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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시스템 갖춰 성평등 이뤄내야"
"돌봄 시스템 갖춰 성평등 이뤄내야"
  • 김재호 기자
  • 승인 2020.09.0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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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2020년 가을호 '코로나19가 던진 과제' 특집

 

 

“한국판 뉴딜은 삶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이뤄내기 힘들다. 
돌봄의 시스템을 갖추고 공공성을 강화하며 성평등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탈성장 전환의 요구와 돌봄이라는 화두」에서 백영경 제주대 교수(사회학과)는 한국판 뉴딜이 삶의 근본적인 대전환으로 이어지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이전부터 낮은 출생률이 보여주는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즉, 돌봄의 실종과 위기다. 특히 돌봄의 대상이 되는 유아나 아동,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공공시설이 문을 닫자 돌봄의 영역에서 배제됐다.


그래서 백 교수는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의 ‘돌봄 찬(care-full) 탈성장’에 주목한다. 돌봄의 책임이 여성들에게 부담 지워지면서 여성고용률은 남성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당장 자식들을 돌봐야했기 때문이다. 돌봄의 위기는 감염의 공포만큼이나 재난 상황이라는 게 백 교수의 설명이다. 돌봄의 위기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인, 교사와 노동자, 사회적 약자 등 전반적으로 나타났다. K-방역의 핵심 역시 돌봄의 공백이었다. 


오해 말아야 할 건 돌봄 노동을 인정한다는 게 기존의 경제체제 하에서 시장 가치를 인정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성장 자체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여기서 탈성장은 역성장이 아니라 검소한 풍요를 누리는 방향 전환이다. 가치가 무엇인지 재조정하고, 에너지와 물질의 사용을 줄이는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연대, 필요충족, 돌봄의 원리를 원칙으로 내세워야 한다. 백 교수에 따르면,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돌봄사회로 나아가는 건 돌봄민주주의나 돌봄뉴딜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돌봄의 시스템을 만들고 공공성을 강화하며 성평등을 이뤄내는 게 바로 돌봄사회가 구체화 하는 것이다. 돌봄의 민주화는 체제 및 생태적 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다. 탈성장론자들이 주장하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공공지원을 줄이고 환경오염과 극단적 부의 축적에 과세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공공기관인 학교는 취약계층 돌봄, 일자리와 급식, 양질의 교육 제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펜데믹 가운데,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위해 학교들을 폐쇄해버렸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우정과 급식, 여유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대표는 「코로나19 이후의 학교생태계는 어디로 가야 하나」에서 우리 사회에서 학교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학교를 어떻게 간주하느냐에 따라, 학교를 이용하거나 이용만 당할 수 있는 방식이 달라진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학교를 포함한 모든 곳이 양적 성장과 팽창에 내몰렸다. 


학교는 대표적 공공기관이지만 코로나19에서 정작 필요한 취약계층 돌봄, 일자리와 급식, 양질의 교육 제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학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면서 폐쇄를 선택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빈틈을 학원들이 채우고 있다. 학교에서 간헐적으로 일했던 외부 강사나 방과후교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혁신교육에서조차 학교 교육은 돌봄의 영역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공공의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평기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더욱이, 학교는 교육 전문가라는 명분하에 자신들의 철옹성을 더욱 단단히 한다. 또한 폐쇄적인 상하식 의사결정 구조를 갖춤으로 인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바라는 건 소속감을 통한 안정감과 집단지성 발휘하며 느끼는 성취감이다. 특히 학생들은 친구들과 급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여유 있는 점심시간, 매일 1시간 이상의 체육시간, 20분 이상의 쉬는 시간을 바란다. 그렇다고 학교가 돌봄을 외면한 건 아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하루 종일 가정과 학원 등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교실의 학생 수를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아이들의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소수의 인원은 관계를 협소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19 이전에도 부족했던 것들을 점검하자. 
농촌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급식과 노동력,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을 원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저밀도와 소멸위험, 농촌에 코로나 ‘이후’란 없다」에서 농촌의 비대면은 새롭지 않다고 썼다. 농촌은 코로나19 이전이나 이후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저밀도와 비대면 접촉이 흔하다. 혼자 밭에서 일하다보면, 사람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코로나19 이후에 올 것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코로나19 이전에도 부족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농촌에서 노인들은 마을공동급식, 아이들은 학교급식이 함께 밥을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건강을 챙기는 수단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먹는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농촌은 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구에 비해 좋은 먹을 거리에 접근하기 어렵다. 정말 좋은 작물들은 도시로 팔려나간다. 정작 농촌에서 먹는 것들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이다. 그래서 학교급식은 농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다. 


특히 친환경농업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들이 건강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편이다. 농민들이 맹독성의 제초제를 피하려면 친환경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뤄지자 교육청과의 계약농산물을 갈아엎어야 했다. 학교급식에 공급되는 농산물의 종류는 약 180종에 달한다. 농산물을 버리는 일은 학교급식이 중단되면 발생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나 2016년 기록적인 폭염 때 전국적으로 발생한 식중독 사고 때 학교급식은 중단되고, 관련 농가들은 통보를 받기만 했다.


아울러, K-방역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농촌의 노동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해서 한국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농촌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 역시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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