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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인생의 교훈과도 통하는 첫사랑의 추억
[정재형의 씨네로그]인생의 교훈과도 통하는 첫사랑의 추억
  • 정재형
  • 승인 2020.07.22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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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첫사랑이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 해봤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점으로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썩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도? 처음 살아봤기 때문이다. 이석근 감독 영화 '너의 결혼식'(2018)은 이제 가물가물한 첫사랑의 기억과 그 교훈을 알려 준다. 영화는 그 첫사랑 애인과 결혼하지 못한 남자의 사연을 전해준다. 그래서 '나의 결혼식'도 될 수 있었지만, '너의 결혼식'이다. 

첫사랑의 교훈은 몇 개가 있다. 첫째,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우기만 하는 과정’이란 것. 고등학교 때 전학 온 여학생 환승희(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귀게 된 황우연(김영광)은 공부는 하기 싫고 싸움만 해댔던 불만투성이 고등학생이었다. 승희가 명문 대학에 입학한 이후 그녀를 보기 위해 자신도 불철주야 공부에 매진해 대학에 들어간다. 그녀와 사랑에 빠져 취직 시험도 놓쳐 버려 한동안 백수로 지냈다. 

남성 중심적인 영화긴 하지만 사랑에 빠진 시기의 추억은 남녀 공통일 거다. 첫사랑의 둘째 교훈. ‘연인은 힘들 때 같이 있었다’. 밝기만 한 줄 알았던 승희가 알고 보니 가정에 흑역사가 있었고 그 때문에 힘들어했다. 술만 먹으면 고주망태가 되어 집안을 때려 부수는 아버지가 골치였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엄마는 딸을 데리고 지역으로 도망 다녔다. 어느 날 우연은 다 부서진 집 안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승희를 발견하고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마치 싱글맘처럼 살았던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승희는 명문 대학에 다녔어도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접었다. 고된 알바를 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승희 옆에서 우연은 항상 같이 있었고 그녀의 알바 장소까지 차로 태워 주면서 고락을 같이 했다. 꿈을 포기하지 말란 의미로 오래전 자신에게 줬던 스케치북을 승희에게 돌려주었다. 오랜만에 자신이 그렸던 꿈꾸던 시절의 그림들을 보며 그녀는 우연의 고마운 맘을 읽고 사랑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듯, 불같던 열정적 사랑이 식어 가는 시점이 다가 온다. 언제 무엇 땜에 연인의 맘이 변할까? 여자보다 변하는 쪽은 주로 남자다. 셋째 교훈.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첫사랑에 빠진 우연은 말도 안 되는 온갖 맹세들을 한다. 하늘의 달도 별도 해도 다 따다 주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만용에 가까운 용기로 승희의 연적을 물리친 전력도 있다. 승희가 좋아했던 선배에게 주먹을 날리면서까지 그녀를 좋아하는 심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힘으로 사랑이 성사되진 않는다. 취직을 하지 못해 백수로 지내면서 우연은 신세를 한탄하며 농담 같은 실수를 한다. 승희를 만난 게 어쩌면 불운한 일이고 후회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후회한다는 말은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이 말을 승희가 엿듣게 되고 둘의 사이는 급전락한다. 쏟아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승희는 깊은 상처를 받고 절교를 선언한다.

우연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물론 본심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잘 되는데 자신만 잘 나가지 못할 때 생기는 불안 심리가 주원인이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는 말은 사실 너를 내가 가장 좋아한다는 말이다. 설령 그런 속뜻을 승희가 모를 리 없겠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자와 같이 살 수 없다는 걸 또한 잘 안다. 아버지가 왜 술만 먹으면 밤낮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했을까. 가난한 자기 처지를 사랑하는 엄마에게 풀었던 비뚤어진 남성의 습관 때문이다. 그걸 보며 자란 승희는 그런 습관을 절대 수용하지 못한다. 첫사랑이 깨진 건 아프지만 우연은 그만큼 성숙해졌으니 외려 승희에게 감사해야 한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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