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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구매한 장발장의 영혼
신이 구매한 장발장의 영혼
  • 교수신문
  • 승인 2020.08.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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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미제라블' 리뷰
연극 레미제라블 포스터

지난 3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고시원의 구운 달걀 18개를 훔쳤다는 ‘현대판 장발장’ 뉴스가 있었다. 누군가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은 아무리 생활고 때문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범죄행위다. 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 수준이 흉악범이나 성범죄자, 거액의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이 받는 형량과 비교할 때 지나치다는 여론이 많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장발장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에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담긴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불쌍한 사람들)은 이미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었다. 

연극 <레미제라블>이 코로나 상황의 난관을 이겨내고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중이다. 빵 한 조각 훔쳤다는 이유로 3년형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게 된 장발장. 감옥의 부당한 대우에 여러 번 탈옥을 시도했지만 형기만 늘어날 뿐이다. 19년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장발장은 당장 먹을 것과 잠자리가 필요한데 전과자 낙인찍힌 그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인 자신을 받아준 주교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은 은접시를 훔쳐 달아난다. 과연 장발장은 범죄자의 DNA를 타고난 것일까? 

경찰들이 배은망덕 장발장을 붙잡아 오자 주교는 장발장에게 은접시를 선물로 준 것이었다며 은촛대까지 가져가라고 내준다. 선의의 이유를 묻는 장발장에게 주교는 말한다. “저주에 빠져 있는 당신의 영혼을 지금 이 순간부터 신께서 산 것”이라고. 이를 계기로 장발장은 자선 사업 등을 하며 타인을 위해 살아가지만 냉혹하고 집요한 형사 자베르의 추적을 피해야 하는 도망자 신세는 계속된다. 

몇 년 후 마들렌시의 시장으로 신분 변신에 성공한 장발장은 가난 때문에 거리의 여인이 된 팡틴을 도와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병으로 죽는다. 장발장은 욕심 많은 여관 주인의 소굴에서 구박받으며 살던 팡틴의 어린 딸, 코제트를 데려와 자신의 딸로 키우게 된다. 인터미션 후의 2부에서는 성인이 된 딸 코제트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청년 마리우스, 이들이 맞는 격동의 시대가 연출된다. 공화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무기를 들고 봉기를 일으킨다. 서로를 격려하며 싸우던 시민군의 장렬한 최후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목숨을 잃었던 남부군을 연상시킨다.  

연극 레미제라블 무대

여든다섯 살 원로 배우의 원숙하고 무게감 있는 연기, 장년 배우들의 노련함, 청년 배우들의 열정, 여덟 살 어린이 배우의 끼가 넘쳐나는 무대였다. 특히 아역의 귀여운 활약은 다소 무거운 주제의 무대에 관객의 웃음을 여러 번 불어넣었다. 수십 명의 출연진 모두가 나와 무대 인사를 할 때 배우들에게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멈춘 위기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존경을 표함과 동시에 역시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들을 위로하는 소리였다. 연극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는 질문들이 있었다. 작품이 던진 화두, 장발장이 던진 독백, 그 근본적이고도 간단한 물음.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 참고 - 이 작품의 러닝타임은 2시간이 넘는다. 1부에서 사창가를 표현한 세트가 나온다. 팡틴이 고주망태 남성들에게 “놀다 가세요”라고 말하거나 남성들이 팡틴을 “창녀”라 부르며 함부로 대하는 장면이 있다. 불편한 관객들이 있을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장면이 나올 때 옆자리에 있던 학부모가 불쾌함을 표시하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작품이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보니 아이와 함께 끝까지 감상한 부모도 몇 군데 눈에 띄었다. 부모의 선택은 다를 수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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