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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 되고 싶었던 시간들
벗이 되고 싶었던 시간들
  • 한희숙 한국외대
  • 승인 2004.03.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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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한희숙 (한국외대 철학)

 

강단에 서면 무엇보다 대학 초년생에게 교양철학을 강의하고 싶었다. 입시지옥에서 이제 막 벗어나 지성과 낭만의 장으로 들어선 프레쉬맨의 가장 가까운 벗이 돼, 인간과 세상, 그리고 우주를 주제로 한 고민과 사색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때로는 같은 수준의 동급생이 돼, 때로는 조금 앞서가는 선배가 돼, 그리고 때로는 훤히 통찰하고 있는 선생님이 돼 함께 하고 싶었다.

 
나는 현재 교양철학 강좌, ‘현대문화와 철학’을 맡고 있다. 이번 학기로 11번째를 맞이한다. 2학년 수업이지만, 전학년이 선택가능한 교양선택과목이다.

현대문화의 다양한 현상들을 제대로 읽고, 그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 나가는 작업, 즉, 문화읽기와 문화전략짜기가 ‘현대문화와 철학’의 학습목표다. 나는 학생들이 강좌를 계기로, 문화에 대한 생생한 문제의식과 올곧은 문화에 대한 안목이 향상되고, 이에 따라 미래문화의 이상을 그려내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 또한 일깨워지길 소망한다.

우리가 살며 접하는 모든 문화현상들에 대해, “이것은 진정 내 삶의 조건과 욕구에 합당한 것이며, 내 삶을 풍요롭고 주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문화인가. 또 그와 동시에 인류평화, 인권존중 등에 이바지할 문화인가”라는 물음과 모색이 넘쳐나고, 각종 문화운동을 통한 실천 또한 터져 나오길 소망한다.

 

학생들과 나는 한 학기 동안, 지금의 문화가 “나와 너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어떠한 의미가 되는지”를 숙고해 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어떤 지평이 제시돼야 하는지”를 모색한다. 현문화의 주요논의를 놓고 치열하게 토의함으로써, 문화의 풍요 속에 표류하지 않는 올바른 시각을 세우도록 한 학기 내내 땀을 흘린다.

강좌에서 중점적으로 학습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본질에 대한 학습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도록 한다. 둘째, 세계화?국제화의 실체에 대한 학습을 통해 각 문화의 고유성 및 정체성, 그리고 주체성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셋째, 현대문화의 주요특질인 대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식견을 통해 대중문화의 주체로 서게 한다.

 

넷째, 날마다 새로운 성과물을 내놓고 있는 생명공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 습득을 통해 적확한 판단을 하도록 한다. 이밖에 폭력문제, 환경문제, 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인권, 공존,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건전한 시각을 갖게 한다. 이러한 학습을 마치고, 마지막 주에는 아름다운 21세기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의 소견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수업은 담당교수의 강의와 학생의 발표 및 토론으로 이루어지며, 매주 주제에 따라 그 비중은 달라진다. 발표를 맡은 학생은 담당교수와 개별적인 토의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을 정한 후 발표준비를 시작한다. 이렇게 작성한 1차 발표안을 담당교수의 홈페이지에 올리면, 담당교수는 이를 검토한 후 부족한 부분이나 있을 수 있는 반론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온라인상에서 필요한 만큼 토의가 이루어지고 내용이 충실한 결과물이 되었을 때 이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효과적인 방식(파워포인트 작업 등)으로 발표 준비를 마무리한다. 수업시간에는 발표자의 발표와 질문, 답변이 팽팽하게 이어지곤 한다. 토론시간에는 담당교수도 동급의 토론자가 돼 함께 한다. 담당교수는 학생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나 습득해야 할 지식을 강의를 통해 보충시킨다. 수업시간에 못다한 질문과 답변은 담당교수의 홈페이지(http://goodculture.pe.kr 혹은 http://ingan21.net)에 마련된 토론장에서 계속된다.

담당교수의 홈페이지는 한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실로 활용된다. 누구에게나 개방돼있는 이 곳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화토론과 정보교환, 좋은문화운동이 이루어진다. 또 학생들은 온라인에서의 토론문화를 경험함으로써, 책임있는 네티즌의 자세를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학생들은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세상에서 감성과 지성이 한껏 증폭되는 기쁨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또 새학기가 시작된다. 지금도 그 어떤 문화현상이 우리의 친근한 말벗이 되고자 손짓해 오고 있는지 모른다. 문화는 살아있다. 따라서 ‘현대문화와 철학’은 매학기 새로운 주제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색깔은 같다. 이번 학기도 학생들과 나는 ‘감히’ 아름다운 21세기를 꿈꾸며, 그 주체로 서는 땀방울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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