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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집콕이 만들어낸 아침 식사
[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집콕이 만들어낸 아침 식사
  • 교수신문
  • 승인 2020.05.2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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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1739년, 캔버스에 유채, 65*81,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아침 식사'-1739년, 캔버스에 유채, 65*81,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코로나19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 방역이 중요시되는 시점이다 보니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게 된다. 

웬만하면 지인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요즘 우스갯소리로 돌밥 시대다. 돌아서면 밥이요 돌아서면 밥 때다. 그래서 없었던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해졌다고 한다.  

매 끼니 챙기는 것도 힘이 들지만 특히 아침 식사가 더욱더 힘이 든다. 평소 바쁜 아침에 식사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 보니 간단하게 우유나 빵으로 해결하거나 입맛이 없어 먹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있는 시간이 널찍하니 아침을 온 식구가 먹는 것이다. 그것도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밥, 국, 반찬이 있는 식사로 말이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먹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시장에서 돌아와'-1739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시장에서 돌아와'-1739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지금처럼 풍족하게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아침 식사로 죽, 미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일찍이 아침 식사의 중요성을 알고 먹었다면 서양에서 대중적으로 아침 식사를 먹었던 시기는 18세기부터다. 18세기 무역이 발달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중산층의 등장하면서부터 아침 식사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침식사를 통해 18세기 프랑스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부셰의 <아침식사>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방에서 여자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18세기부터 프랑스에서 일반인들에게 일상화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상류층은 아침과 점심 중간쯤인 10경에 제대로 갖춘 식사를 했다고 한다. 태양왕 루이 14세도 국정을 마친 오후 1시경에 첫 식사를 했었다고 한다. 상류층뿐만 아니라 노동자층도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식사대용으로 길거리에서 커피 한잔했었다. 

아침 식사가 보편화될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음료의 유행 때문이다. 18세기 초 공공장소에서 차, 커피, 코코아 차 등을 마실 수 있었다. 커피는 유럽의 관문이었던 베네치아가 터키에 점령된 1683년 이후부터 유럽 전역에 소개되어 주로 노동자층에서 에너지 충전 목적으로 마셨다. 커피와 차가 에너지원이 되었던 것은 설탕을 서민들이 즐겨 먹게 되면서부터다. 17세기 이전에 설탕을 고가의 식품이었지만 설탕재배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가격이 떨어져 서민들도 사 먹을 수 있었다. 

커피와 달리 코코아차는 상류층이 주로 마셨다. 루이 14세의 왕비가 아침에 코코아차를 마셨기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왕비는 셀럽으로 상류층 여인들은 왕비의 행동에 따라 하기 위해 아침에 코코아차를 마시게 되었다. 왕비가 코코아차를 마신 이유는 스페인 출신인 까닭이다. 코코아차의 원재료인 카카오는 스페인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에서 16세기부터 수입되어 코코아의 재료가 되었으며 당시 코코아차는 카카오 가루에 설탕, 계피, 바닐라 향을 가미한 것을 뜨거운 물이나 우유에 타서 진하게 마셨다.

이 작품에서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고 두 명의 여자와 아이들이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고 청년은 서서 찻주전자에서 잡고 있다. 

청년이 들고 있는 찻주전자에 들어 있는 것은 코코아다. 당시 아침마다 빵이나 우유, 달걀 등을 팔러 다니는 행상들이 많았으며 음료수 가게의 종업원들도 고객의 집에까지 뜨거운 음료수를 배달하고 아침 시중을 들었다. 청년을 보면 유럽에서도 배달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계 밑에 있는 선반에 놓여 있는 몸통이 납작한 주전자는 홍차 주전자를, 청년이 잡고 있는 주둥이가 짧은 것은 코코아차 주전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코코아차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주전자 주둥이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벽난로 앞에 탁자가 놓여 있는 방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생활방식이었다. 18세기 초 프랑스 경제 상황은 해외 식민지로부터 자원을 확보할 수 있어 전반적으로 호황을 부렸다. 새롭게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들은 전례 없는 호화 생활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남에게 방해받지 않는 개인 공간이 유행했었다. 개인 공간이 생기면서 공간이 좁아지게 되었고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커다란 유리창과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거울과 커다란 창은 부르주아 저택의 방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거울 장식하고 있는 조개와 파도 무늬는 로코코 양식이다. 

거울은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이 만들어진 이후 큰 거울이 생산이 되었으며 가격도 저렴해서 일반 가정에서도 큰 거울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거울은 고가의 물건으로 왕족이나 고위 성직자만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벽난로는 실내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벽난로 때문에 두꺼운 실내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붉은색 케이프만 두른 안주인의 흰색의 옷은 실내용 얇은 옷을 의미하며 실내가 따뜻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머리에 쓰고 있는 스카프는 아침 단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부유층 여자들은 아침마다 미용사가 집으로 방문해 가발을 손질해 주었다.

안주인 앞에 놓인 코코아 찻잔도 상류층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차가 유행함으로써 찻잔도 중국의 도자기가 수입되었다. 중국 도자기 찻잔에는 손잡이가 없어 안주인이 숟가락으로 코코아차를 떠먹고 있는 것이다.

프랑수아 부세<1720~1770>의 이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은 가족 간의 애정보다는 물질적인 비중이 컸던 18세기 개화된 가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은 외국문화와 물품을 도입한 부르주아의 새로운 일상 외에 당시 획기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어른들의 생활공간에 아이들이 같이 있을 수 없었다. 이 작품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있는 것은 가족 간의 애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시기에 가족 간의 애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화면 오른쪽 여자아이의 모습이다. 당시로서는 귀한 인형을 들고 있지만 등 뒤에 끈은 이자에 고정되어 있다. 차분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어린아이의 본능을 억제할 목적이다. 루소의 교육학이 도입되기 전으로 아이의 교육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18세기 프랑스의 부르주아가 아침에 코코아차를 마셨다면 서민들은 식사를 아침 겸 점심을 빵으로 해결했다.

18세기 프랑스 서민들의 주식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샤르댕의 <시장에서 돌아와>다. 

여인이 들고 보자기에 싼 닭과 커다란 빵은 시장을 본 것을 나타내며 여인이 머리에 쓰고 있는 외출용 모자와 스카프 그리고 구두는 시장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인이 탁자에 기대어 서 있는 자세는 시장에서부터 무거운 짐을 들고 와 힘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인이 기대고 있는 커다란 빵 두 덩어리는 서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 유럽의 대부분의 서민층 가정에서는 커다란 빵 덩이를 사서 일주일 동안 물에 적셔 죽으로 만들어 먹었으며 형편에 따라 죽에 우유, 치즈, 양파, 과일을 넣었다. 당시 서민들이 빵을 샀던 것은 집에 화덕을 설치하기 힘들었고 장작이 비싸 서민 가정 경제에 부담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빵집에서 만들어 놓은 빵을 사서 먹었다. 

구리로 만든 급수통은 수도시설 설치되기 전 대부분의 가정에서 물을 저장하기 위해 설치했었다. 급수통은 보통 구리로 만든 것을 많이 사용했으며 뚜껑과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급수통은 떡갈나무로 만든 받침대 위에 놓아두었으며 크기는 용량에 따라 다양했다. 급수통은 물을 저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당시 전제 가정의 3/2만 급수통을 설치했으며 급수통이 없는 가정에서는 나무 양동이나 도기 양동이, 철 양동이에 물을 보관했었다. 

장 시에몽 샤르댕<1669~1779>의 이 작품에서 여인이 시장에서 사 가지고 온 닭은 전통적으로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인이 얼굴을 거실 쪽을 향하고 있는 것과 붉어진 뺨은 소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와의 관계를 암시한다. 즉 닭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붉은색 리본을 묶은 여인의 블라우스 소매는 무거운 보자기에 싼 무거운 닭은 강조하고 있으며 바닥에 놓여있는 그릇과 쓰러진 물병은 여인의 바쁜 가사 노동을 나타낸다.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뜬금없이 아침 식사를 거나하게 먹고 있지만 의학적으로 아침식사는 두뇌 활동에 좋다고 하니까 거기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성화로 학창 시절 내내 한 번도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았지만 두뇌보다는 식곤증으로 아침 수업 내내 졸았던 기억이 난다. 몸에 좋다고 폭식하지 말아야지 한다.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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