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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강의 시간
나의 첫 강의 시간
  • 민병수 서울대 명예교
  • 승인 2004.01.05 0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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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강사의 두려움


'나의 첫 강의시간‘을 말하려면, 어쩔 수 없이 4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1964년 2학기. 나이는 20대 후반이다.

요즘도 젊은 대학 강사들이 딱한 처지를 일러 보따리 장사라 하기도 하거니와, 그 당시에도 대학에는 역시 보따리 장사가 많았다. 부족한 월급을 메꾸기 위해 중견 교수들이 이 대학 저 대학에 출강하던 모습은 지금의 강사 처지와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이들 보따리 장사 때문에 젊은 보따리 장사가 설 땅을 얻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때에는 강사가 되려면, 당장 전임교수 자리를 부여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나이와 자격을 겸비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요행히 서울 소재 명문대학에서 20대 젊은 나이에 대학 강사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고려대에 있던 한국고전국역위원회에서 나는 번역한 원고교정을 맡고 있었고, 몇 년 동안 고생한 보람으로 강단에 설 수 있었다. 강사를 꿈꾸기도 힘들던 때에 그것도 남의 대학 텃밭에서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세칭 일류대학에서는 몬로주의가 그대로 남아 있어 타 대학 출신을 기피했고. 이것이 내 강사 발령을 힘들게 한 장애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대학에 부속 연구시설이 부족해, 대학에서 연구원이나 연구 보조원의 신분으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학부 과정의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남는 일은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은 중·고등학교와 대학 간의 교통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해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으로 진입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엔 장차 대학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은 일단 중·고등학교 교사에서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첫 시간을 대학 강단에서 치러야 하는 그 때의 강의공포는 직접 현장체험을 한 당시에도 그 정황을 진솔하게 글로써 옮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출내기 강사들에게 처음 맡기는 교과목은 대개 교양과목이며, 그 때 내가 맡았던 것은 물론 교양 국어다. 다행히 교양국어 교재는, 전문 영역별로 글과 자료를 발췌해 이를 합편한 것이므로, 현대시·현대소설·고전시가·고전소설·국어학 등 강사의 전공영역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여유가 주어져, 교과내용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학생들이 젊은 강사 대접을 어떻게 해줄 것인지 였는데, 이 때문에 한동안 신경을 곤두 세웠다. 막 군대에서 제대한 복학생 아저씨들이 있는가 하면, 덩치 큰 운동선수들도 그때는 유난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행히 내가 시간 중에 한자 판서를 하게 되면, 요즘에도 학생들은 대체로 조용해지기 일쑤인데, 그 당시에도 내가 한자 판서를 할 때면 학생들은 기가 죽는 것 같았고, 젊은 선생님이라고 깔보거나 쉽게 여기지 않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이 때 나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학기 말에 성적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출석 성적이 나쁜 학생과, 거의 강의 시간에 출석하지 않는 운동선수들에게 어떻게라도 졸업을 할 수 있게 성적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려대 생활 9년 가운데 가장 흥분되는 기억은 韓國文化史大系(전 6권)의 간행이다.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조지훈 선생을 모시고, 일본 사람들이 편찬한 分類史를 후진들이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 손으로 새롭게 분류사를 편찬해야 한다는 의도에서 간행된 것이 한국문화사대계다. 필자를 선정할 때 대부분 외부대학 교수들로 채워져 주위 사람들로부터 욕도 먹었지만, 당시 김상협 총장은 고려대 교수진용만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다고 말한 걸 기억한다. 아마도 이 사건은 내가 일생동안 이룩한 사업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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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2004-02-01 18:07:45
요즘 학사만 있어도 교수되는 것 모르시나요. 박사증 있다고 자랑하지 말고 실력있나 자랑하소. 댓글 이쁘게 좀 수준있게 씁시다. 글은 자기자신에 대한 거울인데... 이름까지 내걸고 그렇게 박사라고 자랑하지 말고 이시간에 사람공부 더 하소.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다고 열심히 하시는 다른 대다수 분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요. 교육정책에 문제가 더 있죠. 교수는 모자라는데 사람은 없고, 겸임교수3명이 전임교수 1명으로 환산해주니 특히 대학에서 악용하고 총체적 문제다. 인건비 줄일려고 전임 안뽑고 겸임만 수두룩 뽑고. 어떤 곳은 일부러 학사 석사 교수뽑아 박사따면 조교수 준다며 만년 전강으로 부려먹고. 교수월급 쥐꼬리다보니 딴 마음 생길 수 밖에 없다. 모든게 악순환이다. 엉망진창이다. 열바쳐서 딴소리 했는데 이해하소.

칭찬 2004-02-01 17:45:26
한마디씩 해놓은 꼬락서니 하고는. 아니 꼭 따지면 여기가 교수신문이지 강사들이 왜 형평성 운운하는고. 꼭 그렇게 말하고 늙은 사람 묙보여야 속이 후련하나. 그래가지고는 진짜 고생 더 해야 겠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다고. 이름없이 얼굴없이 쓴다고 그 인품이 어디 도망가나. 귀하가 남을 칭찬할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벌써 자리잡았다. 교수 뽑는것 무조건 실력으로만 안뽑는다. 그사람 인품을 더 중시한다. 수십년 같이 살아야 하는데 학과에 들어와서 흙탕물 일으킬지 학과 발전 시킬지, 학생 잘 지도할지 우선 본다. 그러니 이사람 저사람 통해 알아보고 하다보면 연결되고 할 뿐이다. 사람 얼굴 하루 아침에 안빠뀐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하여 두면 저절로 오라고들 한다. 노력하고 남 칭찬 많이 하면 (아첨말고) 얼굴에 우러 나온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말했겠소만. 칭찬합시다. 제발... 다른 일반신문게시판에 10원짜리 댓글이 교수신문 댓글에도 똑같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것 보면 한심하다. 우리나라 교육 정말 교육자가 다 망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으이그 울화통 치민다.

박사 2004-01-19 04:52:09
비정규직 박사강사의 첫 강의 경험담도 함께 게재해야

형평성 원리에 맞으며,인권존중 및 대학교육 정상화 달성의

지름 길이다.

수천만원 연봉 과 연구비 등 각종 착취를 하는 교수의 경험은

아무런 쓸데가 없는 불요불요지물 같습니다.

쯔즈쯔.

이병수 2004-01-19 04:48:26
현재의 시강은 박사학위 소지 이상자 이며,석사학위논문,

박사학위논문,연구논문 등 연구활동 풍부하며,,,,,보다리장사

라고 비하/폄하 하는데,,,,,,, 시간강사 제도 제정하여,착취

하는 현재와 다를것이다.

웃기는 녀석의 경험담이여서 몹시 씁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