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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우리시대 ‘美’를 논한다
신년특집: 우리시대 ‘美’를 논한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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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을 시작하며

오늘날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과 감수성이 사라진 시대는 아닐까. 현대예술은 그 존재감만 두드러질 뿐,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경우는 드물다. 상품화된 미학과 빠르게 교체되는 트렌드는 새롭고 쿨한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시대와 개인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추구되지 않는다는 건 자못 심각한 일은 아닐까. 교수신문은 신년 예술기획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과연 우리시대의 美를 논할 수 있는 개념틀과 이론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따라잡는 의식의 흐름은 어떠해야 하나, 우리 시대의 미적 감수성이 존재하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등의 문제를 많은 동시대 전문가들과 함께 풀어나가고자 한다.

美, 우리 시대의 예술적 화두

▲신윤복의 미인도. ©

시대를 초월해 인간은 ‘美적인 것’에 대한 추구를 멈췄던 적이 없다. 소위 ‘아름다움’이란 것을 고전시대 ‘비너스의 탄생’에서처럼 인간신체의 완전한 비율에서 찾든 아니면 어느 여류 화가의 ‘뚱보누드’와 같이 형식적 비례의 파괴에서 찾든 말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으로, 그리고 미학, 예술철학 등은 그들의 감각의 논리로 ‘미’에 관한 논쟁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추구는 점점 드물어지는 듯하다. 오늘날 미에 대한 논의는 형식주의에 치우치거나, 아니면 내용성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된 미에 관한 담론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각예술분야에선 얼마 전 ‘월간미술’이 21세기 특집으로 ‘한국적 미’에 관한 정체성을 탐구한 바 있고, 그 이듬해 ‘건축의 미’에 관한 논쟁을 크게 벌이기도 했다. 음악분야에선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 무너뜨리기가 유행하면서 ‘크로스오버’라는 새로운 양식과 그것의 새로운 미학에 대한 강조의 글들이 넘쳐났다.

아름다움이 배제된 '미적 논의'들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문화’와 ‘미학’간의 논쟁도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간의 ‘경계 허물기’가 쟁점이 됐다. 요즘은 디지털 기술의 새로운 미학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창작과 비평이 어깨를 걸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쟁적 담론들과 미학 개발주의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시대 심미적 감수성의 급소를 찌르고 있을까. 월간미술에서의 ‘한국의 미’ 논쟁은  ‘여백의 미’나 ‘자연의 미’라는 틀 속에서 다소 답답하게 맴돌았는데, 여기서의 한국의 미라는 것은 결국 조선적인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음악분야에서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논쟁과 더불어 새로운 미적 기준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침묵이나 스테인리스를 긁어대는 듯한 '반항과 일탈'로 흘러갔으며 이것은 다양한 실험 속에서 '반항적 자기위안'으로 남거나 혹은 사변적인 소수자 연대 속에서나 음미될 뿐이었다.

美에 대한 의식의 흐름을 읽자

건축 분야는 안 그래도 복잡한 미학들의 천지인데, 이제는 디지털 기술까지 가세해서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감상자들에게 너무 복잡한 과정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휴머니즘적 가치, 생태적, 전통적 가치에 대한 강조도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미적인 것의 추구와는 다른 맥락이다. 

이런 모든 움직임 속에서 아름다움은 결코 주인공이 아니다. 때로는 허위의식이 그걸 밀어내고, 때론 실용적 가치가 그걸 밀어낸다. 이런 진단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미적 감각이 전위 혹은 실용성과 조화롭게 화학작용을 일으키리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경험은 차라리 감각의 왜곡과 혼란이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솔직한 이해와 깊은 경험이야 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적 화두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절차와 방법론을 필요로 하는가. 오늘날 각 영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미에 관한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보는 것이 첫번째에 올 것이다. 그것은 아름답다고 여기는 의식의 흐름,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감수성의 종류로 크게 분류시켜서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미를 논할 수 있는 개념틀과 이론이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들은 구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트렌드를 읽어나가는 일과 병행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우리시대의 미를 논한다'는 이런 조건들을 충족해가며 진일보한 논쟁들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문화를 위해서 말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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