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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물관 정원 밤 산책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물관 정원 밤 산책
  • 장혜승
  • 승인 2020.04.2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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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변화에 따른 박물관 정원 밤 산책 즐기기 좋아
유물은 향기와 공기와 소리로도 기억돼
낮에는 꽁꽁 숨겼던 비밀의 세상이 드러나
밤 산책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일
시각이 제한되면서 다른 감각이 열려
거울못.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거울못.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밤에 산책한다. 낮 동안 쌓인 긴장을 내려두고 가까운 공원, 마을길로 나선다. 산책길은 익숙하고 또 낯설다. 익숙한 풍경이 어둠에 잠기면서 비현실적인 세상처럼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 보인다. 신선한 자극이다. 나에게 집중되었던 사고를 주위로 향하자 풍경이 새롭다. 밤 산책의 매력이다. 이 문장에 박물관 야외 정원(옥외전시장)을 넣는다면 그 매력은 뭘까?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정원은 밤 산책하기에 참 좋다. 늘 열려있다. 박물관 전시실이 문을 닫는 시간에도 야외 정원은 개방되었다(07:00~22:00). 박물관 가운데 특별한 경우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면 된다. 곳곳에 유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섰다. 탑이 마을을 이루는가 하면 깊은 대숲에서는 불상이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는 은퇴한 원각사 종이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열 지어 선 승탑이 개성을 다툰다. 유물들은 크고 작은 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길은 오솔길이었다가 마을길로 넓어졌다 깊은 숲으로 이어진 은밀한 길로 바뀐다. 걷는 맛이 좋다. 야외 정원 초입에는 비밀 세계의 입구 같은 거울못이 펼쳐졌다. 

야외 정원의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야외 정원의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밤의 야외 정원은 실내 전시실과 다르다. 실내는 어둠, 조명, 공기, 소리, 시간의 변화가 통제된다. 반면 야외 정원은 인공조명을 제외하면 자연의 변화에 따른다. 초저녁 어둠이 몰려오면서 어둠은 점점 깊어간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어둠은 또 다른 빛을 낸다. 어둠의 깊이에 따라 유물들도 제 모습을 바꾼다. 계절에 따라 나무들이 바뀌고 시간에 따라 공기와 향기가 달라진다. 바람 부는 날이면 대숲에서는 서걱거리는 소리, 바람이 멈추면 내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밤이면 착 가라앉은 공기와 신선한 향기가 유물과 산책길을 감싼다. 그곳에서 유물은 향기와 공기와 소리로도 기억된다.

밤의 야외 정원은 낮과 또 다르다. 낮의 정원은 훤하게 드러났다. 빛은 유물만 비추지 않는다. 골고루 뿌려줘서 평면적이며 명백하며 이성적이다. 밤의 정원에서 조명은 유물에 집중되었다. 평면적으로 보이던 유물들은 입체적으로 바뀌면서 살아난다. 어둠이 깔리면서 정원은 비밀스러워진다. 낮에는 꽁꽁 숨겼던 비밀의 세상이 서서히 드러난다. 낮 동안 눈에 눌렸던 감각들이 살아나고 이성 아래 조용하던 상상력이 소란스럽게 튀어나온다. 낮 동안 관찰하고 지켜보던 유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그곳에서 사람도, 유물도 변신을 거듭한다.

야외 정원의 불상.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야외 정원의 불상.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물속으로 어둠이 파고든다. 하늘빛을 담아내는 거울 못은 서서히 검은 거울 못이 되었다. 야외 정원의 초입에 자리 잡은 거울 못은 저녁과 밤을 맞기에 좋다. 마음에 드는 곳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으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운이 좋으면 떠오르는 달이나 달빛 어린 연못을 만난다. 검은 거울 못을 보고 있으면 멀찍이 미뤄두었던 생각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다. 연애편지처럼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부르고 감정은 또 다른 감정을 부른다. 거울 못은 끊임없이 속 이야기를 끌어낸다.

밤의 호수는 단지 검지 않다. 깊다. 흑(黑)이 아니라 현(玄)이다. 낮의 빛으로 빛나던 색들이 빠져나간 연못에 어슴푸레한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겉모습만 비추지 않고 드러나지 않던 속 모습을 불러온다. 어느새 생각은 사유로 바뀌면서 깊은 거울 바닥으로 내려간다. 속이 훤한 낮의 거울 못은 여유롭고 깊은 밤의 거울 못은 묵직하고 치열하다.

야외 정원의 승탑.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야외 정원의 승탑.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밤이면 거인들이 깨어난다. 석탑들이다. 낮 동안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잠든 탑들이 조명과 달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켠다. 탑들이 깨어나면서 탑 마을이 생겨난다. 꿈결 같은 길을 따라 걸으며 탑을 만난다. 자기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걷다 우뚝 멈춰 서면 탑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김새도, 나이도, 고향도, 사연도 다르다. 탑들은 떠나온 고향, 이미 지도와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어도, 고향으로 가려 한다. 탑 지붕이 고향을 찾아가는 새의 날개처럼 흔들려 보인다.

마을의 중심 같다. 오래된 당산나무 같다. 개성 남계원 터 칠층 석탑은 탑 마을 가장 앞에 놓였다. 높이로 따지면 이곳에서 가장 높다. 장중하고 경쾌하다. 달빛 내리는 밤 이 탑 앞에 서면 고개를 확 젖혀야 한다. 높디높은 탑의 끝은 깊고 깊은 우주 어딘가에 잇닿았다. 원래 탑 안에 고려 시대 <묘법연화경> 일곱 축이 들어 있었다.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담은 경전이다. 탑은 밤마다 영축산에 들려오는 소리를 모아 허전한 몸 안을 차곡차곡 채운다.

그곳에 불상이 있었다. 탑 마을을 떠나 한적한 길을 따라가다 대숲을 만난다. 갈림길에서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가면 그곳에 등대처럼 불상이 서있다. 낮에는 이곳을 지나치기 쉽고 온다고 해도 그다지 불상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불상은 특별할 것 없다. 밤이 되면 달라진다. 조명을 받은 불상은 감춰둔 얼굴을 드러낸다. 몸에 달라붙은 팔도 움직일 듯싶다. 숲으로 둘러싸여 어둠이 한층 깊다. 불상 앞으로 법당의 주춧돌을 상징한 듯 돌들이 놓였다.

돌에 앉아 불상을 바라본다. 얼굴이다. 얼굴을 향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을까, 불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펴봤을까. 불상의 생명은 얼굴이다. 얼굴만 남은 불상과 얼굴만 없는 불상은 차이가 크다. 사람들은 신성한 힘이 얼굴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믿음이 지나쳐 남자아이를 낳기 위해 눈을 파내고 코를 갈았다. 불교를 미신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이 불상의 목을 잘랐다. 밤의 불상은 얼굴에서 빛이 나온다.

끝내 넘어가야 할 화두 같다. 숲을 나오면 장대한 박물관 건물과 맞닥뜨린다. 그것도 잠시 건물 앞에 가지런히 늘어서 반짝거리는 보석들 앞으로 간다. 고승의 무덤인 승탑이다. 낮 동안 거대한 박물관의 위세에 눌려서였을까, 승탑으로 오는 관람객의 발걸음이 드물다. 그곳에 만만한 작품은 없다. 한 점 한 점 승탑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주인공은 불교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승탑을 밝히는 조명이 커지고 거대한 박물관 벽면이 무대의 배경처럼 어두워지면서 승탑은 반짝거린다.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승탑의 형체는 분명해지고 굴곡은 도드라지고 조각은 튀어나온다. 단단히 무장한 신장상은 기지개를 켜고 구름을 부리는 용은 하늘을 휘감는다. 드디어 밤의 전시실이 열렸다. 조사 전이다. 그 순간 화두 같은 거대한 박물관을 넘어선다.

고승들이 승탑에서 나와 산책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종을 전한 도의 선사의 제자 염 거화상, 후삼국 시대 신라를 지지한 진경 대사, 그의 제자로 스승과 달리 고려를 지지한 진공 대사가 그들이다. 위대한 고승의 입적은 정치적이다. 그의 유지와 상관없이 죽음은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거나 산문의 영광을 드높이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 결과 시대를 대표하는 승탑들이 탄생하였다. 명맥이 끊어진 곳에 홀연히 남아있던 고승의 분신은 수집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제자리를 떠나 세상을 유전하다 이곳으로 왔다. 여러 곳에 흩어졌던 고승들이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났다.

밤 산책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낮과 다르고 안다고 믿었던 세상과도 다르다. 시각이 제한되면서 다른 감각이 열린다.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밤의 유물은 살아난다. 유물과 이야기를 나눈다. 박물관 밤 산책은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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