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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지표 따라 움직이는 대학운영
대학평가지표 따라 움직이는 대학운영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4.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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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여건·제도개선에 기여…"대학운영 획일화"

지난 해 11월 서울 ㄱ대학 총장은 교육부 특성화 평가에서 전략학과의 부진과 모 언론사 대학평가 순위하락을 이유로 중도 사퇴했다. 또 ㅈ대학에서는 대학평가 결과에 책임을 지고 보직교수 전원이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학평가가 대학운영에 미치는 단적인 예다. 대학평가 결과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파급력이 커지는 만큼 대학운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즘같이 신입생 모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각 대학의 평가 결과는 '일희 일비'를 자아낸다. 자칫 대학평가의 본질은 뒤로 한채 결과에만 연연하게 만드는 '왜곡 현상'이 지속될 위험성도 커 보인다.

올해도 지방대는 교육부 대학재정지원평가 사업인 '지방대혁신사업' 선정에 매진하고 있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대학종합평가도 전국의 46개 국·공립·사립대에서 실시된다. 또 생물학생명공학과 기계공학, 신문방송학 분야는 대교협 학문분야 평가 대상이다.

이미 대교협 평가대상인 대학들은 평가본부나 자체평가위원회를 꾸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평가담당 부서는 눈코 뜰새가 없다. 평가를 받는 해에는 대학평가 대비를 위한 예산이 부쩍 늘어나기도 한다. 올해 대학종합평가를 받는 한 대학은 평가대비를 위해 예비비에 1백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고, 지난 1995년 한 대학의 생물학과는 학과평가 대비를 위해 8억 원을 지출했다.

평가가 대학에 미치는 영향력은 '평가지표'가 대학운영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수 있다. 교육부 대학재정지원평가의 '공통지표'는 최근 대학변화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평가 반영율이 높은 주요 평가지표를 보면 교원 확보율, 다양한 교육과정개발 및 운영, 교수업적 평가제의 평가기준 및 성과, 연구의 실적, 모집단위 광역화 수준, 산·학·연 협력 활성화 등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대학정책으로 강조해 온 내용들이다. 대교협의 평가방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가 지난 1996년부터 평가를 통해 재정을 차등지원하기 시작한 교육개혁우수대학 평가사업이후 8년동안 제도개선이나 시설보완, 교육여건 개선은 성과로 남는 부분이다.

가장 큰 성과는 교육여건을 나타내는 핵심지표라고 할 수 있는 교원 확보율이 는 것이다.

평가에 임하는 대학은 전임교수 채용에 의욕적이다. 지난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동안 1만2천여명이 늘어 2003년 현재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교원 확보율은 재학생수 기준 정원대비 61.5%다.

대학은 공동학위제와 연합전공, 5년제 학·석사 프로그램 등을 도입했고, 강의평가제를 도입해 교수업적평가에도 반영시키고 있다. SCI논문수는 연구성과를 측정하는 주요 수단으로 떠올라 발표 논문수는 2003년 현재 세계 13위 수준까지 올랐다.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 정책은 각 대학들이 학부단위나 계열별로 모집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한편, 사회수요를 적극 반영한다는 취지하에 산학협력을 강조해 왔다. 이외에도 교수학습 방법 개선을 위해 대부분 대학에 '교수학습개발센터'가 설치됐고, 강의실 첨단화 노력도 이어졌다. 특히 도서관 첨단화와 연계체제 강화 노력으로 지난 해 '학술정보공동활용체제'에 각 대학 도서관이 1백% 가입을 완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특성화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높였다는 점도 성과로 꼽힌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비전임 교수 채용을 대폭 늘리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고 SCI논문수는 늘어도 피인용지수는 낮아 논문의 질을 의심케 한다. 또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 정책으로 학생들이 인기학과로 몰리는 현상이 빚어져 기초학문분야의 위기가 수면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보다 교육부 평가가 대학운영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평가위원을 맡고 있는 ㅇ대학 ㄱ교수(교육학과)는 "대학마다 여건이 달라 집중 투자해야 할 부분이 다르지만 '평가지표'에 따라 집중 투자할 수 밖에 없다. 대학의 발전방향을 평가 기준과 지표에 맞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앞서나가는 대학의 경우 획일적인 평가기준의 적용으로 발목을 잡히기도 한다. P대학은 성능이 좋은 고가의 실험실습기자재를 보유하고서도 교육부가 제시한 기자재가 빠져 있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획일화에 따른 부작용은 학부제 실시에 따른 갈등에서도 감지된다. 학부제를 시행한지 10년 남짓한 시점이지만 아직도 학과제로 다시 돌아가느냐, 학부제를 계속 시행하는냐 여부를 놓고 갈등이 일고 있는 것도 학내 구성원간 논의와 합의없이 성급하게 도입된 이유도 한몫을 차지한다. 

한편, 평가업무를 담당하는 교수와 직원들은 '평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평가 때문에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 대학종합평가를 받는 지방의 한 대학은 올해 1학기에 중국 유학생 4백여명을 등록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직원 효율화가 이뤄져 줄어든 인원으로 국제교류업무를 해왔는데 자체평가 준비에 중국 유학생 유치와 등록을 위한 업무가 소홀해져 2학기로 미뤄지게 됐다. 대학입장에서는 평가준비 때문에 내실있는 대학운영에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정에 따라 대학평가가 오히려 대학발전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ㅅ대학 평가담당 직원은 "일부 제도개선이나 시설보완에 기여하였음은 인정하지만 대학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의 자발적인 발전노력을 막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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