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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그리고 프라이버시의 죽음
코로나, 그리고 프라이버시의 죽음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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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 확산될 때 ‘전자통행카드’를 만들었다. 이 카드는 홍색, 황색, 녹색 세 가지다. 스마트폰 앱에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체온, 격리대상 여부 등을 입력하면 전자 카드가 자동으로 발급된다. 녹색 카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 해당한다. 황색은 녹색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고 홍색은 아예 외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전자통행카드는 지난 2월 저장성 항저우에서 처음 선보였다. 그 뒤 각 성으로 퍼져나갔다. 알리바바 자회사인 알리페이(즈푸바오)가 개발해 알리페이 헬스코드 시스템으로 불린다. 신화통신은 이를 두고 ‘디지털 중국’의 개가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민간회사가 방대한 의료 기록을 확보하게 됐는데도 건강 정보 프라이버시에 대해선 말이 없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NYT)는 중국이 디지털 통제사회로 가고 있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공중위생이냐, 프라이버시냐? 각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디지털 감시 기술을 활용하는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농경사회였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공동체의 전통이 두드러졌다. 디지털 감시에 대한 반대보다는 협력을 통한 대처가 강조됐다. 유럽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워 확진자 공개나 스마트폰 위치 추적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은 동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쯤에 서 있다.

이러한 모습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바뀌고 있다. 감염병 대응을 위해 정보 보호 관련 규제를 완화한 나라가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미국 일본 등 세계적으로 31개국이나 된다. 정보와 사생활 보호를 위한 국제적 협의체인 글로벌 프라이버시 어셈블리(GPA)는 이러한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에 따라 민간 기업이 종전보다 쉽게 개인의 건강 정보를 획득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가 허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이 나서서 미국인의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공중위생을 위해 이용하는 방안을 최근 구글, 페이스북 등과 논의했다. 더욱이 미국 정부는 구글과 손잡고 암호명 ‘프로젝트 나이팅게일’을 시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업은 미국 내 21개 주에서 환자 수백만 명을 상대로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민간기업의 대규모 생체의학 정보 사냥이 중국에 국한된 게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전자통행카드를 내놓은 알리페이가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사회신용제도’ 개발에도 참여했다. 사회신용제도는 금융거래 내역, 개인 정보, 행동 패턴, 대인 관계 등을 토대로 각 개인에게 신용점수를 부여한다. 쉽게 말하면 빅 브라더 랭킹을 매기는 것이다. 금융정보를 갖고 있는 알리페이는 이를 위해 차량공유기업 디디추싱과 결혼정보업체 바이허와도 제휴했다.

이 제도에 따라 점수가 좋은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각종 혜택을 받지만 반대의 경우 수많은 제한을 감수해야 한다. 점수가 나쁘면 결혼에도 영향을 받고 호텔 예약이나 항공기 탑승이 금지되기도 한다. ‘점수화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정경은 2010년 미국에서 출판된 베스트셀러 소설 ‘아주 슬픈 진짜 사랑 이야기(Super Sad True Love Story)’에도 그려져 있다. 디스토피아적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거리에 신용 기둥이 늘어서 있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 사람 신용등급이 표시된다. 중국이 아니라 뉴욕에서도 건강 기록부터 신용점수까지 공유되는 상황을 설정한 게 놀랍다.

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
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

그렇다면 코로나19의 기습에 따른 강한 정부의 등장과 ‘감시의 제도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예외적인 상황에 대응한 법률의 경우 일몰 조항을 둔다든지, 미국 뉴욕주처럼 긴급 행정 조치의 지속 시행 여부를 매달 재검토하는 것은 눈길을 끈다. 하지만 ‘프라이버시의 죽음’에 맞서는 유일한 해답은 깨어있는 당신이다.

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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