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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동향 : 서울대, '한국학 장기기초 연구사업' 성과물 속속 나와
출판동향 : 서울대, '한국학 장기기초 연구사업' 성과물 속속 나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3.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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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학을 위한 해석학적 자료 구축

▲ © yes24

 

 

 

 

 

 

서울대가 연구실적이 우수한 교수들의 연구를 지원해주는 '한국학 장기기초 연구사업'이 그 구체적인 성과물들을 속속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9월에 12권을 펴냈는데, 이 책 가운데 70%가 최근 재쇄를 찍어 독자반응도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대출판부 측은 "현재 걸려있는 게 30권 정도니 올 연말이면 40권 정도에 이를 것"이라 밝혀 '한국학'을 주제로 한 가장 규모가 크고 본격적인 총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서울대는 매년 10억원을 이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지원을 받는 연구는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현재 11권이 나온 '한국학 모노그래피'는 논문보다는 길고 단행본 수준은 안 되는 '분량상 애매한' 연구주제들을 지원해 책으로 연결시켜, 논문출판의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방문학사'(조동일 지음) 한권을 펴낸 '한국학 연구총서'는 앞의 모노그래피보다 좀더 묵직한 주제와 분량으로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근대과학 형성자료' 한 권이 나온 상태인 '한국학 자료총서'는 발굴과 정리가 시급한 한국학 자료의 연구들을 속속 펴낼 예정이다. 규장각을 비롯해 먼지더미에 덮혀있는 자료들을 생각하면 그 '시급성'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 동안 서울대의 한국학 연구물 출판이 국내 최대 국립대라는 명성에 부응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동아시아학술총서'의 출간이 시작된 것과 함께 이번 총서의 시도는 늦었지만 고무적인 움직임이다. 내부위원회에서 연구성과물에 대해서는 서평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지원과 평가를 동시에 가져가고, 이를 출판과 연결시키는 획기적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은 선례로 남을 만하다. 그리고 막연하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자유주제', '기획단행본', '자료총서'로 선후를 분간해가면서 진행하는 모습은 신뢰감을 준다. 또한 대학출판부가 학내의 우수한 연구성과들을 펴냄에 따라 대학출판부 일반의 침체된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도 한몫 할 전망이다.

현재 출판된 책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古代 '예빈도'라는 그림에 나온 문제의 인물을 통해 고대 한국인물의 모습을 추적한 '예빈도에 보인 고구려'(노태돈), 현대 한국사회에서 유교 전통이 적응하는 양상을 확인한 '현대 한국유교와 전통'(금장태), 조선후기에 일어난 가족간 살해 사건들을 '진화심리학'이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통해 과학적으로 접근해본 '살인의 진화심리학'(최재천 외), 대중문화와 무협소설의 관계를 따지고 그 역사와 현재를 비평적으로 정리한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전형준), '무예도보통지', '장용영고사', '화성성역의궤', '무과총요', '정조실록' 등의 문헌에 나온 정조시대의 무예를 재조명해, 문무겸전의 현재적 의미와 연결시킨 '정조시대의 무예'(나영일), 고고학 學史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고고자료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연구한 '벼락도끼와 돌도끼'(이선복), 식민지배를 위해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각종 사회조사와 통계작업들의 의미를 사회사적으로 밝히고, 그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적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고, 동시에 그 자료의 일정한 의미도 부정하지 않는 냉정한 지식사회학적 시각"을 세우는 데 목적을 둔 '식민권력과 통계'(박명규 외), 한국의 전통 옷감염색에 사용돼 온 천연염료와 기술에 관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조사, 정리해 조상의 의복문화와 전통적 색의 세계를 포괄해본 '한국의 천연염료'(김재필 외), 통일에 앞서 남북의 의학교육에 대해 의학교육제도, 북한의 의학대학의 교육현황을 자료분석해 비교한 '북한의 의학교육'(박재형 외), 조동일 교수의 문학사에 대한 오랜 탐구의 종착점으로 지방문학사를 쓰고 있는 여러 나라의 선례를 찾고 국내의 동향을 점검한 시론적인 저술 '지방문학사' 등이다.

이런 작업에서 돋보이는 건 역시 전통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새로운 한국학을 위한 해석학적 자료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살인'이나 '무예, '무협소설' 등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나, 다른 학문분과에 의한 접근 등도 눈에 띈다. 그리고 반드시 전통자료의 현재적 의미를 엿보려 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특히 '식민권력과 통계'의 경우에는 식민지시대 연구가 갖고 있는 딜레마를 꿰뚫는 기획의 독창성과 학문적 정체성이 뚜렷하다. 다만 자료정리에 너무 진을 뺀 나머지, 해석과 의미부여는 소략해진 책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 이번 책들은 모두 후속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화계몽시대 전통시가 양식의 근대적 변혁과정'(권영민), '사할린 귀환자'(이순형), '조선시대의 간척지 개발-국토확장과정과 이용의 제문제'(박영한 외), '한국 3칸×3칸 전각의 유형과 적용'(전봉희 외), '인공위성 영상을 이용한 북한 평안남도 지역의 해안 습지 연구'(유근배 외) 등은 출간준비가 한창인 책들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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