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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내 몸이 역사관을 통과할 때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내 몸이 역사관을 통과할 때
  • 교수신문
  • 승인 2020.05.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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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세상을 떠나 한 서린 곳
보안과, 고문실, 사형장 등 전시관으로 탈바꿈
공간에 반응할 때 과거가 아닌 현재의 기억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경. ⓒ박찬희

형무소가 역사관으로 바뀌었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출발한 서울구치소가 1987년 이전하면서 사람을 가두던 오랜 역할이 끝났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가들이 갇혔던 이곳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름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활짝 열렸다. 역사관은 단일 건물이 아니라 사적지 전체다. 대지, 건물,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역사관을 두른 담벼락도 역사관의 일부로 이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형무소는 수감자를 통제하고 감시한다. 반대로 수감자는 통제에 순응하거나 저항한다. 때문에 역사관에 접속하는 방법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는 법과 다르다. 관찰과 감상에서 멈추지 않고 공간으로 쑥 들어갈 때 새로운 접점이 열린다. 박물관 진열장 속 유물에서 구체적인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유물 따로 사람 따로인 경우가 많다. 반면 역사관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사람들이 생활했었다. 지금은 텅 빈 공간이지만 상상으로나마 사람들을 불러낸다면 그곳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역사관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감각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고 역사관을 통과할 때 다양하게 포착된다.  

역사관 전체를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높은 곳에 오르면 된다. 사진이나 모형도 좋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 상상이 확장된다. 다행히 역사관은 인왕산과 안산 사이에 자리 잡아 인왕산에서는 정면이, 안산에서는 뒷면이 보인다. 줄지어 늘어선 붉은 건물, 경계를 나누는 긴 담, 높은 망루는 그 자체로 위압적이다.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주눅 든다. 일제 강점기 일제가 노렸던 효과다. 그 시기 이곳의 수감자들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였다. 해방 이후에는 굵직한 시국 사건 관련자들이 이곳에 수감되었다. 그들은 붉은 벽돌 집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생활했다. 그중 일부는 부당하게 목숨을 잃었고 지금은 그 죽음을 순국, 사법살인라고 부른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 ⓒ박찬희

수감자들만 형무소에 갇힌 건 아니다. 형무소 맞은편 마을에 머물면서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전해주고 수감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가족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혔다. 그곳을 옥바라지 골목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아파트에 자리를 넘기며 사라졌고 그 자리 한 켠에는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이라는 아담한 전시관이 자리 잡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옥바라지 길목까지 확장될 때 의미가 뚜렷해진다. 

위압적인 정문으로 들어가면 지붕이 삼각형인 전시관을 만난다. 원래 악명 높던 보안과였다. 1, 2층에는 서대문형무소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다루었고 지하에는 고문실을 재현하였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2층 중앙 전시실로 세 벽면을 수천 장의 인물 카드로 빼곡하게 채웠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 감시를 받던 요주의 인물들로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던 사람들이다. 멀리서는 ‘독립운동가’라는 집합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카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표정 있는 개인으로 다가온다. 단호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앳된 얼굴이나 무표정한 얼굴도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었으며 엄마이고 남편이었다. 하루하루를 웃고 고민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지하는 어둡고 침침하다. 가라앉은 눅눅한 냄새에 움찔한다. 고문하는 장면이나 취조 받는 장면을 보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한다. 고문하는 도구, 고문당한 사람의 증언 영상이 이어진다. 소름의 연속이다. 목적을 위해서 사람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작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의 고문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해방 이후 일부 경찰에게 이어졌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옛 남영동 대공분실,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 5국과 6국의 고문 시설은 따지고 보면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유산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옥사. ⓒ박찬희

옥사의 간수 자리에 서면 부챗살처럼 뻗은 옥사가 보인다. 감시하는 자는 한눈에 여러 곳을 보지만 감시당하는 자는 감시당한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옥사가 시작되는 간수의 자리는 어둡고 감방이 있는 복도는 밝다. 복도 천장에서 빛이 내려오도록 만들었고 감방 안은 밤에도 불을 끄지 않았다. 수감자를 위한 빛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를 위한 빛이다. 통제 장치는 감방으로 이어진다. 두꺼운 문은 밖에서 열린다. 벽에 달린 작은 감시창은 간단하면서 효율적인 통제 장치다. 밖에서는 안이 훤히 보이지만 안에서는 밖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감시창은 언제 어느 때 덜컥 열릴지 모른다. 이런 구조에서 수감자들은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화시킨다.

감방은 보는 위치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다르다. 문 밖에서 보면 안이 갑갑하겠구나 추측하는 정도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답답해진다. 투박한 창문에는 거친 창살이 달렸고 벽은 기분을 착 가라앉히는 흰색으로 칠해졌다. 빛마저 방 안에 갇힌 것 같다. 마음대로 밖을 볼 수도, 더군다나 나갈 수도 없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은 외부 운동이 금지되었고 그렇다고 감방 안에서 마음대로 누울 수도 없었다. 여름에는 사람의 열기로 옆 사람을 미워하고 마는 이곳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일까 살아지는 곳일까, 견디는 곳일까 견디어지는 곳일까. 감방은 집이 아니었다.

커다란 부채 같은 곳은 격벽장이다. 수감자들이 간단히 운동하는 곳이지만 미로에 갇힌 쥐처럼 붉은 벽 사이를 오갈 뿐 마음껏 뛰지 못한다. 벽 너머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차단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감시의 눈초리가 따라다닌다. 격벽장 입구에 간수가 서는 감시대가 설치되었다. 단지 조금만 올라갔을 뿐인데 누가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보여 격벽장 안 수감자들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권력을 쥔 간수는 자유롭고 권력이 없는 수감자는 규제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격벽장. ⓒ박찬희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가장 두려운 곳, 사형장이다.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조심스러워 말수가 줄어든다. 마지막 발걸음을 했던 이들은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잠시 역사관의 넓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들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을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았을까.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앞에 이를 때까지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작은 문을 넘어서면 생각이 끝나고 몸이 부르르 떨린다. 저 작은 목조 건물이 생의 마지막을 맞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세상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 사형 선고 후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형이 집행되어 세상을 떠난 인혁당 당사자들,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이곳에서 목숨을 다한 이들의 죽음이 그랬다. 조작 간첩으로 몰려 이곳에서 아버지를 잃은 한 피해자는 이곳을 두려워하고 주저했다. 몇 번을 방문하고 나서야 현장을 대면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때 비로소 헤아릴 수 없었던 한과 울분이 조금 씻겨 내려갔다. 억울함을 되새기거나 기억해 줄 사람 없는 사람들의 죽음은 어떻게 그 한을 풀어낼 수 있었을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 ⓒ박찬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다. 건물을 들어갈 때면 울분, 공포, 분노, 슬픔, 충격, 감동, 고마움과 같은 감정들이 밀려든다. 툭툭 튀어나온 감정들은 건물을 나와 넓은 대지를 걸을 때 비로소 진정되고 가라앉는다. 이렇게 역사관을 통과한 몸이 말한다. “그들에게 공감하려고 할 때, 공간에 반응할 때 역사관은 과거에 갇히지 않고 현재가 된다. 주어진 대로 기억하지 않고 내가 경험한 대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너머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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