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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다 원격강의, 진다 1등 미국
뜬다 원격강의, 진다 1등 미국
  • 장성환
  • 승인 2020.05.0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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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종결, 새로운 규칙 자리 잡아
개도국들, 새 차원의 민주주의 진입

전 세계 석학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국제적인 위기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종결되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 각 나라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원격강의가 보편화되고, 과학 이론에 대한 여러 논쟁을 통해 대중들의 과학 이해도가 더 높아지게 될 거라고 내다봤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선진국의 권위 하락으로 더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될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팬데믹(pandemic) 상태가 됐다. 6일 오후 3시 기준 전 세계 213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369만421명, 사망자는 25만8천323명에 달한다. 전 지구적 공포가 된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이어지고 어느 정도의 피해를 야기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베트남 전쟁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가 거의 확실시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 전문가들이 백신 개발에만 최소 1~3년이 걸린다고 말하고 있어 장기전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역병은 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와 국제질서의 격변을 초래했다. 최초의 팬데믹으로 알려진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비잔틴 제국의 몰락을 재촉했고,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면서 사회질서를 송두리째 바꿨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현재도 생산 차질과 수요 위축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대공황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주요국들이 강력한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 조치를 취하며 수출규제 정책을 이어나간다면 세계 경제는 대공황과 유사한 L자형 장기 침체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의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조심스레 예측해 보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렛 소장은 “코로나19가 경제의 세계화를 종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본인들의 첨단 기술과 지적 재산권 사용을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맹국도 이에 따르도록 했으며, 탄소 배출량 감축 요구에 따라 많은 기업이 장거리 공급망에 의존하는 것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가 위기인 상황에서 코로나19가 글로벌 공급 체계에 큰 타격을 입힐 거라는 의미다. 이어 “세계 경제 통합에서 오는 공동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동기가 없다면 20세기에 만들어진 세계 경제 거버넌스 구조의 기반은 심각하게 위축되고, 21세기 초에 정의했던 상호 유익한 세계화라는 개념이 계속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태로 보인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등을 쓴 이스라엘의 미래학자이자 역사가 유발 하라리도 비슷한 예상을 했다. 유발 하라리는 프랑스 잡지 '르 포원',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 등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는 우리 시대에 지극히 중요한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여 가고 있는 중"이라며 "앞으로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는 대규모 사회 실험을 하게 되고, 그것이 앞으로 몇 십 년의 세계 형태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강의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내가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인데 이곳에서 몇 년 전부터 교실 강의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강의를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나 반대 의견이 커서 실행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대응 차원에서 모든 캠퍼스를 폐쇄하자 대학이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나는 이 방법으로 3개의 강의를 진행했고 다 문제없이 잘 됐다"며 "나는 위기가 지난 후에도 대학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세계 각국이 기본소득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일부 전문가들이 기본소득 보장을 검토했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이에 대해 실험하기를 거부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현재 미국의 극단적인 보수 행정기관들조차도 위기 내내 국민 개개인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에드가 모랭 (Edgar Morin)은 “코로나19가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불확실성과 공존하는 방법을 가르쳐 궁극적으로 인본주의의 형태를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9일 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의 인터뷰에서 모랭은 대중들이 과학을 절대적 진실이자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의 총집합으로 인식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 시민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과학자문위원회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지만 취해야 할 조치, 응급 상황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치료법, 주어진 약물의 적합성, 수행될 임상 시험 기간 등 매우 다르거나 모순된 관점을 과학자들이 옹호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논쟁이 과학을 번창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대중들은 과학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 이론이 종교적 교리와 같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논쟁의 결과가 과학을 번창하고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거라는 말이다.

남미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오히려 코로나19 위기가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남미 국가 여론을 연구하는 칠레의 여론조사학회(Latinobarómetro) 설립자인 마르타 라고스는 지난달 23일 독일 잡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라고스는 “지금의 이 위기를 보면 우리는 소위 말하는 제1세계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최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선진국의 권위 상실은 어떤 국가도 세계적 리더십을 맡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 장기간 위기에서 이점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봉쇄령 등 여러 구속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방식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법의 지배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국가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부가 작고 강력한 엘리트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라고스는 “남미 국가들은 더 많은 자유와 평등,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러한 움직임을 혁명의 형태가 아닌 "민주적 권력 행사의 재정의”로 규정했다.

장성환·장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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