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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학교에서의 첫걸음, 그리고 부족함
[학문후속세대의 시선]학교에서의 첫걸음, 그리고 부족함
  • 교수신문
  • 승인 2020.06.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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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감사, 책임감, 사명감이 교차하며 연구실 문을 열었다. 2차 대전에 폭탄이 투하되었던 것 같이 부서진 파편,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들이 눈에 가득했다. 쌓여있는 이름 모를 물질들과 도구들, 수북이 쌓여있는 먼지들… 직전까지 있었던 학생이 연구실 비우는데 시간을 더 달라 해서 한 달 가까이 더 주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쓰레기뿐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재빠르게 내 앞을 가로지르는 날렵한 쥐 한 마리도… 이 모든 것을 혼자 치워야 하고 치워줄 사람도 없었지만 연구실을 가진다는 마음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나에게 행운처럼 나를 돕겠다는 박사과정 학생과 인턴이 왔다. 나는 지금도 가끔 연구실 문을 열 때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청소를 했지만, 일주일을 청소해도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제 쓴 지 모르는 낡은 기기들을 하나씩 불용 처리하고, 조심스레 거의 모든 기기를 버렸다. 난 줄곧 수업과 회의, 외부 실험으로 자리를 비웠는데, 학생은 인건비도 필요 없다면서 말없이 엄청난 땀을 쏟고 먼지를 마시며 짐을 치웠다. 그렇게 그 학생이 고군분투를 하던 중, 인턴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찾아왔다.

아직 제대로 된 연구실이 없는데 인턴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 가장 먼저 청소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인턴 학생들 역시 한마디의 불평 없이 시약들을 안고 하나씩 운반을 했다. 가을이 지나 겨울 직전의 추운 날씨였지만 우린 땀에 젖어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랩의 쓰레기들은 사라져 갔다.

해가 바뀌고 정식으로 연구실 문을 열었다. 정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들 덕분에 빨리 문을 열 수 있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위해 벽은 체리핑크, 그리고 천정과 기둥은 흰색으로 디자인하고, 바닥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잔디 그림의 타일을 깔았다. 하지만 연구비가 문제였다. 연구비는 개인의 능력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몇의 박사 학생들이 나를 믿고 진학을 해줬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으로 나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연구지도 할 것을 다짐하곤 했다. 연구비의 어려움을 알았는지 학생들이 한 명씩 찾아와서 “대학원은 교수님한테 배우기 위해서 진학한 것이기 때문에, 인건비는 신경 안 쓰셔도 된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교육자가 아니라 그들이 나의 교육자였다.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책임감을 느꼈다. 물론, 어떤 학생은 등록금과 인건비를 다른 연구실과 조목조목 비교하며 강력히 요청했고, 나는 어려운 형편에도 인건비를 제공하였다. 연구비의 절반 가까이가 그 학생의 인건비로 책정이 되었다. 갈수록, 많이 부족했고, 특별한 대책도 없었으며 주변에서는 학생 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조언을 주셨다. 이후 학생을 더 이상은 받지 않았다. 현재 있는 학생들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르치고 싶었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학제도가 개편되면서 학생들이 수업료를 걱정하게 되었다. 박사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도 생긴 듯했다. 

우리 랩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회식을 가졌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학생들만 다녀오라고 했다. 삼겹살을 먹으러 간 듯했다. 그리고 한 장의 즐거운 삼겹살 굽는 사진이 날아왔다. 하지만, 다음날 난 놀라서 기절을 할 뻔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십오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나는 돈 걱정 말고 충분히 먹으라고 했는데 삼겹살을 세 등분으로 나눠 먹었는지 적은 금액이 나왔다. 학생들이 또 절약한다고 이렇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에 살며시 전화를 해보았다. ”맛있게 충분히 먹고 즐겁게 놀다 들어갔어요”라고 대답해준 학생들에게 또다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학생들의 성숙함과는 반대로 요즘 나는 스스로 고집이 심해지고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음을 느낀다. 또 직접 실험을 하다 보니 의견이 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연구교수님을 다그치게 된다. 사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나는 이 정도 사람인가 많이 고민도 하고, 자책을 하게 된다. 

어느덧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많은 선배들도 이러한 어려움들을 다 거쳤고 해결했다는 생각에 과연 나는 잘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절을 견딘 선배들이 여전히 대단해 보인다. 연구실 학생들이 내가 속상한 모습으로 지나가면 괜찮냐는 말을 건네줄 때, 다시금 힘내야지 굳게 다짐한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나가게 되는 그날까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평생 기억에 남는 좋은 학위 기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이끌겠다고 굳건히 다짐해 본다.

 

 

 

빈범호 아주대 생명과학과/응용생명공학과 조교수

OASAKA대학에서 미네랄 운송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피부, 간, 뇌, 생식에서 미네랄 시그널과 노화 및 질병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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