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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의 예측보고서…대기업중심·냉전적 시각에 갇혀
반쪽의 예측보고서…대기업중심·냉전적 시각에 갇혀
  • 백일 울산과학대
  • 승인 2004.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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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삼성경제연구소의『SERI 전망 2004』

▲ © yes24
백일 / 울산과학대·경제학

경기예측 전망은 얼마나 맞을까. 불황의 높은 파고가 워낙 잦다보니 경기예측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측을 믿거나 말거나 수준으로 불신하게 된 것은 예보가 자꾸, 심지어 터무니없이 틀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엉망의 예보는 IMF사태를 전망하지 못한 1997년일 것이다. 물론 요즈음도 크고 작은 차이일 뿐 거의 항상 틀리기 때문에 사정은 별로 나아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매년 또 하나의 예측보고서들은 어김없이 생산되며 토정비결 보는 심정으로 만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SERI 전망 2004'는 많은 경기예측 보고서 중 하나다. 그러나 흔한 보고서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만만치 않은 숫자의 박사급 연구자와 당대 최고의 재벌 삼성이 직접 관장한 연구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와 국내경제를 총망라하며, 부문산업과 기업경영, 남북경협, 심지어 재난재해 시스템 전망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이며 체계적이다. '세계경기 회복국면'이라는 대 전제하에 수출호조 내수침체 현상을 2004 경기 특징으로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낙관론의 기조인데 그 이유를 미국경제 회복과 중국경제 고성장이라는 외부요인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총평에서는 국내 경제성장률 4%라는 다소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이유는 외부적 호기를 무마시키는 국내적 성장 모멘텀 약화, 즉 가계부채, 자금시장 경색, 노사불안 등의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수예측 크게 어긋나

아무래도 관심의 초점은 예측의 정확도 여부다. 이 보고서가 발간된 시기가 2003년 11월이므로, 불과 5개월 뒤에 맞춰보는 셈이다. 결과는 수출증대와 환율하락, 저금리 지속 현상은 비교적 근접하며, 내수, 물가, 유가에서는 전혀 틀리고 있다. 특히 내수예측은 불과 수개월 차이의 짧은 기간임에도 어긋나고 있어서 높은 평점을 줄 수 없다. 이것은 해석상의 단순 실수 또는 연구방법론의 한계이거나 중의 하나일 텐데, 개별연구자가 아닌 기관의 연구보고서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가 함께 틀리는 요인, 즉 방법론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먼저 지적할 것은 재벌기업 관점의 연구타성, 즉 관점의 편협성이다.

SERI는 특히 처방부문에서 재벌기업 관점을 숨기지 않는다. 예컨대 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말하지만, 그 방법은 임금상승 억제, 불법노사분규 엄격단속, 기업활동을 위한 제도개선 등 아래로 하방압력을 강조하는 식이다. 정세분석과 북핵에 대한 관점은 더욱 극단적이어서 경기예측보고서에서는 금기사항인 적대적 관점을 참으로 거침없이 드러낸다. '여권내 강경파가 득세하면 급진개혁 드라이브', 정국불안·사회갈등·경제불안과 같은 일련의 파국시나리오를 열거하거나, '한미관계를 이간시키려는 전술적 협력', '퍼주기식 거래 불가' 등 남북경협과 동북아정세에 대한 구태의 냉전적 발언이 이 보고서에서 수시로 사용되는 표현들이다.

최근 미국경기에 대한 낙관론 명백한 무리

예측오차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발출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방법론은 통계적 패턴을 사용하나 해석은 철저히 냉전 친미적 관점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성장', 경기낙관론으로 기울게 돼있다. 가령 투자위축, 주식시장 통제, 소비거품 등을 미국의 불황요인으로 지목하면서도 이를 오랫동안 누적된 미국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당장 개선할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과소평가한다. 마치 경기회복을 자신하는 케인즈안의 마법에 도취됐다고나 할까. 이른바 세계 경기 급반등, V자 회복을 기대하는 이면에는 이와 같은 냉전론적 사고가 숨어있다.

경기가 일시 좋아지다가 다시 나빠지는 더블딥(double-dip) 현상은 일반적으로 수정자본주의 출현이래 과도한 경기부양(통화지출과 적자재정)이 가져온 부메랑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본의 아니게 SERI를 평가하는 잣대가 돼버린 최근 미국경기 호전은 이러한 경기부양의 부메랑을 해소한 것인가.

최근의 미국 경기를 호경기의 신호로 보는 것은 명백하게 무리다. 왜냐하면 최근의 호경기는 9·11 테러이후 부시행정부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 군사비 지출, 재정적자, 감세 등 소비부양의 여파이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1차 이라크전 당시 1대 부시가 집행했다가 실패한 정책의 복사판이다. 이미 실패한 사례가 있는데 SERI가 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객관적 분석방법이라고 평할 수 있는가. 이런 시각적 편향은 거의 미국경기와 복제판 부침을 보이고 있는 국내수요위축에도 적용돼 예컨대 엉뚱하게 2004년 자동차 내수반등을 전망하거나 중국성장을 지나치게 기대하기도 한다. 특히 SERI는 중국성장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적자재정과 금융위기 요인은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며, 이는 최근 중국당국의 성장률감축 공표에서도 그 심각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각 산업부문의 전망 검토 돋보여

후반부는 부문 분석이다. 여기서부터는 이제까지 재벌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포괄적 기술이 돋보인다. 가령 제조업 공동화에 대해서는 대체 전략산업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생산거점 이동을 신중히 검토할 것을 솔직하게 제안하며, 사회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존경받는 기업, 기업시민정신가치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각 산업부분의 전망 검토는 개괄적 보고서 수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경제 초급자도 읽어보기를 권장할 만하다. 요즈음 탄핵사태와 엇물려 총선 예측도 호기심을 끄는 대목이다. 모호한 표현과 경우의 수를 많이 따지기는 하지만, 대략 정국불안과 다당제, 소수 여당구도를 그리는 쪽이다. 탄핵정국 때문에 거꾸로 역풍이 거세다고 하는데 경제분석가들의 실제 정치적 감각은 과연 어떨지가 궁금하다.  

 
객관성과 정확도에서 SERI는 재벌의 입장이 강하게 들어가 있는 반쪽의 보고서다. 이는 물론 SERI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객관성 보강은 대부분의 민간기업 경제예측보고서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러나 SERI는 수식과 통계에 골몰하는 근대경제학 전통의 민간보고서로서는 흔치않게 정치, 경제, 부문, 세계까지를 포괄하는 등, 그 수준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종합적 시각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둔 이 분석구도는 차후에 여타 보고서들의 귀감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보고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거친 냉전 시각, 돈냄새 풍기는 재벌기업관점은 그들이 말하는 존경받는 기업가치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는 두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한 기분을 끝내 떨칠 수 없다.

필자는 중앙대에서 '한국독점자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책과 정치경제학, 정보통신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e-맑스: 네트워크기업시스템', '사회화논의의 역사와 사회화프로그램의새로운 과제', '인터넷공황과 전자상거래 가속도의 기본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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