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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9] 경제적 평등이 없는 사회적 자유는 무의미하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9] 경제적 평등이 없는 사회적 자유는 무의미하다
  • 박홍규
  • 승인 2020.06.10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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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에

우주란 통일된 시스템에서 인간과 자연 통합
부자의 특권 감소와 계급적 적대감 철폐 주장
개인의 욕망과 열정 충족이 일반 이익에 기여
푸리에 정신, 영국 협동조합 운동에 영향 끼쳐
푸리에 초상화

크로포트킨이 ‘아나키즘의 선구자’라고 부르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푸리에(Franc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1837)는 1772년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에서 태어나 공부했으나 유럽을 아우르는 행상이 되기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 혁명적인 테러 기간 동안 그는 투옥되어 거의 죽을 뻔했으나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뒤 계속 상업에 종사했고,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당대의 부패한 문명을 대체하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북친은 푸리에를 최초의 사회생태론자였다고 본다. 우주를 거대한 살아있는 유기체로 생각한 푸리에는 뉴턴의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별조차 성적인 성향을 갖는 자신만의 ‘정열적 매력의 법칙’을 제안했다. 그의 ‘우주적 유추의 이론’에서 인간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제시한 그는 우주란 통일된 시스템이고, 인간이 그 중심에 있으므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자연과 통합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겉보기에는 혼돈인 그 이면에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근본적인 조화와 자연적 질서가 있고, 만약 그 법칙이 이해된다면 그것은 ‘인류를 풍요롭고 관능적인 쾌락과 지구적 단결로 인도할 것’이라고 본다. 

푸리에는 프랑스 혁명의 변호사들이 내세운 자유, 평등, 우애 사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는 경제적 평등이 없는 사회적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18세기의 철학자들이 자유를 ‘모든 생물의 최우선 욕구’로 찬양한 것은 옳았으나 그들은 문명사회에서는 평민들의 부가 결여되면 자유는 환상적이라는 것을 몰랐다. ‘임금 계급이 가난할 때, 그들의 독립은 기초가 없는 집처럼 허약하다’고 본 그는 행해진 일에 따른 재능과 보상의 불평등을 받아들였지만 그의 유토피아는 부자들이 갖는 특권의 점진적인 감소와 계급적 적대감의 철폐를 상정하고 있다.  

사드와 마찬가지로 푸리에도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권리의 개념을 적용했다. ‘사회적 진보와 시대적 변화는 자유를 향한 여성의 진보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을 일반적인 명제로 처음 주장했던 사람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푸리에였다. 현대 문명의 여성들과 결혼 노예들의 타락과 속박을 거부하면서, 그는 ‘노예는 그의 맹목적인 복종에 의해 억압자가 노예를 위해 태어났다고 확신할 때보다 결코 더 경멸할 수 없다’고 본다. 그의 평등주의와 아나키즘적 비전은 심지어 동물들까지 포용한다. 그는 채식주의를 권하지는 않지만 그의 이상사회에서 ‘그들을 학대하는 사람은 자신이 박해하는 방어할 수 없는 짐승보다 그 자신이 더 동물에 가깝다’는 것이 원칙이다. 

푸리에가 사회 분석에 채택한 방법은 ‘절대 의심’과 ‘절대 일탈’을 포함한다. 이 방법의 비타협적인 적용은 그로 하여금 서양 문명과 자본주의의 파괴성을 고발하게 했다. 비인간적인 시장 관계가 기만과 거짓, 처벌적이고 혐오스러운 일, 그리고 심령적이고 성적인 좌절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본 그는 자유경쟁과 직업윤리 그 자체를 바탕으로 한 경제체제 전체를 거부했다. 푸리에의 자유는 자유로운 선택을 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심리적 충동으로부터의 자유도 의미했다. 기존의 질서 대신에, 그는 쾌락적이고 자발적인 노동, 억압적이지 않은 성, 공동 교육, 공동생활이라는 쾌락주의적 유토피아를 제안했다. 열정, 쾌락, 풍요, 그리고 사랑은 모두 그의 새로운 도덕 세계에서 그들의 자리를 찾을 것이었다.

그가 말한 하모니 공동체인 팔랑쥬는 협동 노동자들의 자기 관리와 자급자족 협회로 구성되고, 회원들은 자발적인 친구 그룹이나 자발적으로 모여 활발한 경쟁으로 자극을 받는 일련의 그룹에서 일한다. 일은 가능한 한 매력적으로 만들어지고, 노동의 분업은 다른 개인에게 적합한 일을 할당하기 위해 최고 수준으로 옮겨진다. 노동은 협동적이고 재산은 공통적으로 누릴 수 있지만, 구성원들은 자본, 일, 재능에 대한 기여에 비례하는 배당금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를 갖게 되고 핵심 원칙으로 푸리에는 연간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적 최소한’을 주장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자유를 결합하고 단결의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이 기울여져 불평등의 평등이 승리한다.

욕망에 관한 한 푸리에는 더욱 혁명적이었다. 비록 합리주의자였지만, 그는 열정을 억누른 현대 사회의 기계적 합리화를 거부했다. 억압의 역학을 이해하는 그는 정신분석의 선구자였다. “참혹하게 질식되는 모든 열정은 그 반대의 열정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타고난 열정이 유익한 것처럼 악랄하다. 이것은 모든 마니아에게 해당된다.”

지골의 투시도

사회에서 붕괴되기 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열정의 충족이 일반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본 그는 ‘즐거움에 가장 열심인 사람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 대단히 유용하게 된다’고 했다. 《새로운 사랑의 세계》라는 그의 노트에서 푸리에는 ‘성적 최소’와 ‘사회적 최소’를 필요로 하는 물질과 심리의 만족을 요구한다. 그는 완전한 성적 만족이 사회 화합과 경제적 행복을 증진 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악랄하다고 비난한 유일한 종류의 성행위는 사람을 학대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대상으로 이용되는 경우다. 오직 하모니에서만이 그러한 ‘아름다운 아나키 상태’가 우세할 수 있다. 

푸리에의 상상 세계는 여러 면에서 아나키즘적이지만, 《새로운 산업시대와 사회생활》(1829)의 가장 간결한 공식에서 나타나듯이 많은 모순을 담고 있다. 여성들은 가부장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정적이고 성적으로 남성들을 섬길 것으로 예상된다. 푸리에의 우아한 성적 쾌락과 미식가적 쾌락은 귀족적인 취향을 반영하고 ‘사랑의 법’에서 관료들의 치밀한 위계질서에 의해 조작된 그의 ‘아름다운 코드’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성에 대한 그의 묘사는 다소 기계적이고 실용적으로 보이고 그의 아동심리학도 순진하고 독단적이다. 그는 유아적 성향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독단적으로 ‘모든 소년의 3분의 2는 오물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역겹고 혐오스러운 일을 하기 위해 ‘작은 무리’로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어린 소녀들은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조화’에서의 일상생활의 배치는 너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프라이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푸리에가 특정한 취향에 맞는 매력적인 일을 할당하는 데에 자율성과 자아실현을 육성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가 제안하는 삶은 너무나 엄격하다. 공동체 생활은 너무나 조직적이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낙원이라기보다는 감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전체가 주인의 인형놀이에 의해 조정된다.

푸리에가 그의 작품을 부자와 권력자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거의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33년에 최초의 공동체가 설립되었으나 그 후 곧 붕괴되었다. 1837년 그가 죽은 후에야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 푸리에주의 운동이 싹텄다. 프랑스에서는 콩시데랑이 푸리에주의를 ‘평화 민주주의’ 운동으로 바꾸는 것을 도왔고, 1848년 7월 왕정 말기와 프랑스 혁명 초기에는 정치세력이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브룩 팜을 포함한 36개의 단명 공동체를 낳았다. 푸리에의 사상은 심지어 러시아의 알렉산더 헤르젠과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록 공동체는 실패했고, 그의 혁명적인 메시지는 약화되었지만, 그는 특히 영국에서 발전하고 있는 협동조합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은 ‘진정한 시의 싹’과 부르주아 사회의 풍자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랬던 것처럼 푸리에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환상의 청사진’으로 계속해서 일축했다. 

푸리에가 말한 유토피아의 모든 엄격하고 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그는 19세기 프랑스 유토피아인들 중에서 가장 아나키적인 사람이었다. 혐오스러운 작업을 의미 있는 놀이로 바꾸려는 그의 소망, 성의 자유로운 만족에 대한 그의 요구, 사회적 및 성적 최저치에 대한 강조, 그리고 그의 유기적 우주론은 아나키스트들과 생태학자들을 똑같이 계속해서 고무시키고 있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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