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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이 독소로 작용할 때
관성이 독소로 작용할 때
  • 김정규 서평위원/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
  • 승인 2020.09.04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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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 뉴턴의 법칙대로 세상 만물에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에는 관성이라는 게 있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 가려는 성질이다. 


따라서 그 방향이 올바르냐, 선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냐가 매우 중요하다. 나쁜 방향 중에 하나가 ‘양극화’다. 가진 자는 점점 더 갖게 되고 없는 자는 더 쪼그라든다. 관성의 원리, 가속도의 원리가 작동해서일 것이다.


양극화의 주범은 대부분 상층부에 있다. 일류 투자은행이나 경영컨설팅회사, 대형 로펌 같은 기업들은 아이비리그 출신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로런 A. 리베라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는 『그들만의 채용 리그』(이희령 옮김, 지식의 날개, 2020)라는 책에서, 엘리트 기업들이 이렇게 채용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직원들 대부분이 미국 최고 엘리트 계급 출신이라면 그 기업의 명성과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정 명문대 동문이 많아지면 직원들 사이에 응집력과 직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도 본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트 기업의 면접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적 신호는 명문대학 졸업장, 풍부한 비교과 활동, 세련된 대화 스타일, 열정과 자립심, 자아실현에 대한 개인적 비전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비교과 활동이다. 그 집안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학부생 중 거의 절반이 미국 가구소득에서 상위 4%에 속하는 가정 출신이다. 하위 20%의 가정에 속하는 학생은 4%밖에 되지 않는다.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은 돈 많은 집 학생이 훨씬 더 많다.


실제 면접과정에서 평가위원들이 당락을 결정할 때는 업무역량 등 합리적 모델을 찾는 게 아니라고 한다. 친구나 연인을 선택할 때 작동하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케미스트리 같은 문화적이거나 감정적인 요소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피에르 브루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트 대학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채용공고나 취업박람회 같은 행사를 관심기업에게만 제공함으로써 본교 학생들의 엘리트 기업 취업률을 높이고 이를 입시홍보에 활용한다. 최상위 대학과 기업의 이런 관행은 고소득 엘리트 집단을 재생산하면서 그들만의 ‘철옹성’을 높이높이 쌓아가고 있다.

 

엘리트 집단들의 철옹성 쌓기, 이유가 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작년에 낸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는 한국사회의 권력 위계를 ‘세대’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그는 민주화가 반드시 권력의 균등한 분배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권력을 과잉 점유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편중화 내지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386세대를 ‘네트워크 위계’형 세대라고 칭한다. 수직적인 위계와 수평적 연결망인 네트워크가 결합한, 유례가 없는 슈퍼파워 형태다. 1970~80년대 민주화 과정과 시민운동 시기에 네트워크를 광범위하게 형성한 386세대가 IMF 금융위기 덕분에 산업화 세대를 밀어내고 조기에 주력세대로 등판했으나, 후배 세대에 대해서는 적절한 기회 제공을 주저함으로써 이 세대권력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경고한다. 


현 기성세대는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를 신분제로 만들어 놓고 내 자식이 그 사회의 상층부에 오를 확률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분제 사회를 해체하고 내 자식과 그 친구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만드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이철승 교수에 의하자면, 386세대는 적어도 후자를 공약하며 정치와 시장에서 집권했다. 그러나 그 세대는 오염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은 전자의 전략으로 내몰려서 모두가 끝없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에 전공의 파업 사태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표면적으로는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에 반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엘리트 제국과 386세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느끼는 건 왜일까? 감염병 시대를 극복할 정책대안이 왜 빨리 도출되지 않을까? 비정규직인 전공의들은 왜 피켓을 들었으며, 의대생들은 왜 국시를 거부할까? 후배 세대를 총알받이로 내몰아 밥그릇을 챙기는 게 아니라 진정 의료계를 혁신하려고 파업을 독려하는 것일까? 아니면, 산꼭대기 철옹성에 살면서 관성의 법칙에 물든 나머지,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걸까?·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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