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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귀환
마르크스의 귀환
  • 방완재
  • 승인 2020.07.14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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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 이지원 옮김140×215 | 464쪽 | 무선 | 19,000원2020년 7월 15일 | ISBN 978-89-8222-661-8 (03300)
제이슨 바커 지음 | 이지원 옮김140×215 | 464쪽 | 무선 | 19,000원2020년 7월 15일 | ISBN 978-89-8222-661-8 (03300)

20세기 최고의 사상가에 대한 가장 불경스러운 기록
가난, 고통, 비루함을 넘어서…
《자본》의 완성을 향한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여정

널리 알려진 인물이자 위대한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 하지만 우리는 괴벽스러운 천재였던 그의 진짜 삶을 모른다. 《마르크스의 귀환》은 위대한 사상가의 삶을 조망하는 흔한 엄숙주의를 완전히 걷어낸 마르크스 일대기이다. 저자인 제이슨 바커는 철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저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기념비적 통찰을 끌어낸 저작 《자본》을 완성해가는 한 인간의 집념과 그 여정을 허구를 곁들여 개성 강한 필치로 그려냈다. 슬라보예 지젝은 《마르크스의 귀환》을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로 평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마르크스가 이론적 성취에 이르는 과정을 예측 불가능한 방식의 서사로 구현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소설이며, 심리 미스터리, 철학, 미적분학,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의 발췌와 결합이기도 하다.

위대한 통찰과 비루한 삶, 《자본》과 인간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귀환》에 나오는 마르크스는 그간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던 위대한 사상가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는 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주변 사람이 엉뚱하고 미심쩍게 여기는 것에 몰두하며 세상을 부유한다.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빠져서 다른 것을 희생해버리는 유형의 인물이다. 그는 가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쓰면서 자신의 삶과 모든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소설에 나온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은 영화 〈기생충〉의 김씨 가족과도 비슷하다. 나날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투쟁, 고통스러운 사생활, 끊이지 않는 돈 걱정, 그리고 ‘품위’를 향한 욕망이 그렇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방세가 밀리고, 가진 것을 저당 잡히고, 자식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상황에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직장을 구하고 정착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가 몰두한 단 한 가지는 바로 노동자와 자신의 가족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자본》의 집필이었다.

비참한 현실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법
19세기, 억압과 악취로 찌든 런던에서 부르주아사회와 자본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영향력을 증식하고 있었다. 자본은 모든 데 스며들고, 모든 곳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이를 침울하게 바라보던 마르크스의 고뇌는 21세기에 되살아난다. 《자본》을 쓰도록 추동한 19세기 영국 노동자의 참혹한 삶은 오늘날 재현되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은 피자 배달을 ‘업’으로 삼고, 노인들은 폐지를 줍도록 거리로 내몰린다. 그 어느 시대보다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 차원에서 극심해지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거대 공장이 뿜어내는 유황 구름과 숨조차 쉴 수 없는 탁한 공기, 부유물로 뒤덮인 항구로 대변되는 환경 문제 역시 현재에 오롯이 되살아난다. 지구 가열로 인한 기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마르크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들은 늘 있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광적인 몽상가 무리가 언제나 그와 함께했다. 현실, 또는 일상이라는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끝없이 ‘혁명’을 추구한 마르크스. 저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의 딜레마를 소설이라는 장르로 그려내며, 독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는가?’ 《마르크스의 귀환》을 읽는 동안 독자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강렬한 열망, 다시 소환되는 혁명정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 차례
한국어판을 내며
책머리에
저자의 말
늪지의 생물들
무한에서 0까지
미래로의 귀환
참고문헌

▣ 저자_제이슨 바커
197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03년 웨일스의 카디프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영미권에 활발하게 소개했다. 2002년 발표한 《알랭 바디우 : 비판적 입문》으로 바디우에게 ‘내 작업의 정치적 궤적을 가장 잘 설명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영미권의 바디우 연구에 물꼬를 텄다. 이후 런던대학교, 미들섹스대학교, 런던커뮤니케이션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다큐멘터리 〈마르크스 재장전〉을 집필, 감독, 공동 제작했다. 이 작품에서는 슬라보예 지젝, 페터 슬로터다이크, 니나 파워, 알베르토 토스카노, 자크 랑시에르, 존 그레이,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이 출연하여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부활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다. 2011년 9월에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8년 《마르크스의 귀환》을 출간했고, 지젝은 이 책에 대해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로 평했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 북리뷰》 《다이어크리틱스》 등의 신문과 잡지, 학술지에 글과 서평, 비평 등을 기고하며,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영화, 철학,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다.
▣ 옮긴이_이지원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역서로 《파시즘》, 《유토피아니즘》,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 《인권》과 《자연의 권리》(근간) 등이 있다.

▣ 책머리에_이택광
첫 장부터 읽어나가면서, 나의 기대는 확신을 띄게 되었다. 납작하게 눌렸던 마르크스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일필휘지로 마르크스가 살았던 당대 런던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바커의 소설은 자칫 이런 역사소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가 미분방정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든가, 아버지의 유령을 조우하면서 자신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독백하는 장면들은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단순히 평면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미덕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적 집적물이 눈앞에서 서사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 한국어판을 내며_제이슨 바커
마르크스 가족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김씨 가족을 닮았습니다. 유산 계급에 편입하려는 욕망은 그리 강렬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것은 정말로 품위 있는 삶이었을까요? …스스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쓰겠다며 자신의 삶과 관계들을 위험에 빠뜨리다니요. 이 삐딱한 독일인 망명자는 대체 무슨 심산인 걸까요? 어째서 그냥 포기하지 않을까요? 왜 직장을 구하고 정착하지 않는 걸까요? 모두가 정확하게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살려고 하는 세상에서 그렇게는 살지 않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 고되고 참으로 무서운 시대에, 부디 그대의 고집스러움이 그대의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추천의 글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
- 슬라보예 지젝, 철학자

기이하고, 재미나고, 당혹스럽고, 불손하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예기치 못한 통찰을 주는 영감 넘치는 탈선
- 레이 브래시어, 철학자

납작하게 눌렸던 마르크스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

끝나는 게 아쉬운 유쾌하고, 재기 넘치고, 장난스럽게 시대착오적인 책
- 서용순, 성균관대학교 교수

인간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을 우리 시대에 되살려낸다
- 저스틴 클레멘스, 철학자/시인

마르크스의 삶과 세계를 흥미진진하고, 엉뚱하고, 익살맞고, 불경스럽게 재구성한 작품
- G. M. 고슈가리언, 루이 알튀세르 유고의 번역가 겸 편집자

엄청난 학식을 가벼운 필치로 녹여낸, 지적 자극을 주는 책
- 피터 바일하츠, 〈디 오스트레일리언〉

만약 당신이 미분의 극적인 잠재력을 의심한다면, 내 말을 믿고 이 놀라운 소설을 읽어보길
- 레이철 홈스, 《엘레아노르 마르크스: 전기》의 저자

창의적이고 고무적이며 때로는 불온한 대안 역사물
- 니나 파워, 《로스앤젤레스 북리뷰》

▣ 책 내용

저자의 말_《마르크스의 귀환》은 역사소설입니다. 카를 마르크스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하고 현실에서 주고받은 서신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도 꽤 등장합니다. 특히 3부 ‘미래로의 귀환’에서는 시간 흐름을 굉장히 압축적으로 그렸습니다. …개연성이 약한 사건에 관해서는, 독자분들께서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서 자유롭게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마르크스의 전기를 의도하지 않았고, 그 점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_[014쪽]

늪지의 생물들_춥고, 비 내리고, 스산한 날이었죠. 남편이 숙소를 알아보러 다녔지만, 아이가 넷이라고 하는 순간 다들 난색을 드러냈답니다. 마침내 한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방값을 치르고도 가진 침대를 전부 급히 처분해야 했어요. 압류 소문에 놀란 약국, 빵집, 정육점, 우유 가게에서 외상값 청구서를 들고 쳐들어왔거든요. …부인께 저의 진심 어린 애정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당신의 어린 천사들에게도, 가슴에 젖먹이를 안고 많은 눈물을 떨군 어미 한 명을 대신해 입맞춤을 전해주세요._[094~096쪽]

늪지의 생물들_“이보시오!” 문을 벌컥 열어젖힌 마르크스가 홀로 있던 빵모자에게 말했다. “얼마 안 가 철로가 끊길 거요! 서둘러요!” 놀랍게도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겨우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점심시간인데요.” 마르크스는 그 태만한 인간을, 다음으로는 창밖으로 닥쳐오는 파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_[156쪽]
늪지의 생물들_“…저는 오직 투쟁만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일 겁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변화는 일어날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투쟁은 그저 여러분의 행동이 아니라 여러분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한 부분입니다. 만일 당신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당신 노동자들이 그리고 오직 당신들만이 마침내 자기 노동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겁니다.”_[213쪽]

무한에서 0까지_단순히 원고를 끝내기만 하는 건 더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가 처한 곤경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사탄의 배꼽, 다른 말로 하자면 중력 없는 중심이었다. 그의 책은 지하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제시해야 했다. 동맹의 파열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방편으로. 그의 책은 그때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것, 즉 부르주아 정치경제 체제를 대상으로 급진적인 비판을 개진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경제, 즉 프롤레타리아 경제와 그것을 운영할 능력을 갖춘 새로운 인류의 등장을 준비해야 했다._[332~333쪽]

무한에서 0까지_예니도 지옥 같은 그 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했다. 그렇지만 예니는 나서지 않았다. 그 괴물에 맞서거나 헬레네와 함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예니는 알고 있었다. 대안은 없다는 걸. 그 모든 고통과 비탄에도, 그 아픔을 연장해서라도, 계속해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걸._[332~333쪽]

무한에서 0까지_“아빠” 에드거가 애틋하게 불렀다. 아이는 신열이 있었고 여전히 침대 시트처럼 창백했다. 마르크스는 아들을 안았지만, 몸이 흠뻑 젖어있어서 곧 도로 내려놓았다. 예니와 딸들은 잠들어있었다. 그는 그들 곁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덜덜 떨면서 헐떡이고 김을 내뿜었다. 너무나 추워 아무것도-공포도, 고통도, 감정도-느낄 수가 없었다._[344쪽]

미래로의 귀환_세계는 변화에 준비가 됐을까? 상관없었다. 그건 이미 거기 있었다. 그냥 전보다 더 많이. 골분쇄 공장은 여전히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고, 더 많은 보트가 웨스트민스터 다리 부근의 좁은 구역을 차지하려고 경쟁했다. 더 많은 공장이 주황색 그을음을 대포처럼 쏘아 올렸고ㅡ그는 갑작스러운 포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ㅡ더 많은 원재료가 완제품으로 제조되었다. 기본적으로, 전보다 더 많이._[420쪽]

미래로의 귀환_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 그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이 하고 있던 말과도 배치되었지만, 실은 자신이 그 이야기를 이미 천 번도 넘게 마음속으로 연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르시겠어요?” 마르크스가 소리쳤다.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에요! 노동자들을 위해 썼어요. 혁명을 위해서요!”_[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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