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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도올 김용옥 논란'의 함의
[문화비평] '도올 김용옥 논란'의 함의
  • 김성기 문화비평가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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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1 16:08:36
도올 김용옥이 또 논란의 한가운데 서고 말았다. 요즘 텔레비전을 통한 그의 공자 강의 이전에도 그에게는 늘 시비가 그치질 않았다. 지난 한달 언론이 주도한 그 논쟁의 여파는 지금도 가라 않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줌마 논객’ 이경숙 마저 가세해 김용옥의 강의를 둘러싼 시비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과연 김용옥이 군자냐 소인이냐 하는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또 그의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지 아닌지 평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내 관심은 한 스타 학자의 TV 강의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의 정체가 뭐냐 하는 점인데, 특히 교수사회를 비롯한 지식계가 내보인 반응이 흥미로울 따름이다. 많은 학자들이 신문지상을 통해 김용옥 강의를 논하고 평했으며 이를 받아 무대 뒤편에서도 씹고 또 씹으며 되새김질하느라 분주하다.

먼저 김용옥의 TV 강의는 어떤 성격인가. 공자 사상을 대중에게 설파한다는 취지를 갖는다고 할 때 일단 그것은 교양 프로에 속한다. 하지만 교양프로라고 해서 오락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려면 과장된 제스처나 계산된 연기가 불가피하리라. 그것 없이 어떻게 장시간 원맨쇼를 시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김용옥이 철학을 갖고 코미디를 한다’는 식의 TV 바깥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그를 대하는 아카데미의 시선은 대체로 냉소적이며 비판적이다. 여기에는 대중매체에 대한 아카데미의 오랜 불신이나 편견도 작동하고 있을 텐데, 이와 관련한 주된 논점은 이렇다. 학자의 본령은 부단한 연구를 통한 지식의 온축에 있으며 따라서 그것의 계몽이나 대중화가 학자의 의무일 필요는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는 반면, 그러한 엘리트주의적 관점이 오늘의 학문을 일상과 삶으로부터 동떨어지게 했기에 지식 사회 환원이라는 차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학문 활동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는 것이다.

이둘의 시각이 전혀 상반된 것은 아니다. 학자의 역할 분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대세는 전자에서 후자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그간 잡문으로 치부되던 대중적 글쓰기에 너나 없이 매진하는 추이만 해도 그렇다. 저간의 지식 독점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이제는 그마저 또 하나의 맹목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그런데도 유독 김용옥의 말과 글에 대한 비판과 냉소는 거세고 거칠다. 앞서 전자의 관점을 유지한다면 김용옥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겠는가.

결국 김용옥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학계로 하여금 지식의 대중화 혹은 사회환원, 그 방법이란 과제를 직면하게 한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그 방법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묘연한 채 상호 불신만 커진다는 점이다. 그 불신은 다른 학자의 연구 학문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질적인 기준의 부재에서 연유한다.
타인의 학문적 능력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이는 자기 자신의 학문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 부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신 풍토 위에서 저마다 지식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데서 오늘의 혼란이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대목이 문제의 발원지이다. 학문연구의 사회 환원, 이게 학계 내부의 자생적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부의 불신 풍토가 그러한 추이를 이끈다는 점이다. 작금의 김용옥 논쟁은 지식의 대중화, 그 방법을 둘러싼 논쟁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오늘의 학계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확인하지 못한 데서 오는 아픈 갈등이 스며있다. 지식의 대중화는 그야말로 명분일 따름이다. 학문연구의 내적 보람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서로의 학문을 불신하면서 저마다 각개 돌파 차원에서 대중매체에 의존하는 추세가 높아지며 그럴수록 매체의 논리와 위력에 쉬 휘둘리기 십상인 것이다.

거듭 말하자. 문제는 김용옥이 아니다. 동양학에서 21세기의 비전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주제도 실은 허구적인 쟁점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학문 세계가 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대중매체가 자아내는 담론과 풍문에 쫑긋 귀 기울이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가늠할 학문적 방법이 부재하다 보니 대중매체를 통한 정체성 확인 혹은 상호 인정 투쟁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고로, 학자 공동체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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