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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카뮈 『페스트』
코로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카뮈 『페스트』
  • 교수신문
  • 승인 2020.07.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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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알베르 카뮈 저 / 김화영 역 | 민음사 

원조 설렁탕은 몇 년이 지나 먹어도 그 맛 그대로이듯이, 고전은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도 강한 깨달음을 준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때, 꼭 읽어야 할 고전은 단연 카뮈(1913~1960) 장편소설 『페스트』다. 

카뮈는 알제리에서 ‘피에 누아르’(Pieds-Noirs)로 태어났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이주한 프랑스인과 그 2세들을 ‘피에 누아르’라고 했다. ‘검은 발’(black feet)이란 뜻의 ‘피에 누아르’는 1830년대 침공한 프랑스군의 검은 장화, 또는 포도밭에서 일할 때 신는 검은 신발과 관계있으리라 추측한다. 가난한 피에 누아르 가정에서 태어난 카뮈의 아버지는 1년 뒤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다. 피에 누아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의 배경은 모두 알제리다. 1942년에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 5년 뒤 1947년에 『페스트』를 발표한다. 이후 10년 뒤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부조리에 투쟁한 사람들 

1940년대의 어느 날,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 오랑에서 페스트가 발생한다. 사실 오랑이 아니라 뉴욕이나 도쿄나 서울이나 파리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소설은 전염병이 갑자기 퍼지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교과서처럼 서술해 놓았다. 

소설은 5부로 구성돼 있다. 페스트가 시작되는 제1부에서 모든 인물이 등장한다. 2부는 아홉 개의 장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길다. 도시가 봉쇄되자 인간의 다양한 이기심과 욕망이 나타난다. 페스트가 퍼지자 장례회사, 술집, 성당이 성황이다. 권태에 지친 시민들은 자기 집을 방화하기도 한다. 

봄날 페스트가 발생하여 1년 4개월 동안 전개되는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카뮈가 제시하는 모범적인 인간 유형이 나온다. 

첫째 인물은 페스트에 목숨 걸고 맞서는 의사 리유다. 병든 아내를 멀리 요양원으로 보낸 35세쯤 되는 리유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리유는 보건위원회를 열고 장 타루 등과 함께 고통의 진원지에서 ‘성실하게’ 싸웠다. 1년 뒤 오랑이 페스트에서 해방됐을 때 의사 리유는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둘째 인물은 ‘반항하는 인물’ 장 타루다. 타루는 외지인이고 여행객일 뿐인데 가장 먼저 자원봉사에 나서고 보건대를 조직한다. 판사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자랐지만 아버지의 판결에 실망하여, 집을 나와 떠돌이가 된 인물이다. 카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 유형이다. 장 타루는 아쉽게도 마지막에 페스트에 걸려 사망한다. 그래도 타루가 남긴 메모를 갖고 리유는 연대기를 완성시킨다.   

세 번째 인물은 취재차 오랑에 왔던 기자 랑베르의 ‘깨닫는 유형’이다. 랑베르는 파리에서 취재차 왔다가 어처구니없게 오랑에 발이 묶인다. 탈출할 방법을 찾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 그러다가 끝내,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울 수 있는 일입니다”라며 페스트에 맞서기로 한다. 랑베르는 이기적 사랑에서 공동체적 사랑을 택하는 긍정적인 인물로 변화된다. 

네 번째는 시청 직원으로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는 공무원 그랑이다. 그랑은 자살을 시도하는 코타르를 살리면서 등장한다. 비정규직 임시직원이기에 돈벌이가 변변치 않아,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급기야 이혼까지 당한다. 별로 돋아 보이지 않는 이 인물에게 ‘위대한’(Grand)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카뮈의 의도가 아닐까. 가장 평범한 공무원 그랑은 이익을 따지지 않고 방역 최일선에 나선다. 

네 명의 인물은 모두 페스트(운명)에 맞서는 방향으로 향한다. 카뮈가 말하는 ‘우리’에 포함되는 인물들이다. 의료계의 리유, 자유주의자 장 타루, 비정규직 공무원 예술가 그랑, 언론인 랑베르, 종교인 파늘루 신부, 이렇게 대표적인 인물이 당대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성실성’이다. 소설 곳곳에 ‘성실성’에 관한 문장이 곳곳에 슬며시 놓여 있다. 이 소설에 영웅은 없다. 그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부조리(absurdite)’에 ‘반항(revolte)’하는 실존주의적 인간이 카뮈가 제시하는 인간 유형이다. 부조리한 시대, 인간에게 닥치는 재난을 향해 인간이 어떻게 행해야 할까 하는 ‘다중(多衆, multitude)의 반항’ 곧 카뮈의 사상이 네 인물 유형에 담겨 있다. 투쟁이든 초월이든 도피든, 마침내 부조리한 운명에 반항하는 실존으로 표상된다. 이들은 ‘자원보건대’를 조직해, 공동선을 실천한다. ‘고통의 구심점 곁으로’ 가는 이들이야말로,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카뮈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인물들이다. 

김응교 시인,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김응교 시인,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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