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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전범을 찾아서-과학
비평의 전범을 찾아서-과학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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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를 넘어 본격 실증비평 높이 평가

다른 분야와는 달리 과학분야에서는 아직 비평을 위한 인프라가 채 구축되지 않은 까닭에 과학계의 우수비평을 논의하는 것은 성급한 시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평의 필요성에는 동의한다면, 이번 기획은그 모델이 어떠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우수비평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많은 전문가들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비평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국내에 유통되는 과학담론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과 계몽적 정보만이 반복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여건이 좋지 않지만 '있는 비평' 중에 좋은 글을 뽑아봄으로써 비평모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총 13명의 전문가들이 고심 끝에 추천한 글들은 저서와 칼럼을 포함해 20여 편이었다. 이중에 복수 추천된 글은 한편도 없었다. 여기서 좋은 비평이 드물다는 것과 함께, 비평을 눈여겨 읽지 않는 풍토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글들 가운데 2003년 '환경과 생명' 겨울호에 남상민 한양대 제3섹터 연구교수와 이태동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 연구원이 함께 쓴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대한 전면비판'이 과학비평으로서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지난해 가을 출간돼 언론의 대대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심지어 전문가 서평에서도 찬사를 받았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 刊)가 굉장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줄만하다.

'사실적 증거' 탄탄한 학술비평적 접근

그리고 '사회비평' 2002년 가을호에 발표된 과학저술가 김동광의 글 '유전자, 담론 그리고 신화'도 주목할 만하다. 비판정신이 분명하고,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민주적 합의를 지향하며, 과학기술의 현장전문성과 인문사회적 글쓰기의 모양이 함께 하는 등 좋은 과학비평의 조건을 부분적으로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외에 추천된 비평들 중 상당수는 과학정책에 대한 비판, 과학개념을 둘러싼 신문논쟁, 연구행위의 윤리성을 성찰하는 시론적 비평이었다.

▲*황폐해 보이는 이 풍경만큼 과학비평계는 새롭게 개간하고 가꿔야 할 점들이 많다. ©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대한 전면비판'은 서평임에도 다양한 통계자료를 인용해 대상텍스트의 허구성을 잘 짚어주고 있다. 텍스트 '회의주의적 환경주의자'에서 저자는 막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지구의 환경은 안전하다"라는 주장을 펼쳐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서평자들은 상당수의 서평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두고 "환경논의와 현상의 왜곡"이라고 메스를 들이댔다. 그 구조를 살펴보면, 남 교수는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둘러싼 전후 상황을 설명한 후, '통계의 오류와 왜곡', '극단의 비약과 논리', '허수아비 때리기'라는 세 가지 전체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책이 가진 전반적인 한계에 대한 비판은 지구 온난화와 삼림 멸종 문제 등의 현안에 관해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엑손 발데느 사고로 해안선 9천마일 중 약 2백마일이 심하게 오염됐고, 1천1백마일 정도가 가볍게 오염돼"별 문제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2백마일은 9천마일에 비하면 부분적이지만, 한국으로 따지자면 서해 해안선 전체를 차지할 길이"라고 지적하는 등 가치 판단의 기준이 전체적으로 자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원시림이 4백년 동안 99%가 사라졌지만 조류 중에서 고작 7종만 멸종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장기간의 숲의 변화와 짧은 기간의 벌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멸종되지 않은 종은 인근 섬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종이지만, 멸종한 조류 7종은 이 섬에만 있는 종"이라는 점을 들어 통계적 지식이 왜곡된 주장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상 텍스트가 인용하고 있는 통계 자료의 출처 재확인, 추가 사실 발굴 등으로 확보된 '사실적 증거'들로 구성된 이 글은 비평을 넘어 학술시론의 성격까지 확보해내는 역량을 보여줬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국내 과학비평의 경우 과학적 발견의 수준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적 지식을 확인하는 1차 리뷰와 그걸 인문사회의 언어로 풀어내는 2차 리뷰가 분리돼 있어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합의도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엔트로피에 대한 잘못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비판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책이 '엔트로피' 이론의 허점을 비판했다는 평들 보여주고 있어 혼란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평의 영향력이 부족한 까닭은

과학계에서 번역서가 많이 출간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번역서 서평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송상용 한양대 명예교수는 2001년 '서평문화' 43호에 '프리킨피아의 천재: 뉴턴의 일생'(사이언스북스 刊)에 대한 서평 '난해하나 가장 표준적인 뉴턴 전기'를 제출했다. 이 비평은 책에 대한 이해와 평가와 더불어, 번역 문장·표기법의 문제·오역 교정 등의 내용까지 짚어내고 있어 전체적인 인상에 근거한 서평과는 차별점을 선언한다. '번역서 서평은 이래야 한다'라는 분명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한편 과학비평은 과학의 구조적 비판을 필연적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학비평으로 추천된 글의 대부분은, 생명윤리 논쟁·동물실험 문제 등에 대한 현실담론의 문제제기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할 점들이 많다. 현안들은 기본적으로 팽팽한 의견 대립을 전제로 하고 있는 터라, 과학비평은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조율해내는 공정성·객관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그러나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나열하거나, 지나치게 선험적 윤리의 문제로 논의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많아서 애초부터 소통의 가능성을 단절해 버린다는 것.

정보 소개에서 정책 비판으로

서평에 있어서도,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필자가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 대신 '동조'의 견해만 밝히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가 '동향과 전망' 2003년 봄호에 실은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형성과 시민참여'는 생명공학규제입법과정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분석해 냈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이 교수는 시민참여의 내용과 형식을 주체별(국회·행정부·시민단체)로 분석했다. 시민참여를 '당위'적인 과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생명윤리 문제에서 시민참여가 가능했는지, 그 실제적인 영향력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짚어낸 것이다.

추천자들은 과학비평의 어려움을 여러 가지로 짚어냈다. 이봉재 서울산업대 교수는 비교적 '비평'이 많은 환경 분야에서도, "운동 영역과 강하게 매개돼 있어, 학술적인 논의와 통찰을 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고, 김동광 박사는 "국내에는 과학저술은 대중서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따라서 과학비평을 반과학으로 보는 풍토까지 존재한다"라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홍욱희 박사는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뚜렷한 텍스트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가장 우선적인 이유로 꼽았다.

이덕환 교수는 최근 과학 관련 책들이 검증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과학에 대한 오해를 산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과학저술에 대한 비평이 서서히 발동해야 할 단계에 왔다는 의견인 셈이다. 홍욱희 새만금연구소장는 "과학비평은 다른 비평 장르와 달리 오도되거나 과장된 국가정책 혹은 매스컴이나 관련기관의 홍보를 비판하는 문헌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라고 보는데, 이는 텍스트를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일단 눈에 보이는 오류들을 걷어내는 데 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 지난 5년간 발표된 과학계의 우수비평

아쉽게도 과학분야에서는 최고의 비평을 선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판정신과 민주적 합의 지향, 과학기술의 현장전문성과 인문사회적 글쓰기의 혼합 등을 일정수준 만족하는 비평을 추천해 본다.

김동광 '유전자, 담론 그리고 신화', '사회비평', 2002년 가을호
남상민·이태동,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대한 전면비판', '환경과생명', 2003년 겨울
박병상, '시민을 위한 과학기술', '녹색평론', 2001년 11·12월호 
박창길, '동물실험의 비윤리성', '녹색평론', 2002년 3·4월호
소흥렬, '온생명과 온정신', '과학철학', 1999년 봄호.
송상용, '난해하나 가장 표준적인 뉴턴 전기', 서평문화 2001년 43호
안문석, '공공성의 상실', '사회비평', 1999년 여름호.
이영희,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형성과 시민참여', '동향과전망', 2003년 4월호
최성일, '전문가의 횡포에 맞서는 시민과학', '녹색평론', 2003년
최종덕, '유전자 결정론의 환상', '창작과 비평', 2001년 가을호

*추천인명단(가나다 순)

강신익(인제대), 김동광(과학저술가), 김명진(시민과학센터), 김환석(국민대), 송진웅(서울대), 오세정(서울대), 이봉재(서울산업대), 이덕환(서강대), 이중원(서울시립대), 이필렬(한국방송대), 정병훈(경상대), 최종덕(상지대), 홍욱희(세민환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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