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닦으며』(류근조 시인, 나남, 149쪽)
안경을 닦으며
나는 오늘 모처럼 남향 창가 의자에 앉아, 자신을 찾아온 황제에게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 주문하던 디오게네스처럼 안온한 마음이 되어 본∼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이 마음의 평화는 무엇인가 마음속에 이름 모를 아름다운 선율까지 흐르는 이 한겨울 따뜻함은 어디서 온 것인가
닦아도 닦아도 더 맑게 닦고 싶은 허전함과 이 마음의 평화는 진정 어디서 온 것인가
지난 내 삶의 무게를 벗어나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처럼 한 점의 티끌도 없는 마음의 창공을 날아 본다.
류근조 중앙대 명예교수(국문과)는 시인이자 인문학자이다.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으로 등단한 류 시인은 현재도 활발하게 집필 활동을 하며 최근 열세 번째 신작 시집『안경을 닦으며』을 출간했다. 이 시집의 서두에서 그는 자신의 시적 이미지 형성이론이 “체험이 상상력 유발과 은유발생에 미치는 영향”으로 집약했다. 다시 말해, “체험이 의식지향 과정에서 상상력의 힘에 의해 재구성되어 창조해낸 이미지의 힘 그 자체”이다.
‘닦는다’는 행위는 숭고하다. 닦는 일은 어찌 보면 가장 낮은 수준의 행위다. 하지만 눈물을, 먼지를, 마음을, 새벽 창을 닦아냄으로써 현존은 의미를 부여 받는다. 류근조 시인의 시들에서 닦는다는 건 허전함을 달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일이며, 더 투명해지고 소통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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