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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반지의 제왕』(톨킨 지음)과 환상문학의 패러다임-좌절과 환멸의 시대, 상상력이 축조한 희
[예술계 풍경]『반지의 제왕』(톨킨 지음)과 환상문학의 패러다임-좌절과 환멸의 시대, 상상력이 축조한 희
  • 교수신문
  • 승인 2001.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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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7 09:40:43
송병선 / 한국외대 강사·스페인문학

1997년 설문조사에서 영국인들은 ‘반지의 제왕’의 작가이며 현대 환상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J.R.R 톨킨(1882∼1973)을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뽑았다. 그러나 비평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비평가들은 독자들의 수준에 의문을 품으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과 질적으로 뛰어난 문학 작품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톨킨에 대한 이런 비판은 비단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 판타지 문학의 최고로 손꼽히는 ‘반지의 제왕’은 지난 50년 동안 학계에서는 계속 외면당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자들에게는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사시와 역사의 만남
‘반지의 제왕’(1954∼1955)을 쓴 톨킨은 작가일 뿐만 아니라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앵글로색슨어와 중세문학을 가르쳤다. 그의 연구서로는 ‘거윈 경과 녹색의 기사’와 ‘베오울프’가 유명하다. 그리고 소설로는 동화 ‘호빗의 모험’이 있으며,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반지의 제왕’은 바로 ‘호빗의 모험’의 후속 편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반지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가 최근 재번역 되어 다시 선보인‘반지의 제왕’은 중간계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일어난 방대한 사건을 다룬다. 이 작품은 모두 6부로 구성된 한 편의 소설이다. ‘반지의 동반자’, ‘두개의 탑’, ‘왕의 귀환’으로 나뉘어 출판되는 바람에 흔히 3부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한 편의 소설인 것이다.
‘호빗의 모험’의 주인공 빌보는 모험 중에 우연히 반지를 손에 넣는다. 간달프는 이 반지가 암흑의 군주 사우론의 힘을 담고 있으며, 사우론이 그 반지에 숨겨진 힘을 이용해 모든 중간계를 노예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암흑의 군주에게 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 반지가 만들어진 ‘운명의 산’의 용암에 그것을 던져서 파괴하는 길 밖에 없다. 하지만 ‘운명의 산’은 사우론 왕국의 심장부에 있다. 반지를 가지고 있던 빌보의 사촌인 프로도를 비롯해서 요정족, 난쟁이족, 인간들, 마법사들, 호빗들로 구성된 일곱 명이 반지를 파괴하는 임무를 띠고 여행을 떠난다. 이 작품은 善의 상징인 이들과 惡의 화신인 사우론과의 전쟁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톨킨은 작가로서의 자신을 그의 가장 유명한 단편 소설의 하나인 ‘니글의 잎사귀’(1945)의 주인공 니글과 비교한다. 이 작품에서 니글은 하나의 잎사귀를 그리기 시작하지만, 나무와 숲과 경치를 모두 그릴 때까지 그림을 멈추지 못한다. 이와 유사하게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은 상상의 언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그 언어를 말하는 종족을 상상하고, 북구와 게르만족의 신화와 핀란드의 서사시 ‘칼레발라’에서 영감을 받아 서사시와 역사를 설계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반지의 제왕’은 그가 구축하고 있던 신화의 결과물일 뿐이며, 그는 자신을 작가라기보다는 연대사가로 생각했고, 중간계의 발견자로 여겼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20세기 경향비평의 대표적 희생양이 된 작품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작품을 여성 혐오주의적 소설로 규정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현대적 세계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적이라고 평했으며, 참여작가들은 도피문학으로 선고하면서 정치성의 결핍을 지적하기도 했다. 분명히 이 작품은 선과 악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인의 행동이 선이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중세 이후 사라진 영웅적 행동을 찬양한다. 또한 선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진부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을 독자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매력은 향수에 있는 것 같다. 미니멀리즘 시대에 톨킨은 거대한 서사물을, 윤리가 사라진 시기에 영원한 윤리를 강조한다. 또한 영원한 청춘을 꿈꾸는 시대에 그는 인생의 유한성은 벌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주장하고, 권력이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플루토의 힘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그것을 믿지 않도록 가르친다.

진부한 구조에 열광하는 이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진부성에서 우리는 21세기 문학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그는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좌절과 환멸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톨킨의 문학은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의 세계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상상의 세계인 ‘틀뢴’이 실제 세상에 침투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문학이 현실과 접목되어 톨킨의 한계를 극복할 경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90년대 후반 들어 부쩍 회자되기 시작한 판타지 문학은 하나 같이 톨킨의 작품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톨킨의 작품은 항상 이해된 것은 아니었고, 제대로 모방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환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언급되지도 않던 문화, 침묵하고 있던 문화, 가려졌던 문화, 억압되었던 문화, 표현되지 못했던 문화를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고 형상화할 때에만, 우리나라의 판타지 문학은 ‘이차적 현실’을 다룬 ‘이차문학’으로 머물지 않고, 제대로 된 문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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