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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의 사료적 가치
대중예술의 사료적 가치
  • 교수신문
  • 승인 2020.09.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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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리즈 '모래시계' 리뷰

드라마 모래시계, 역사적 사료로의 가치 올라가
전두환 정권 정경유착, 5·18 민주화운동 등 배경
드라마 <모래시계>(SBS 홈페이지)

유례없는 강도의 전염병, 수해, 태풍... 2020년은 훗날 지구와 인류의 역사상 대단한 해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집콕, 방콕의 시절이 연속되다 보니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패드, 스마트폰 등의 모바일 기기로 자신만의 안방극장을 만들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콘텐츠의 시청도 많지만 과거의 명작을 다시 보는 유행도 생겨나고 있다.

1995년 SBS <모래시계>를 오래간만에 시청했다. 이 드라마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65.7%(전회 평균 50.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요즘은 코로나로 거리에 인적이 드물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되던 당시 수도권의 거리도 다들 모래시계 본방사수를 위해 귀가해서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당시 SBS가 전국 방송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도권에서 먼저 방영됐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박태수, 강우석, 윤혜린. 세 인물은 각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주먹질을 잘 하는 태수(최민수)는 전교 1등 우석의 도움으로 공부에 전념해 육사 입학시험을 본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아버지가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는 기록이 연좌제로 그의 발목을 잡는다. 태수는 다시 건달의 세계로 들어가고 야당의 전당대회에 쳐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폭력을 행사하는 정치깡패로 성장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천재 소리 들으며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우석(박상원)은 법대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한다. 친구 태수가 괴한들에게 잡히는 것을 피하게 하다가 고시를 놓친 우석은 군에 입대해 특전사에 배치된다. 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우석은 법조인의 삶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아들이 판검사가 되기만을 갈망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다시 마음을 잡고 고시에 합격한다. 중앙지검 검사가 된 우석은 조직폭력배의 두목이 된 죽마고우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고약한 운명을 마주한다.  

카지노의 대부 윤 회장의 딸, 혜린(고현정)은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비인간적 면모에 실망하며 학생운동에 가담한다. 당국의 일제 검거를 피해 어촌에 숨었지만 결국 붙잡히게 된 혜린은 모진 고문에 의해 동료들의 이름을 말하게 된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배신자로 낙인찍힌 혜린은 태수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아버지 윤 회장은 권력의 끈을 이용해 태수를 삼청교육대로 보내버린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한 장면.

박정희 장기집권의 말기 1979년 10월에 일어났던 YH 사건, 전두환 정권의 정경유착 비리 등 세 주인공의 젊은 날이었던 70, 80년대의 주요 사건과 상황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7회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재현했다. 고향으로 내려간 후배를 만나러 광주에 간 태수는 군인들의 총칼에 무참히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 현장에는 시위를 진압하러 온 특전사 부대 소속의 우석도 있었다. <꽃잎>, <화려한 휴가> 등 많은 영화들이 광주의 비극을 극화했지만 <모래시계>는 80년 광주의 실제 상황을 기록한 자료화면을 절묘하게 교차 편집해 그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이 드라마의 흥행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분위기 덕분일까? 1995년 11월 16일, 육사 11기 동기생 전두환과 노태우가 구속됐고 그해 12월 국회는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조직폭력배를 지나치게 미화했거나 남녀 차별적인 장면이 종종 나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 드라마의 사료적 가치는 점점 올라갈 것 같다. 톱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의 풋풋한 시절을 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말없이 혜린을 지키고 보살피는 보디가드 역할의 이정재는 이 드라마로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들도 많이 출연한다. 김영애(태수 어머니 역), 김인문(우석 아버지 역), 남성훈(중앙정보부 간부 역),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한 조경환(검사장 역), 그리고 이 드라마의 총감독 김종학도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Art is long, life is short)”는 말에서 art는 원래 ‘의술’이나 ‘기술’을 의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 단어는 예술 전반을 가리킨다 해도 무방하다. 러시아 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이 부르는 <백학> 등의 OST도 이 드라마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공신 중 하나다. 배우들의 열연, 힘이 넘치는 촬영, 섬세한 편집 등 이 드라마의 많은 요소들이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예술가의 삶은 유한하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은 무한한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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