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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가야 할 먼 길은?
시험대 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가야 할 먼 길은?
  • 교수신문
  • 승인 2020.05.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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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의 민주주의│김경동 외 2인 지음│백산서당│268쪽

오늘날 민주주의, 개별 국가와 민족 이기주의 부상으로 위기
국내도 소음민주주의와 폭민주의가 자유민주주의 근간 허물어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심화돼야

30여 년 전 구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 체제가 해체될 무렵, 자유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비교우위의 체제인 것으로 보였다. 논란이 있긴 했지만 당시 그 체제가 “인간 이데올로기적 진화의 종점”(프란시스 후쿠야마)이라고 할 정도로 낙관론이 대세였다. 바로 그 민주주의 체제가 안방에서부터 위기에 처해있다는 진단이 오늘날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과 영국의 브렉시트로 표면화된 포퓰리즘, 푸틴과 시진핑을 위시한 구사회주의권의 권위주의 정권, 그리고 신흥 개발도상국 가운데 독재자 마르코스를 국립묘지에 다시 묻은 필리핀의 두테르테, 터키의 에르도안,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남미의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 정치 지평도의 판도는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민족주의와 지역 이기주의가 부상하는 현실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해법은 없을까. 

<위기 속의 민주주의>(김경동, 백완기, 임현진 편)의 6인의 필자들은 이와 같이 전통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농단하는 시대의 불투명한 전망 속에 민주주의의 길을 묻고 있다. 그 가운데 헬트 교수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1945년 이래로 가장 어두운 시대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상호 존중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일국의 주권적 공동체 원리이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적 지구화의 윤리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개별 국가와 민족의 이기주의가 부상하면서 다자간 협상은 좌초되고, 민족주의적 대중에 영합한 포퓰리즘은 대외 정치를 왜곡시키면서 대내 정치의 권력을 용이하게 확보하기 위한 전략들이 성공시키고 있다. 이는 환경, 전염병, 테러 등 전 지구적 의제들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동전선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재앙적인 수준의 폐해를 유발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는 긴밀하게 서로 연동되어 있다. 문제는 그러한 상호의존성에 부합하는 협의의 원칙으로서 자유 민주주의가 더 이상 대세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일견 이는 서구 중심적인 세계화의 실패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임혜란 교수가 지적하듯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IMF를 겪은 세대들은 경제적 세계화를 ‘박탈’로 경험했고, 세계화는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게임이었던 세계화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확대시키고, 과거 계급 정치가 복지 포퓰리즘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심화되어야 할 필요성은 여기에 있다. 국제적으로도 세계 경제 협의체가 G7에서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G20으로 확대된 것은 이러한 불균형한 세계화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긍정적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 측면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의 증후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기성정당들의 대표성을 상실하고 정당정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지난 촛불 정국은 ‘혁명’으로까지 평가되곤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확대된 반면 부정적인 양상들도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의 전자 아고라에서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지역 혐오, 인신공격은 일상이 되었다. 무책임하게 흥미, 루머, 분노를 유포하는 소셜 미디어에서 보수와 진보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고 상호 비방은 도를 넘는다. 그만큼 사회적 갈등들을 중재할 수 있는 정당정치의 대표성의 회복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제도권 정당들은 이를 위한 노력보다는 소셜미디어에 의존하거나 심지어 이용하려는 경향마저 보인다. 소음민주주의 (dinocracy), 더 나아가서 다수면 무조건 이긴다는 식의 폭민주의(mobocracy)는 당파를 초월한 법과 정의에 기반을 두고, 상호 존중과 관용을 견지해 온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문다. 

이러한 문제들을 필자에 따라 다양한 방향에서 검토하는 <위기 속의 민주주의>는 장래 민주주의의 전망을 위해 참조해야 할 많은 시사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새로운 도전들을 맞고 있고,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오래전에 이미 그러한 도전들을 예견했던. 19세기 미국 시인 휘트먼의 언급을 상기하며, 민주주의가 가야 할 ‘먼’ 길을 생각해볼 때이다. 

“나는 펜과 혀에서 나오는, 민주주의라는 철자들의 메아리와 들끓는 열정들에도 불구하고 그 진정한 의미는 여전히 잠들어 있다고 반복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실행되어야 할, 그래서 그 역사가 아직 쓰여지지 않은 위대한 단어이다.” (Walt Whitman, Democractic Vistas) 

 

이창남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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