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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개각을 보니 개혁은 없고 / 유초하 충북대 교수(철학과)
[세평]개각을 보니 개혁은 없고 / 유초하 충북대 교수(철학과)
  • 교수신문
  • 승인 2001.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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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3 10:36:59
김대중정부의 개혁은 안쓰러운 데가 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거대야당과 맞서다보니 국정현안에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서 비틀거리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적어도 총재들의 면모로 보는 한, 야당이 여당보다 보수적인 까닭에 개혁추진은 번번이 걸림돌과 만나게 되었다.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은 국보법개정 등 개혁입법 추진에도 딴지를 걸고 남북관계의 진전에 신기원을 이룩한 정상회담 및 그 후속조치들까지도 평가절하하는 등 거의 무조건적 반대를 일삼고 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여든 고개를 눈앞에 둔 노년의 대통령이 하루 네 시간의 수면으로 버티면서 국정을 살피는 모습은 숙연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과연 김대중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정책은 “민주주의·시장경제·생산적 복지를 3대 이념으로 삼아 국민주권 강화, 지식기반경제 구축, 건전하고 행복한 나라 건설의 3대 목표를 추구한다”는 창당정신에 부합하는가. 4대부문 경제개혁이 이룬 것은 무엇인가. 1백만이 넘는 실업자를 양산하여 거리로 내몰았고, 취업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고용불안상태로 떨어뜨렸으며, 국가기간산업을 헐값에 해외에 팔아치우기를 도모하고 있고, 1백조대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의 공적자금을 부실기업에 쏟아 붓고 있다. 김대중정부의 경제개혁은 한 마디로 금융을 비롯한 재벌을 살려내고 의사 등 가진 자들을 살찌우는 정책이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의 수만배에 달하는 국민자산을 ‘부유이웃돕기’에 탕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중산층과 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개혁정당’의 캐치프레이즈에 걸맞는 정책일까.
현정권의 개혁이 거품으로 부풀어 있고 포장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경제부문에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니다. 교육개혁은 학생을 끝없는 경쟁 속에 몰아넣고, 교사와 교수를 강력한 통제 아래 두며, 학부모를 어려운 비용부담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언론개혁은 법률과 제도가 보장하는 규제·처벌의 방안조차 구체화하지 못한 채 호소인지 협박인지가 애매한 막연한 엄포로 겉돌고 있다. 국보법·인권법·부패방지법의 개혁입법은 임시변통의 미봉책으로 지연시키면서 왜곡과 굴절을 거쳐 결국 누더기 짜깁기식 조항들로 채워질 것이 예측된다. 가장 빛나는 업적인 남북관계의 개선도 국보법과 주한미군 문제를 방치하는 한 뚜렷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역대정부가 보여온 대미종속은 김대중정권에 와서도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18년동안 군부독재를 자행한 박정희에 대해 2백억원의 돈과 5천여평의 땅을 제공하면서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과연 40년에 걸친 반독재투사로 살아온 민주인사 출신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극복하고 민족통일의 전망을 열어제칠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취임하여 노벨평화상을 받은 영예로운 대통령의 정부가 어떻게 하여 이토록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게 되었을까.
임기 2년을 조금 덜 남긴 김대중정부가 개혁을 향한 새 돛을 달았다. “여러 가지 국정현안에 대해 더한층 노력하고 강력한 의지를 갖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그리고 “국정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기 위해” 장관급 12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한 것이다. 개혁을 향한 김대중정부의 새로운 드라이브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개각발표를 보고 나는 서류철에서 지난 1998년 4월의 메모를 찾았다. 거기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의장 자격으로 청와대 오찬 때 김대중대통령에게 전하고자 했던 (그러나 제지당한) 세 가지 의견이 적혀 있다. 첫째, 과거 정권들에서 자의적 해석·적용으로 민주인사를 탄압해온 국보법을 철폐 또는 개정해야 한다. 둘째, 비정상적 여소야대 정국에서 공동정권으로 출범한 불편함을 과감히 탈피하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의 지지에 확실히 부응해야 한다. 셋째, 국민여론이 지지하는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방식으로 정계를 개편하고, 개혁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진보세력이 진출할 수 있는 법률의 제정·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정권출범 당시에 유효했던 건의가 지금도 유효한만큼 김대중정부는 아니 디제이피정부는 개혁에 성공하기 어렵다.
이번 개각은 1992년 이래 ‘뉴디제이 플랜’의 발상이 그대로 살아있는 조치이다.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의 지지를 받겠다는 발상이다. 공자는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아무래도 한 마디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건 아니건 보수세력이 추진하는 개혁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개혁은 개혁세력이 하는 것이다. 지역패권과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보스정치의 보수집단에게 기대하는 한 한국 국민의 미래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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