출판물 특성을 고려하여 정가 표시 의무 완화 (유통사별로 코인, 캐시 등 전자화폐를 사용 중) * 문체부에서 주최 또는 예산을 지원하는 도서전에 한해,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 연재 중인 디지털 콘텐츠는 완결 전까지 도서정가제 적용 유예
> 기간 : 18개월 이내 및 경과 간행물(신간+구간) 
 * 구간에 대한 정가변경 허용 
* 재정가 허용 기준 : 18개월에서 12개월 이상으로 확대 * 발행 후 36개월 경과, 최종 판매자(시점) 주문이 없은지 12개월 경과한 장기 재고도서에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 범위 : 정가의 15%이내
(가격할인+간접할인)
* 단, 가격할인은 10% 이내로 제한
* 국가, 지자체,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는 가격 할인 
  10%까지만 제공
* 도서전 허용 할인율 확대(예 : 현행 15% → 30%)
* 전자출판물 할인율 15% → 20%로 확대(가격할인은 10%)

자료 : 한국출판인회의, 문화체육관광부 등

 *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 기관은 사회복지시설로 동일함. 
 *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재검토 후 개정해야 하며, 2017년 8월, 이해관계자들의 연장 합의에 따라 현 도서정가제는 2020년 11월 20일까지 적용됨. 

 

도서정가제는 2003년 2월 처음 도입돼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해왔다. 실제로 한국출판인회의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도서정가제가 중소 서점들에 대부분 도움이 되는 것(67.3%)으로 나타났다. 8월 19일부터 4일간, 총 4천600개 출판사와 서점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경쟁 완화, 공급률 안정 등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최근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교보문고 애독자 6천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도서정가제의 기본 취지에 59.2%가 찬성해 반대 의견(24.8%)보다 2.4배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면,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해 긍정이 36.9%로 부정 23.9%보다 많았다. 향후 도서정가제에 대해 일부 개선 보완이 62.1%로 가장 높았고, 현행 유지가 23.0%, 폐지가 15.0%였다. 도서정가제가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더 많은 것이다. 

도서정가제의 핵심은

동일한 가격 동일한 공급

이윤 분배의 공정성 

 

김학원 대표의 주요 주장은 이렇다.

현재 도서정가제의 논의는 할인과 예외에만 치중돼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할인이 늘어나 이윤 분배 방식이 복잡해지면 계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에게 공정하게 제 몫을 배분하기 위해서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

얼마가 정당한 도서의 정가인지, 책의 공급은 어떻게 해야 공정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공적인 공급망을 만들어 큰 서점이나 작은 서점 차별 없이 동일한 가격에 동일한 조건으로 책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서점들이 생존할 수 있다. 또한 학술서들이 독자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다.

책은 일반 상품과는 다른 문화적 공공재이기에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도서를 구매할 땐 책값이 아니라 저자와 내용을 보고 결정한다. 특히 도서정가제가 없다면 학술출판 생태계가 취약해질 수 있다. 인기 없는 학술서들이 출판되기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과 교육과 예술은 지식문화 생태계의 기반이며, 학술출판은 그 기반을 형성해나간다.

대학사회에서 도서정가제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책 없는 대학교를 상상할 수 없다. 교수들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역시 독자이면서 저자이기도 하다. 아울러, 책은 빌려서 보거나 기증 받는 게 아니라 제값을 주고 구매해야 한다는 인식을 형성해 가야 한다.

김학원 회장은 대학사회 역시 도서정가제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와 대학생 모두 독자이자 미래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 현재 도서정가제 개정 관련 1위 시위가 펼쳐지고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출판인회의에서는 온라인 서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문체부의 안을 보면, 도서전, 장기 재고 도서, 전자출판물에서 할인 폭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 추가 할인을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웹소설, 웹툰 등 웹콘텐츠의 완결 전 연재물은 도서정가제에서 예외로 하자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할인과 도서정가제 예외입니다. 도서정가제인데, 추가 할인을 늘려 가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저자는 정가에 따라 인세를 10%를 받습니다. 그런데 할인율을 복잡하게 만들면, 계산이 불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가격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창작자에 돌아가는 분배 방식을 정하기가 불가능해집니다. 어떤 때는 20%, 또 다른 경우에는 70% 할인을 하면 인세 지급 방식을 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출판사, 유통사, 창작자에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서 도서정가제가 필요합니다.

 

△ 도서정가제가 작가(특히 신인) 창작 의욕 및 활동을 고취해 출판문화 산업 환경에 기여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생산자에게 이윤이 돌아간다는 걸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은 저작자의 창작과 저술에 기반을 둡니다. 모든 책은 저작자 혹은 번역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야 창작자에게 제대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습니다. 서점과 저자와 출판사, 제본소가 과연 어떻게 책값을 분배할 것인지는 도서정가제에서만 가능합니다.

정부의 논리는 소비자 후생입니다. 하지만 문체부는 경제의 논리만 따지는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책의 정가가 가진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관련, 이제 더 이상 할인 논쟁만 하는 게 아니라 정가 논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추가 할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학술출판의 관점에서 도정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학술출판의 생태계 관점에서 대학도서관 등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지식문화 생태계의 기반은 학문과 교육과 예술입니다. 학술의 바탕 위에 대중문화들이 형성됩니다. 이 모든 것이 촘촘히 연결돼 있는 지식문화 생태계에서 과연 도서의 정가가 정당한 것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각각의 관점에서 정가가 정당한지, 분배가 공정하고 정당한지에 대한 논쟁으로 나아간다면 생산적인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창작자가 더 잘 저술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출판사들이 책을 잘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도서정가제가 아니라 도서할인 제한제에 가깝습니다. 현재 최대 할인이 15%인데, 이게 출판생태계 입장에선 마지노선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가 논쟁이 이뤄져야 합니다.

 

△ 도서정가제에 대해 3년마다 논의하는 건 괜찮은 것일까요?

소모적인 할인 논쟁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제272항인 3년마다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폐지, 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일몰법 조항을 폐기하거나 별도 법으로 도서정가제를 제정하는 걸 논의해야 합니다. 업계만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논쟁을 해봐야 합니다. 교육과 학문의 기본이 책입니다. 대학은 전공 중심으로 연구와 강의가 진행되지만, 책은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됩니다. 책이 디지털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간주해야 하는지 대학사회에서도 논의하고 점검해주어야 합니다.

 

△ 책이 다른 문화콘텐츠들과 다른 점으로 공공성 혹은 공익성이 거론됩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책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책을 구매할지는 저자와 내용을 보고 판단합니다. 책의 가격을 보고 구매한다는 건 설문조사를 보면 2%대에 불과합니다. 큰 출판사와 작은 출판사에 차별이 없는지, 대형 서점과 동네서점에 차별이 없는지, 창작자들에 대한 대가가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따져보는 게 시민사회의 기본 잣대입니다.

책을 선택하는 건 자기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내용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상품도 다 보거나 맛보고 난 후 구매하지 않습니다. 다만, 책만은 예외입니다. 창작자와 출판사들은 이러한 점들을 용인합니다. 책의 소비자들에게는 이미 도서관과 서점에서 무한한 독서권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와 가격 논쟁을 하면 안 됩니다. 독자들은 저자와 내용을 보고 판단합니다. 정말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내고 있는지, 책 가격이 온당한지를 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좀 더 할인을 하자고 하는 건 참 답답한 형국입니다.

 

△ 문체부에선 도서정가제에 대한 민관협의체 합의안을 도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왜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개선안을 제시한 것인가요?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20만 명 서명) 때문인가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지난 해 11월에 국민 청원에 대해서 민관협의체에서도 논의했고, 문체부 장관도 답을 한 사항입니다. 국민 청원의 시점이 올해 5월이나 6월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미 그 국민청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겠다고 논의를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선에 대해 대부분 합의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정가 도서 기한의 축소 등 부분적 완화 조치 등에 동의를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나 재논의하겠다는 건 그간 모여서 논의한 내용들이 무색해지도록 만들며, 투입되었던 시간과 인건비 등 세금의 낭비입니다.

논의의 촉발은 비문화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 지식생태계에서 사람들이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출판문화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할인 논쟁이 아니라 정가 논쟁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정한 룰이 만들어져야 큰 출판사와 서점과 작은 출판사와 서점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각 나라마다 조금씩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지점의 결이 다른 듯합니다. 한국이 롤모델로 삼아야 할 방식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서정가제는 책의 헌법과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도서를 도서관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는 국민독서권이 책의 헌법의 1조라면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조건으로 책을 공급하고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도서정가제는 2조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할인과 적용 예외를 두면서 완전도서정가제니 부분도서정가제니 등 변종의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도서정가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도서정가제의 기본은 프랑스 방식을 살펴봐야 하며, 동일한 가격과 조건으로 공급한다는 차원에선 독일의 방식을 참고해야 합니다. 도서정가 논쟁으로 가면, 첫째 정가가 공정한가, 둘째 분배가 공정한가, 즉 공급률 문제로 연결됩니다. 전국에 있는 23백여 개의 작은 서점들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적인 유통망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차원에서 공정한 조건과 분배의 방식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출판 생태계의 공정한 조건은 고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전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시대에 맞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동일한 조건과 가격을 책정합니다. 국내에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이 9천 원이라는 가격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상품처럼 시장 논리에 가격을 맡겨두어 어떤 시집은 2만원이고 어떤 시집은 3천 원을 받는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가격에 신뢰를 갖고 저자를 보거나 추천을 받아서 책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책의 할인이 아니라 정가 논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적 차원의 공급망을 만들면, 업계 내에서 공급률에 대한 기본 규칙을 자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과 학문에 기초한 학술서는 기본적으로 공급률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지금도 학술서는 85%에 공급합니다. 대학교 구내 서점들은 교육과 학술서에 대해선 적극적 배려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학술출판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반면, 대중서들은 70%에 일괄 공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동일한 가격과 동일한 조건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지역의 작은 서점들은 유일한 문화사랑방에 가깝습니다. 작가든, 서점이든, 독자든, 출판사든 책은 한 마디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살아나는 곳이 지역의 서점입니다. 이곳에 더 좋은 조건을 주지는 못할망정 망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지역에서 이야기의 꽃이 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 방식이 스마트 환경으로 변해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출판 산업의 상징인 책과 디지털 산업의 상징인 웹콘텐츠가 어떻게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정가의 기본 원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와 문화라는 측면에선 책과 웹콘텐츠는 같지만, 탄생의 배경과 운영의 원리는 다릅니다. 책의 세계가 시, 소설, 학술서, 예술서, 전문서, 실용서 등 모든 정보와 이야기가 함께 모여 있는 종합운동장이라면 최근 성장하는 웹툰, 웹소설은 그 안에 연재, 대여, 완결이 완결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용경기장입니다. 종합운동장과 전용경기장이 어떻게 조화를 이를 수 있는지, 연결점과 차별점을 검토해야 합니다.

먼저 웹툰, 웹소설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분야는 출판과 달리 소수의 대형 플랫폼과 다수의 플랫폼 사이에 전용경기장의 질서를 놓고 의견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질서의 방향과 안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해야하고 이 과정에서 출판계와 공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시장을 키우려고 어느 한쪽만을 살려주면 이야기의 생태계는 무너집니다. 현재 정부의 도서정가제 개선안은 웹툰, 웹소설의 연재를 예외로 하자는 것인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합니다. 책과 웹콘텐츠는 결코 분리돼 있지 않으며 서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소설가가 소설만 읽고 이야기를 창작하지 않듯 웹툰 작가가 웹툰만 읽고 그리지 않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웹툰이 그려지고 웹툰을 원작으로 소설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책과 웹콘텐츠가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들을 포기하고 어느 한쪽, 그것도 극소수의 대형 플랫폼의 이해만을 넓혀준다면 길게 보면 문화도 포기하고 시장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대학사회의 환경변화 속에서 책은 어떤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보십니까? 학술출판, 출판문화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책을 해체해버리면 어떨까요. 책은 혼자 읽으면서도 함께 네트워킹해서 연결하여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매개로 상호 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합니다. 모든 학술서는 내러티브를 갖고 있습니다. 논문과 학술서의 공통점은 수많은 데이터와 레퍼런스들이 하나의 관점과 체계로 재창조됐다는 점입니다. 체계화 된 학술서를 해체하면 다기한 형태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한 학기에 수업하는 동안 학생들과 교수가 하나의 저서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학술서는 쪼갤 수 있습니다. 기본 텍스트는 동영상이나 웹콘텐츠이거나 책을 쪼갠 일부이거나 저널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책은 집대성된 것이기에 중압감, 난해함이 많이 있는 반면 책을 쪼개고 관련한 다양한 웹콘텐츠들을 열결하면 중압감이 사라지고 열린 사고와 논의가 가능해집니다. 책이 집대성되는 과정을 겪었기에 해체하면서 50명이 한 권의 책을 쓴다고 해보면 어떨까요.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가고, 교수님들이 주 편집자가 되면서 논평을 해나가면 될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미완성된 저작물을 만들어낸다면 좀 더 새로운 차원의 교육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수사회 및 대학, 연구기관들에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도서정가제 이슈를 계기로 대학과 대학생들, 교수님들이 이 주제 관심을 갖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기회를 좀 더 넓히고 책을 쓰는 저자, 출판사, 서점들의 노력에 관심과 응원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대학 내에서부터 책에 대한 문화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은 대한민국 국민 중에 도서관의 혜택을 가장 깊고 넓게 누리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있는 그 수많은 책들을 접하며 책에 대한 관심, 저자, 출판사, 서점, 도서관의 노력에 대한 이해를 대학생 시절 문화적으로 경험하면서 저자와 내용을 보고 제값의 책을 구매하는 정가문화를 대학생 시절부터 익혀야 할 것입니다. 책은 자기의 전공부터 모든 학술분야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는 건 독자이면서 저자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책의 정가와 분배에 대한 공정성은 대학가에서 중요한 논쟁거리로 확산돼야 합니다.

일반 소비활동과 책의 소비활동은 무엇이 다른지, 왜 대학교 내에 도서관이 존재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 책들을 쓰고, 제작하고 유통한 사람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서관 없는 대학교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책이 없는 수업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책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교양강좌 형식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책의 할인만 얘기하면 모두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정한 분배의 룰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대학출판부에만 맡기지 말고, 대학교 전체에서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수들의 저술 기반이 엄청납니다. 그 분들은 학자이자 저술가로서 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아울러, 책의 기증 문화도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책의 내용을 무작위로 복사하는 행위들은 학술출판과 학문발전에 저해가 됩니다. 대학사회에서 책을 대하는 문화적 개념과 습관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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