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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빌딩으로 들어간 유적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빌딩으로 들어간 유적
  • 교수신문
  • 승인 2020.05.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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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박찬희

도심을 재개발하기 전, 땅에서 유적이나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으면 발굴을 한다. 만약 유물이 나온다면 박물관으로 옮긴다. 반면 유적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라지고 그 위에는 아파트나 빌딩이 들어선다. 간혹 유적의 일부를 현장 근처로 이전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하지만 일단 제자리를 떠난 유적은 어쩔 수 없이 현장성을 잃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규모도 작고 관리가 소홀한 경우가 적지 않아 사람들에게 잊혀지기 쉽다. 그런데 유적은 역사적으로 주목되거나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적만큼 그 땅에 역사가 쌓였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만약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중요한 유적이 발굴된다면 어떻게 할까? 2014년 서울 종로 종각 근처 공평지구 도심을 재개발하기 위해 발굴 조사를 시작했다. 이때 여러 시기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특히 16~17세기 문화층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았다. 도심에서 발굴을 끝낸 후 현장에 유적을 보존하는 경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군기시유적전시실을 들 수 있다. 2008년 서울시청 신청사를 짓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조선시대 무기를 제조하던 군기시터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때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해 군기시터를 현장에 보존하기로 결정하였고 마침내 시청사 지하에 군기시유적전시실이 탄생하였다. 이곳에는 군기시터 유적과 출토 유물 일부를 전시하였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유적. ⓒ박찬희

그러나 공평지구 유적은 사정이 사뭇 달랐다. 유적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시청처럼 공공 소유가 아니라 사유지였다. 발굴 후 이곳에는 대규모 고층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동안 광화문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도심 재개발이 이루어졌지만 이 지역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높은 빌딩이 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 위치에서 유적을 보존해야할 필요성이 더욱 높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서울시와 사업시행자는 협의를 했고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사업시행자는 유적이 들어가는 전시관을 지어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고 대신 서울시는 빌딩의 용적률을 높여주었다. 유적 보존의 새로운 사례인 ‘공평동 룰’과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유적을 빌딩 속 전시관으로 넣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발굴한 유적을 그대로 두고 빌딩을 세울 수는 없었다. 발굴이 끝나자 일단 유적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빌딩 공사가 끝난 후 지하 1층 전시관에 옮겨 복원하였다. 복원 과정에서 전시관의 크기에 맞추고 중요한 유적을 살리기 위해 유적의 위치를 이동시켰다. 일단 유적의 높이를 발굴된 높이보다 2.7미터~3.9미터 정도 낮추었다. 원래 위치대로라면 중요한 유적인 골목길 ‘ㅁ’자 집이 전시관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유적을 서쪽으로 2.3미터, 북쪽으로 5.9미터 이동시켰다. 원위치를 조금 바꾸는 대신 중요한 유적을 살렸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전동 골목길. ⓒ박찬희

전시관은 최첨단 빌딩 안에 들어있다. 과거를 잊는 듯한 빌딩 앞에 서면 그 안에 전시관이 있을 거라고는, 몇 백 년 전 유적을 만날 거라고는 짐작되지 않는다.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순간에도 음식점이 빼곡한 지하 아케이드로 내려가는 기분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전시관 문을 열자 거짓말처럼 유적이 펼쳐지며 눈 깜짝할 사이 과거로 빨려 들어간다. 

전시관에 들어가면 다시 놀란다. 전시관은 ‘ㄱ’자로 이루어져 처음부터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 걸어갈 때 전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시관은 유적의 광장이다. 아니 마을이다. 마을의 일부를 통째로 들어서 옮긴 것 같다. 규모가 크다는 군기시유적전시실보다 훨씬 커서 유적 안에 긴 골목길이 남아있을 정도다. 유적을 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전시실로 들어온 유적은 전시물로 성격이 바뀐다. 유물은 진열장에 들어가 전시되는 반면 유적은 그대로 노출된다. 유물 밖에서 유물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유적으로 들어가 그 시대를 걷고 경험한다. 온전한 유물과 달리 유적은 윗부분이 사라진 채 바닥 부분만 남았다. 한편 시시각각 환경이 변하는 실외 유적과 달리 이곳의 유적은 통제된 환경 속에 늘 일정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전시관에서는 실내의 유적을 일깨우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동선은 유적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와 잇닿았다. 관람객은 유적의 둘레길을 따라, 유적 속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둘레길을 따라 걷는 동안 계속 변하는 유적을 경험하고 복원 모형, 이해를 돕는 영상, 가상현실 체험(VR), 작은 전시 등 다양한 전시 요소들을 만난다. 중요한 유적 위에는 유리를 깔아서 걸으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유적으로 내려가는 네 개의 길은 모두 유적 속 전동 골목길로 이어진다. 둘레길에서는 유적을 내려다봤다면 작은 골목길에서는 시간을 가로질러 그 시대와 조우한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이문안길 작은 집. ⓒ박찬희

이곳의 유적은 터다. 윗부분은 사라지고 돌로 이루어진 아랫부분만 남았다. 때문에 터는 사라진 윗부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상상을 부른다. 전시관에서는 터를 활용해 다양한 집을 지었다. 가장 앞에는 전통적인 전시 방식인 큰 집의 축소 모형을 설치했다. 이 집은 전시관 입구 바닥 집터에 지어졌을 집이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골목길 ‘ㅁ’자 집에 이르러서는 가상현실로 집의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은 집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전시실 끝자락에 있는 이문안길 작은 집이 그 집으로, 집터 위에 공간을 띄워 집을 만들고 방에 어울리는 유물로 채웠다.

유적은 홀로 전시관에 가지 않는다. 유적이 품은 사람들 이야기와 함께 간다. 공평동은 조선시대부터 서울 도심의 중심부였다. 이곳에는 사람들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고 이야기의 일부가 기록으로 전한다. 유적과 옛 사람들이 만날 때, 터에 그들의 이야기가 얹힐 때 유적은 활기를 띤다. 전시관에서 먼저 만나는 옛 사람들은 종로 시장 사람들이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가게들이 늘어섰던 왁자지껄한 종로 시전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흥미로운 존재들인 여리꾼, 전기수, 왈짜, 순라꾼을 등장시켰다. 이 옆으로 종로에서 발견된 가게와 관련 있는 유물들을 전시해 공평 유적이 종로의 상권과 깊숙하게 연관되었다는 걸 알려준다. 전시실 끝 이문안길에는 전시관 부근에 살았던 능성 구씨 집안 이야기, 전동 골목길에는 일제 강점기 공평동을 무대로 활동한 건축가 박길룡과 여성단체였던 근우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냈다. 유적에 쌓인 이야기는 힘이 세 관람객과 유적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줄여준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시전 풍경. ⓒ박찬희

전시실을 나서는 순간 아련한 조선시대를 뒤로 하고 재개발로 둘러싸인 현실과 마주한다. 도심 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 보존을 한다면 무엇을 보존할까, 유적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분명한 건 한번 사라진 유적은 복원할 수 없으며 유적의 보존은 활용을 같이 고민할 때 의미가 커진다는 점이다. 유적의 보존과 전시는 당시대의 치열한 고민을 반영한다. 유적은 어쩌다 살아남은 폐허가 아니라 개발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지금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새로운 박물관의 최전선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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