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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전시관에 온 바닷속 유물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전시관에 온 바닷속 유물들
  • 교수신문
  • 승인 2020.07.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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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그래서 예부터 바닷길을 이용한 무역과 교류가 발달하였다. 가야는 바다를 이용해 철의 왕국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신라의 장보고는 완도에 설치한 청해진을 발판으로 해상왕으로 군림하였다. 바닷길에 대한 자신감은 고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바닷길을 따라 KOREA라는 이름이 세계로 뻗어나갔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경제력이 발달하고 안정적인 연안해로가 확보되면서 해상물류는 더욱 증가하였다.

그런데 바닷길을 이용한 무역은 이익이 컸던 만큼 위험성 역시 높았다. 가까운 바다는 가까운 바다대로, 먼 바다는 먼 바다대로 변수가 많아 바다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길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뱃사람들은 항해를 나가기 전 바다의 신에게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했다. 오랫동안 연안해로 가운데 황해도의 장산곶, 강화도의 손돌목, 태안의 안흥, 진도의 울돌목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손꼽혔다. 위험하다는 것은 배가 침몰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악명 높던 안흥 앞바다에서는 여러 척의 배와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박찬희

한국 최초의 수중 발굴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신안 앞바다 수심 20미터 아래 잠긴 신안선의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수중 발굴 경험이 전혀 없어서 발굴은 해군이 담당했다.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친 발굴 끝에 유물 2만 3천여 점, 동전 800만 개, 나무 1,000여 개, 선편 720조각이 바다에서 나왔다. 배는 추정 길이가 무려 34미터(현존 길이 28.4미터)였다. 현재 이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바닷속 해양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산하 기관으로 신안선을 비롯한 다양한 해양 유물을 전시하였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답게 모든 전시실에는 배가 전시되었다. 제1전시실에서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건져 올린 달리도선(배가 발견된 곳 근처의 섬 이름을 따서 배의 이름을 붙였다), 십이동파도선, 완도선을, 제2전시실에는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신안선을 볼 수 있다. 제3전시실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을 비롯한 전통 배 모형들이, 제4전시실에는 세계의 배 모형들이 전시되었다. 이 가운데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에 있는 배들이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사람과 물건을 싣고 항해를 하던 배들로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하였다. 다행히 배에 실린 도자기와 같은 유물들이 남아 있었고 나무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의 일부분이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전시실은 배를 전시하기 위해서 독특하게 설계되었다. 비록 배들은 일부분만 남았다 하더라도 규모가 작지 않아 길이도 제법 길고 높이도 제법 높다. 때문에 유물은 진열장 안에 넣어 전시하지만 배는 진열장에 넣지 않고 노출시켜 전시한다. 이때 배의 높이와 폭이 문제가 된다. 만약 일반적인 전시실에 배를 놓는다면 배의 가장 아랫부분이 전시시실 바닥에 닿는다. 이럴 땐 배의 구조를 한눈에 보기 어렵고 전시 연출에도 제약이 많아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배가 전시되는 전시실의 바닥 높이를 주위보다 낮추는 것이다.

달리도선이 있는 전시실. ⓒ박찬희

제1전시실의 달리도선이 있는 전시실은 관람객이 발 딛고 있는 지점에 비해 낮다. 그래서 전시실에 들어서면 달리도선의 내부가 훤하게 보인다. 왼쪽에는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십이동파도선이 나타난다. 십이동파도선은 높이가 낮아 위에서 볼 수 있도록 되었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완도선의 측면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면서 배의 여러 모습을 만난다.

신안선이 있는 전시실. ⓒ박찬희

달리도선이 있는 전시실이 일종의 서론이라면 제2전시실의 신안선이 놓인 전시실은 본론이다. 먼저 신안선에서 나온 유물들이 가지런하게 놓인 전시실 끝머리에 다른 전시실로 들어가는 문이 마련되었다. 이 문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 듯 맞은편 전시실이 어슴푸레하다. 호기심을 안고 문을 지나면 누구나 눈을 의심하고 감탄을 하고 만다. 큰 전시실을 꽉 채운 거대한 신안선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안선은 깊고 긴 전시실에 공상 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시되었다. 처음에는 배의 윗부분이 훤하게 드러나 배의 전체적인 생김새와 내부 구조가 한눈에 보인다.

거대한 배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동선을 만들었다. 달리도선이 있는 전시실의 동선은 전시실을 한 바퀴 도는 정도였지만 이곳에서는 긴 경사로를 적극 활용하였다. 배를 둘러싼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배의 다양한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경사로를 모두 내려가면 배의 가장 아랫부분에 이른다. 이곳에서 올려보는 배는 까마득하게 높다. 다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배의 뒷부분에 이르는데, 이곳에 배의 전체적인 뒷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마련되었다. 관람을 마치고 전시실을 나올 때는 마치 스펙터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이다.

바다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이곳에서는 영상을 적극 활용하였다. 달리도선 전시실의 거대한 벽면에는 유물과 바다를 소재로 만든 영상이 상영된다. 특히 바닷속에서 유물이 회전하면서 올라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십이동파도선 위에는 잠수부가 배 위를 헤엄치는 영상이 비춰져 마치 관람객이 잠수부가 되어 바닷속에 있는 십이동파도선을 살펴보는 것 같다. 신안선 전시실에 들어서면 신안선 위로 펼쳐진 긴 스크린과 마주한다. 스크린에는 <끝나지 않은 항해, 끝나지 않은 꿈>이라는 제목으로 신안선에 물건이 실리는 과정, 항해에 나섰다가 침몰하는 장면, 수중 발굴하는 모습, 신안선이 부활하는 장면이 흐른다.  

배를 제외한 나머지 유물은 어떻게 전시했을까. 제1전시실의 <바닷속 보물, 해상활동의 자취> 코너에는 바다에서 인양한 중요한 유물들을 진열장에 넣어 전시했다. 반면 십이동파도선에는 십이동파도선 발견 당시 유물 상태를 재현하였다. 일부 유물은 배에 실린 상태로, 다른 유물은 배 주위에 흩어진 상태로 전시해 당시 바닷속 상황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다.

신안선이 있는 전시실의 유물 전시. ⓒ박찬희

신안선 전시실은 제1전시실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이 전시실의 앞부분은 제1전시실과 마찬가지로 유물은 진열장 안에 깔끔하게 전시되었지만 제1전시실과 달리 진열장 내부를 주로 하얀색으로 처리해 차분해 보인다. 신안선이 있는 전시실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전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하나는 신안선의 규모를 증명이라도 하듯 경사로를 따라 만든 진열장에 유물을 층층이 전시하였다. 마치 도서관의 서가를 연상케 하는 이 전시는 엄청난 신안선의 규모를 역설한다. 배 아래쪽에는 큰 상자 안에 모래를 채우고 그 위에 유물들을 흐트러뜨려 바다에 있었을 당시를 재현하였다. 

오랜 세월 바다에 가라앉았던 침몰선은 이제 보물선이 되어 바다를 떠나 박물관 전시실로 이동하였다. 박물관으로 온 배들은 전시실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때 큐레이터가 어떤 고민을 하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전시관의 유물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다가오는 건 유물의 현재성을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일 것이다.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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