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4:20 (화)
예술을 사랑한 한 철학자의 한국미 흠모(欽慕), 『韓國美의 照明』
예술을 사랑한 한 철학자의 한국미 흠모(欽慕), 『韓國美의 照明』
  • 이승건
  • 승인 2020.08.12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미의 조명│조요한 지음│열화당│374쪽

'한국미의 본질적 특성은 무엇인가' 물음에서 출발
한국적인 미의 과거·현재·미래 점검하며 진실 접근
한국미 연구 영역, 음악·무용·시가·조원 등 폭 넓혀

한국의 미는 과연 있을까요? 그리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와 같은 궁금증에 대해 이 한 권의 책(조요한, 『한국미의 조명』, 열화당, 1999(초판), 366쪽 / 2004(재판), 374쪽)은 교양적으로나 그리고 학술적으로나 샘물 같은 답변을 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저자 스스로가 ‘한국미의 본질적인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에 해답을 고구(考究)하고 있기 때문이거니와, 또한 이 분야의 선학들이 연구한 축적물들을 총정리하며 ‘우리 민족의 미의식’ 및 ‘한국예술의 정신’을 차근차근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한국예술에 투영된 한국적인 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빠짐없이 점검하며 ‘한국미의 진실’에 관해 폭넓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경 조요한 선생 생전의 모습

이 책의 저자 조요한(怡耕 趙要翰, 1926~2002)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80년에 군부독재를 자성케 하는 「지식인 103인 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당시 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에서 해직 당하시고 복직(1984년)하신 이후, 선생께서 이전부터 출강을 하셨던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강의(1986-2학기, 미학사연습)를 맡으셨을 때 입니다. 날카로운 눈매에 어진 미소를 띠며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 서양의 고전미학 원전 번호를 정확히 제시하며 무게감 있는 묵직한 대학원 수업을 하신 모습이 필자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이후 필자는 미학과 박사과정 원생으로 그리고 미술사학연구회(대우재단) 회원 및 학회 간사로서 선생님의 미학ㆍ미술사학 관련 논문 발표를 근거리에서 접할 기회를 얻기도 했었습니다.   

원래, 선생께서는 고전 그리스 철학의 연구자로서 생전에 아테네 명예시민증을 발급받으실 만큼 이 분야에 권위자이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 화백(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철학 전공자로서의 예술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통해, 일찍부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출강하여 미학 및 예술론을 강의하며 그 내용을 묶은 『예술철학』(경문사, 1973)을 출간하는 등, 철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미학 및 예술학 분야의 연구업적(동아일보사 주최 《현대 한국의 명저 100권(1945~1984)》에 선정)을 남기시기도 하셨습니다. 선생의 대표적인 연구서 중 하나인 『예술철학』이 감히 이 땅에 미학 및 예술학을 정초시킨 전문적인 이론서라고 한다면, 『韓國美의 照明』은 이런 예술철학의 관심을 한국예술작품에 적용시켜 구명(究明)하려 한 구체적인 작품론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우리의 논점에 올라와 있는 『한국미의 조명』은, 1968년에 발표한 「한국 조형미의 성격」(『예술철학』(경문사, 1973, 172~194쪽) 및 이 책의 개정판인 『예술철학』(미술문화, 2003, 201~238쪽)의 수록으로부터 그 후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탐구한 한국예술과 관련한 크고 작은 글들을 모아 1999년에 엮어 만든, ‘예술을 사랑한 한 철학자의 한국미 흠모에 관한 고백서’라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는 이 책이 출판되기 전인 1992부터 ‘93년 사이 선생님의 강의(비교미학특론, 한국미학시론 등)를 통해 이 책의 구상과 그 대강의 내용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땅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있는 소장학자들은 앞으로 더 많은 우리 예술에 관한 미학적 업적을 남겨야만 한다!”는 선배 학자로서의 충고와 함께, 대학교수로서의 약 30년 동안 선생 자신 역시 “서양미학을 강의하면서 주로 서양 예술작품의 예를 들어 왔다”고 고백하며 “우리의 것을 배워야 하겠다는 자각”( 『한국미의 조명』, 〈책머리에〉)의 토로에 공감과 감명의 여운을 맛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 책을 구상하시면서 선생께서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 듯합니다. 즉 “우리에게 부관된 과제는 이처럼 훌륭한 우리의 전통예술을 동양예술의 이해가 부족한 세계인에게 정당하게 설명하는 일이다. 한국예술의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을 비교예술학의 통로를 통해 설명하는 길이 우리에게 요청된다.”(『한국미의 조명』, 〈책머리에〉)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이와 같은 미학자로서의 포부가 읽혀서 일까요? 이 책은 우리나라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에 대비하여,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해외의 일반 독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도서들을 골라, 외국어로 번역ㆍ출판을 통해 우리의 문화를 폭넓게 홍보하려는 사업(〈한국의 책 100〉)에 당당히 뽑혀(독일어 번역서) 해당 전시회(2005.10.19.~23.) 동안 자신의 홍보대사 몫을 톡톡히 해 낸 책이기도 합니다. 

낙선재 후원(後園)의 화계(花階), 50쪽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은 장점은, 선생보다 앞선 시대의 연구자들 대부분이 한국의 전통미술을 중심에 두고 한국미론을 전개한 것과는 다르게, 서구의 후마니타스 정신이라는 폭넓은 인문교양을 바탕으로 한국미 논의의 연구영역을 미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음악, 무용, 시가, 조원 등 다방면에 걸쳐 폭을 넓힌 점이며, 또한 불교ㆍ유교ㆍ도교ㆍ무속 등 다양한 사상적 종교적 이념과의 연관 속에서 우리 전통예술의 정신성(특히 3장 「한국인의 미의식」)을 살핀 점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이 책에서 선생이 제시하고 있는 ‘한국미의 이원적 구조’, ‘비교연구의 시각’, ‘예술해석의 시도’라는 세 가지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미의 이원적 구조’와 관련해서는, 필자의 생각으론, 선생의 선학들로서 한국미에 관해 언급한 학자들은 거의 모두 한국미의 원리를 일원적인 관점에서 규명했다고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미를 비애의 미, 멋, 자연주의 등과 같은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반해, 선생께서는 한국예술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규정하고, 양자의 원리가 역사적으로 공존하면서 서로 보완해 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선배 학자들의 논의를 자신의 주장으로 각색하여 역사성과 공존성을 부여하며 한국미의 특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예술의 기본적인 특성으로서 비균제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자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 선생이 제시한 미학적 개념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연순응성 역시 미술사학자 김원룡(三佛 金元龍, 1922~1993) 선생이 한국미의 역사적 연구에서 사용한 한국적 자연주의라는 방법적 용어를 수정 보완한 개념입니다. 

최승희 〈장고춤〉 1939, 59쪽

그러나 저자인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비균제성은 북방 유목민의 삶 속에서 형성된 무교적 영향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신나면 규칙을 무시하면서 도취하는 기질과 연관된다고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전통음악인 가야금 산조에서 볼 수 있듯이, 진양조와 중모리 같은 느린 장단에서 시작해 자진모리와 휘모리 같은 빠른 가락에 진입하면 신들린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예인들의 감성에서 우리 예술의 비균제성은 꽃피우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한국미의 다른 한 축인 자연순응성은 남방의 농경문화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지모신을 섬기면서 형성된 자연신의 숭배에 따라 항상 자연을 주격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의 발로라고 해석합니다. 결국 선생께서는 이와 같은 토대에서 ‘신바람’과 ‘질박미’라고 하는 한국예술의 양대 특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며 우리 예술의 다이나믹한 성격(교차 습합되는 이원성)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한국미의 조명』과 마주하게 될 독자에게 기분 좋은 두 가지 숙제를 제의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이 책에서 목격되는 선생의 세 가지 학문적 혜안(慧眼) 중 필자가 다루지 못한 ‘비교연구의 시각’과 ‘예술해석의 시도’에 대한 정리이며, 다른 하나는 이 책 여러 곳에서 제시하고 있는 70점 이상의 우리 예술작품(도판)으로부터 우리의 얼이 서린 한국적인 뮤즈를 여러분 스스로가 만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책 읽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 전통예술혼을 오늘에 되살려 세계가 함께 하는 명품 콘텐츠로 거듭난 K-Culture의 한국적 아우라가 어떤 것인지를 인문학적 지평에서 추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이승건 (서울예술대학교 예술창작기초학부 교수ㆍ미학)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