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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 언론의 '부안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비판 : 언론의 '부안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 신순철 한동대
  • 승인 2003.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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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색된 청맹과니 언론...상식적 질문조차 던질 줄 모르다니

"아는 것이 힘"이라 했던가.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한없이 강조되는 오늘날에는 "힘이 곧 아는 것"이라고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이유인즉 날마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치, 사회적 변화를 매체가 아니고서야 알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보의 중요성은 점차 강조되는 반면 정보의 진실성과 사회적 함의는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정보를 통제하고, 나아가 독점하는 자는 곧 권력과 연결되고, 역으로 권력을 획득한 자는 정보를 통제하려는 유혹에 쉽사리 빠지고 만다. 권력의 중독성은 마약의 중독성을 능가한다고 한다. 사실 권력의 중독성은 어쩌면 정보의 중독성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힘이 곧 아는 것"인 오늘날 누가 정보를 통제하고, 만들어내고, 유통시키는가. 누가 사건을 사건으로 규정해 보도 여부를 결정하는가. 그것은 언론이다. 언론은 우리의 정보 공급원이 돼 우리의 제6감이 됐으며, 그 감시기능으로 인해 사회의 제4부가 됐다. 그렇다면 이다지도 중요한 언론이 부안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

원자력발전백서와 왜곡된 과학적 앎

부안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부안주민의 갈등을 우리는 "부안사태"라 부른다. 누가 이것을 "사태"라 이름 붙였을까? 다시금 그 답은 언론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보는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핵(폐기장)이 우리에게 절실한 해결과제가 되었을까. 놀랍게도 언론을 통해서는 좀처럼 알 길이 없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003 원자력 발전백서'라는 것을 주류 언론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핵폐기물은 일반 산업폐기물보다 안전하며, 핵폐기물에 대한 일반인의 혐오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무지의 소치며, 일부 환경단체의 반핵운동은 핵의 위험성을 과장해 일반 국민을 협박하는 처사라는 주장이 실려 있다. 또한 핵폐기물은 일반 산업 폐기물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감소하고 공학적 안전처리를 통해 인간과 환경에 전혀 해가 없도록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적 "앎"이 핵을 반대하는 사람과 핵에 대한 경계심을 "무지"의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 "앎"이 참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핵폐기장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도에 설치하려 한 것일까. 그토록 핵이 안전하다면 수혜자 부담의 원칙에 입각해 전력사용량이 많은 서울이나 대도시에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왜 체르노빌의 젖소는 아직도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우유를 만드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은 발전백서에 대한 언급은 자주 했지만 위와 같은 일반인의 상식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권력에 중독된 언론, 정보통제에 들린 정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치인들의 담론이다. 보상금 문제, 국민투표 문제 등 사사건건 약속을 뒤업거나 무시해온 것은 정부다. 어떤 정치인은 애초부터 "부안군민의 의견을 물을 계획도 없고,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부안군수의 폭행에서 '80년대 정원식 총리 폭행사건'을 연상했는지 주민들의 폭력행사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국민의 의사를 허투로 무시하는 폭력은 어찌할 것인가. 민주를 국시로 삼는 이 나라에서 민주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왜 언론은 이것을 간과한단 말인가.

"부안사태"에서 "광주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는 건 필자만의 노파심일까. 5·18묘역에 참배하고 "제주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정부차원의 사과를 한 노무현 대통령이 부안을 "폭도들의 무법천지"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때 우리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거짓으로 선전선동하던 언론이 지금 부안을 다시 광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언론을 통한 국민의 알권리와 의견수렴이라는 대의는 지금 권력에 중독된 언론과 정보통제와 행정편의에 몰두하고 있는 정부가 만들어내는 담론 속에서 실종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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