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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도매 진출, 도서 유통 시스템 개선 꾀하는 계기로 삼아야
교보문고 도매 진출, 도서 유통 시스템 개선 꾀하는 계기로 삼아야
  • 장혜승
  • 승인 2020.04.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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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 좌담회 개최

거대 출판 유통업체 교보문고가 오프라인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도매업에 본격 진출하기로 하면서 우려가 나뉘는 가운데 출판·서점 업계에서는 이를 도서 유통 혁신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 나왔다.

24일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가 '교보문고 도매 진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좌담회에 참석한 출판계, 도서유통계, 서점계 등 관계자들은 교보의 도매 진출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밝히고 각자 도서 유통의 문제점 및 해결 방안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좌담회의 포문을 연 한국서점인협의회 최낙범 전 회장(불광문고 대표)은 "우리 협의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일단 '우려'를 표하는 수준에서 성명을 냈다"면서도 “교보가 중소형 서점에 책을 공급하려는 노력은 몇 년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고 말했다. 최 전 회장에 따르면 지금도 도매 업체로부터 책을 수급받지 못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 한시적으로 교보문고와 거래를 하고 있다. 최 전 회장은 “동네서점 기능이 부실화된 상태에서 독과점 업체인 교보문고의 시장 쟁탈전과 소형 서점의 어려움이 상호 이해가 맞았던 측면이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전 회장은 ”도서 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될 거고 이런 환경변화 속에서 도매 시장이 굉장히 약화될 텐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상황에서 도서 유통의 선진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불투명하고 후진적인 도서 유통 구조가 문제

그러나 또 다른 서점단체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은 그동안 불투명하고 후진적인 유통 구조로 인해 중소 서점들이 겪은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중소 서점을 차별하지 않고 지역 서점의 가치를 존중하는 그 누구와도 함께 하겠다"고 말해 교보의 진출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출판 유통 기능을 가진 한국출판협동조합의 황순록 전무는 ”거대공룡 출판유통기업인 교보문고가 이미 기존 도매업체에 비해 우월적인 매입율로 할인경쟁에 뛰어들어 기존 도매유통보다 2~3% 낮은 공급가로 도서관 납품을 대행했다“며 교보문고의 진출로 초래될 독과점은 결국 지역서점과 중소출판사의 피해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황 전무는 ”소매점이 도매상에 요구하는 게 도서의 안정적인 공급과 일관된 영업정책을 요구하는데 이런 요구사항들이 실현되려면 도매업체에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의 할인경쟁 체제에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기존 도서 도매업체인 웅진북센의 황종운 본부장도 지역서점 1곳이 폐업했을 때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지역서점 폐업을 막기 위해 지역 배송 차량을 증차한 사례를 언급하며 수년째 도매유통업체들끼리도 무한 경쟁을 해온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황 본부장은 "가뜩이나 영세한 도서 도매업계의 형편을 생각할 때 거대업체인 교보가 뛰어들 경우 나머지 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라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국 동네책방네트워크 정병규 회장도 가세했다. 정 회장은 ”상당수 서점들은 이미 교보와 작은 규모의 거래들을 하고 있었다“면서 교보의 역할은 지금의 역할로도 충분하다며 교보가 도매업에 진출한다면 ”새로운 갑의 탄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업계에서는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은 ”지금 교보 독과점보다 온라인 독과점 강화가 더 큰 문제“라면서 출판사가 점점 같이 운영할 서점들이 없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박 이사장은 ”온라인 서점의 매출만 점점 오르고 오프라인 서점들은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데 출판사의 거래 대상인 오프라인 서점들을 살려야 출판사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서 유통 시스템 개선 논의를 위한 정기적인 자리 마련해야

이처럼 논의 주제인 교보문고의 도매업 진출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낙후한 도서 유통 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논의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참가자들 모두 동의했다.

한국출판인회의 박성경 유통정책위원장은 "교보의 도매업 진출은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당연히 많은 관계자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교보가 도매에 진출한다고 하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교보 한 기업에 생사여탈권이 쥐어지는 꼴”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기존 동네서점들이 폐업할 경우 출판계와 서점계에서 그 여파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유통질서에 대한 문제를 고민할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박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도서 유통 질서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며 정기적으로 모여 지혜를 모으다 보면 한꺼번에 모두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하나씩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일부 소형서점 입장에서는 교보문고의 도매 진출을 환영할 수도 있다면서도 교보문고의 도매가 점유율을 키울 경우 ▲도매상의 도산 ▲온라인 서점 수익 감소로 인한 타 온라인 서점 도매 진출로 경쟁 격화 ▲공룡화된 교보문고의 납품가 인하 요구 가능성 등을 들며 악영향을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한 소장은 “지금의 기술 발전 추세에 맞춰 도서 유통의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판사가 스마트폰 하나로 서점 주문을 확인하고 승인만 하면 자동으로 배본이 되고 수금이 되는 체제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기술적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한 소장의 설명이다.

이어지는 자유토론에서도 참석자들은 교보문고의 도매 진출과 관련해 의견의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낙후한 도서 유통 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논의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위주의 매대 장식을 비판하면서 진짜 독자가 원하는 책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은 “지역 서점이 몰락할 동안 지역서점의 파트너인 도매업계와 중형 서점들이 매출 신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위기의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상생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웅진북센의 황종운 본부장은 도매업체들이 구하지 못해 서점이 판매하지 못한 책이 30%에 이르는 고충을 호소했다.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미래 산업의 발전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온라인독과점은 출판산업 전체를 죽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동네책방네트워크 정병규 회장은 교보문고의 도매업 진출에 대해 다시 한번 우려를 표하면서 과거 도서유통업계 1위인 송인서적의 부도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출판 유통업계의 채질 개선을 촉구했다.

한국출판협동조합의 황순록 전무는 ”출판사와 서점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다시 한번 도서 유통 시스템의 개선을 강조했다.

출협 관계자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앞으로도 도서 유통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들을 꾸준히 만들면 좋겠다“면서 ”출판계와 유통업계가 다시 만나는 방법들을 고민해보고 오늘 논의를 더욱 진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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