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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외국에서 성공을 선택한 화가 한스 홀바인
[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외국에서 성공을 선택한 화가 한스 홀바인
  • 교수신문
  • 승인 2020.09.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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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 헨리8세 초상'은 인물 그대로 재현하는 초상화 넘어서
극단적 각도에서 봐야만 원래 형태 알 수 있는 '왜상' 기법 사용
'대사들' 통해 두 인물의 나이와 양면성 암시
‘영국 왕 헨리 8세의 초상’-1536년경, 목판에 유채, 28x19, 스페인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소장.
‘영국 왕 헨리 8세의 초상’-1536년경, 목판에 유채, 28x19, 스페인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소장.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 아시아의 스타가 빌보드 차트에 단시간 내에 1위를 한 것은 팝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세계가 놀라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글로벌 시대에 K-팝의 새로운 방향을 열어주고 있는데 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했었기에 가능했다. 

방탄소년단처럼 혹은 세계적인 예술가나 과학자가 되기 바라지만 재능이 있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노력보다는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져만 이뤄질 수 있다. 

화가도 마찬가지다. 화가에게 성공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는 것으로 뛰어난 독창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시대를 잘 타고나야만 한다. 사회에서 인정받아야만 당대 최고 화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나 고갱처럼 사후에 예술성을 인정받기도 하지만 살아서 사회적으로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면 물감 값조차 구하기 힘들어서 작품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속된말로 개고생하는 것이다. 

해외로 눈 돌린 한스 홀바인

성공하기 위해서 천부적인 재능이 기본이지만 사회적 여건이 그렇지 못할 때에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사회를 만나야 한다. 고국에서의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사회적 환경 때문에 활동하기 힘들어지자 해외로 눈을 돌려 성공한 화가가 한스 홀바인 2세다. 그는 종교분쟁을 피해 영국에서 활동해 성공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한스 홀바인은 화가였던 아버지 한스 홀바인 1세에게 그림 교육을 받았다. 홀바인은 모델의 심리와 사실적인 묘사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면서 명성을 얻어 바젤에서 화가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종교화 의뢰를 하던 바젤의 가톨릭 교단이 종교개혁의 여파로 화가들을 고용하지 못하게 된다. 개신교는 종교화를 주문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가톨릭 교단의 주문이 줄어들자 한스 홀바인 2세는 생계가 어려워진다. 

홀바인은 영국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에라스무스의 소개장을 들고 영국으로 떠난다. 홀바인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곳으로 영국을 선택한 것이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의 추천을 받아 영국으로 이주해 한스 홀바인 2세는 영국 귀족 사회에 영향력이 있던 토머스 모아(법학자이자 정치가요 종교 사상가였던 토마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라는 약칭으로 알려진 가상 여행기 『최선의 국가 조직과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대하여』를 출간하면서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무인 지대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유토피아는 수 세기 동안 인문학과 문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 유토피아는 즉 이상적인 세계와 꿈같은 시절 행복의 섬, 먼 이국의 땅, 이상의 사회와 동의어가 되었다.)의 초상화를 계기로 영국에서 명성을 얻게 된다. 

홀바인은 토마스 모어의 도움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해 다시 바젤로 돌아오나 1529년 성상파괴령이 내려지면서 많은 종교 미술들이 길거리와 교회 앞에서 찢기거나 불태워졌다. 이런 분위기에 화가들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홀바인은 에라스무스의 추천서를 들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홀바인은 영국 체류 당시부터 후원자였던 토마스 모어(가톨릭 신자였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이혼을 강력하게 반대해 대법관직을 사임한다. 그는 1534년 국왕 지상법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해 런던 탑에 투옥되고 대역죄로 처형되었다.) 로부터 더 이상 후원은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상징물들을 주변에 배치하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영국 상류층에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홀바인의 명성은 영국 왕 헨리 8세에 관심을 끌게 된다. 홀바인은 헨리 8세의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영국 최초의 궁정화가가 된다. 영국에서 그 당시 인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탁월하게 표현한 홀바인을 필적할만한 초상 화가가 없었다.  

헨리 8세는 그에게 초상화를 주문하면서 두 가지 요구 사항을 지켜달라고 했다. 첫 번째 자신의 힘과 권위를 강조하는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이다. 

홀바인이 헨리 8세의 주문대로 통치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작품이 「 영국 왕 헨리 8세의 초상」이다.  

왕의 옷과 장신구 등 지극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정확하게 묘사해 격식을 차려입은 헨리 8세의 권위가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왕의 옷에 값비싼 금박과 은박을 여러 군데 사용해 왕의 힘을 화려한 옷을 통해 강조했다. 

홀바인은 배경을 위해 비싼 물감 푸른색을 사용했으며 배경을 정확한 공간이 아니라 모호하게 표현한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왕의 권위를 암시한다. 

이 작품은 인물의 개성이 드러나 있으면서도 초시간적 양식과 종교적인 의미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초상화 의미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헨리 8세는 두 번째로 자신의 초상화 외에 자신의 신부가 될 여인들의 초상화를 홀바인에게 부탁한다. 헨리 8세가 신부의 초상화를 부탁한 것은 왕가의 결혼은 정치적 동맹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로 다른 왕조와의 결혼은 두 사람만의 개인적인 일을 넘어서 국가의 존폐까지 생각할 정도로 외교상 중요한 수단이었다. 홀바인이 그린 신부의 초상화는 현재 3점만 남아 있다.

헨리 8세는 첫 번째 부인과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태어나지를 않자 매력적이면서 영리한 앤 블린을 만난 후 이혼하려고 들었다. 교황은 이혼 신청을 거절한다. 결국 헨리 8세는 1533년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앤과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교황의 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헤 헨리 8세는 자신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했다. 이에 영국 교회는 공식적으로 영국 국교회가 되었다. 

헨리 8세가 가톨릭을 탈퇴하자 프랑스에서 그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밀사를 파견한다. 프랑스의 당시 정황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홀바인의 「 대사들」이다. 

「 대사들」은 영국으로 파견된 프랑스 대사인 장 드 댕트빌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서 오른쪽에 있는 인물 역시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1세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 조르주 그 셀브 주교다. 두 사람은 헨리 8세가 가톨릭교회 탈퇴를 선언하기 직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영국에서 외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초상화 인물보다 사물 의미 강조
실물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커튼을 배경으로 두 남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보통 초상화에서 인물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데 홀바인은 이 작품에서 탁자를 화면 중심에 배치해 다른 작품들과 차별을 두었다. 그것은 홀바인이 초상화 인물보다는 탁자에 펼쳐진 사물들의 의미를 더 중요시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화면 중앙에 있는 비틀린 해골이다. 이러한 기법은 왜상이라고 하는데 극단적인 각도에서 보아야만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왜곡된 해골을 제대로 보려면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리 실린더나 홀바인 시대에 유행했던 유리잔을 통해 보면 제대로 된 해골이 보인다. 해골의 의미는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죽음은 가까이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 커튼 뒤로 은빛 십자가상이 보인다. 해골과 마찬가지로 초상화의 인물들이 사회적 지위와 지적 수준이 높다고 해도 그들 역시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탁자에 기하학무늬의 양탄자로 덮여 있는데 양탄자는 아나톨리아 서쪽에서 수입된 물건으로서 이들의 부유함을 상징하고 있고 탁자 위에는 과학 도구들이 놓여 있다. 천구의에는 별자리가 그려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상징하는 수탉이 독수리를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실제 천구의라기보다는 댕트빌의 애국심을 나타낸다. 그 옆에 있는 것이 원통형 달력으로서 날짜는 4월 11일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 부분 나무로 만든 기구는 시간과 천문을 측정하는 토르케튬이고 옆에 해시계는 당시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을 의미한다. 

과학 도구들은 두 사람이 탐구하는 지식인임을 암시한다. 

탁자 아래쪽 선반에는 지구본과 류트 악기 그리고 찬송가 책이 놓여 있다. 지구본에는 유럽이 가운데 있으며 댕트빌의 고향 폴리시와 그가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도시 그리고 새로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이 보인다. 지구본은 이 작품을 주문한 댕트빌의 경력과 함께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찬송가 책이 펼쳐져 있는 것은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회에 홀바인은 통합된 교회를 지지한다는 자신의 열망을 나타낸 것이다. 루트는 화합과 조황의 상징이지만 줄이 하나 끊어져 있다. 끊어진 줄은 신구교간의 갈등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그림 속에 두 인물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장치를 해놓았다. 탁자 위 주교 드 셀브 팔꿈치 아래 있는 라틴어로 쓴 책에 글은 주교의 나이 25세라는 뜻이며 대사가 들고 있는 단검에 새겨져 있는 숫자 29도 대사의 나이다. 

‘대사들’-1533년, 패널에 유채, 207x209,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대사들’-1533년, 패널에 유채, 207x209,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망토로 권위를, 커튼으로 양면성 암시

댕트빌 대사는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흰 담비 털을 댄 망토를 입고 가슴에는 왕실 훈장을 달았다. 주교는 19세에 주교가 될 정도로 정치적 인물이었다. 두 사람 뒤에 있는 화려한 커튼은 무언가를 덮어 버리는 것과 폭로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암시하는 장치다. 

홀바인은 앤 블린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만 앤 블린은 후에 딸(엘리자베스 여왕)을 낳아 헨리 8세의 이혼을 요구받는다. 그녀는 헨리 8세의 이혼을 거절하지만 얼마 후 그녀는 진위가 의심스러운 간통, 주술, 근친상간의 이유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헨리 8세와 앤 블린의 결혼은 종교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1000일의 앤’이라는 영화를 통해 더 많이 알려졌다. 

한스 홀바인 2세(1497/98~1543)는 영국에서 성공했지만 그는 고향 바젤을 잊지 못해 돌아가고 싶어 했다. 1539년 유럽 대륙을 여행하고 영국에 돌아온 후 한스 홀바인 2세는 페스트에 감염되어 결국 고향을 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항상 우물 안에 개구리다.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환경을 탓하지 말고 우물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누군가가 해줄 수 없다. 계단을 만들던, 줄을 잡던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만들 능력이 없다면 사회를 탓하지 말고 본인을 탓해야 한다.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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