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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호텔의 철학자들
심연호텔의 철학자들
  • 조재근
  • 승인 2020.04.23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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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철학자들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존 캐그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존 캐그

존 캐그 | 전대호 | 필로소픽 | 280쪽

망치는 무언가를 부수는 도구이자 고치는 도구이다. 이 책의 저자 존 캐그에게 니체 철학은 삶의 망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철학이 목숨을 구했다고 자주 말하지만, 실은 철학 때문에 죽을 뻔하기도 했다. 열아홉 살, 그에게 니체 철학은 삶을 부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알프스로 첫 여행을 간 존 캐그는 알프스에 압도당한다. 즐비한 어버이산, 가파른 언덕길… 적막하기만 한 그곳의 모든 것이 그를 고독하게 했다. 니체가 거기서 자신을 돌아봤듯, 그도 그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러자 심연도 그를 들여다본다. 살이 에는 듯한 고독, 무언가를 계속 갈망하게끔 만드는 욕망은 끝내 그의 정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단식을 감행하다 크레바스로 몸을 던져 자살하기 직전 그는 겁에 질려 산행을 멈춘다. 그는 어릴 적 죽은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렸고 니체처럼 아버지를 갈망한다. 알프스에서 돌아온 뒤에도 니체 철학의 우울한 힘은 그를 계속 사로잡아왔다. 17년 뒤,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가족과 함께 알프스를 다시 찾는다. 아내인 캐럴을 만나며 “니체에게서 거의 벗어났”다고 주장하던 그는 다시 한번 니체를 마주친다. 전에 그를 무너뜨릴 뻔했던 니체 철학은 그의 삶을 고치는 망치가 된다. 니체 철학은 그의 안온한 삶을 부숴나가며 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철학이 페이지 너머 꿈틀대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아도르노, 칼 융, 프리모 레비…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니체 ‘덕후’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의 아이돌인 니체의 삶을 뒤쫓는다. 그가 살던 곳, 그가 걷던 곳, 심지어 그의 숨결까지 느껴보려는 그들의 ‘덕심’은 뜨겁고도 순수하다. 미국의 철학교수인 존 캐그는 이 니체 덕후들의 계보를 계승한다. 그는 니체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하려는 듯하다. 니체를 사랑한 철학자들이 심연호텔로 모였듯 그도 심연호텔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 니체를 쓴다. 바그너가 니체에게 속옷 심부름을 시킨 일부터 루 살로메와의 관계에서 지질하기만 했던 모습 등 니체의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가감 없이 써내려간다. 그 뒤 인간 니체가 느낀 감정을 사상과 연결시켜 자신의 삶에 투영한다. 이는 니체의 삶과 철학이라는 밑그림을 두고, 그 위 그 자신의 삶의 윤곽선을 선명히 그리는 펜터치 기법같은 작업이다. 니체를 마주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간다. 또한 그는 그 자신이 가이드가 되어 독자에게 니체가 살던 심연호텔로 들어오도록 안내한다.

이 책의 미학은 니체 철학을 두 번 쓴다는 점이다. 한 번은 머리로, 한 번은 몸으로. 혹자는 때때로 니체 철학을 청소년용 철학이라고 말한다. 자아도취에 빠진 질풍노도의 청년이면 니체가 잘 어울릴지 몰라도 어른이 되기 전에는 떨쳐내야 하는 과대망상의 산물이라고. 청년기의 존 캐그는 니체 철학에 흠뻑 빠진 채 살아왔다. 그러나 나중에 한 번 파경을 겪고 난 뒤 니체 철학의 자장에서 벗어나려 해왔다. 그는 다시 온 알프스에서 머리나 가슴으로만 알던 니체 철학을 몸으로 다시 써내려간다.

니체가 아버지가 된다면 어떨까? 그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니체 철학을 고독한 철학이 아닌 삶을 긍정하고 “그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의 철학으로 받아들인다. 산길에서 니체를 사유하는 그의 태도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지닌 산책자의 태도와 비슷하다. 몸으로 사유한 니체는 그에게 삶을 다시 살게끔 해주는 철학자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듯 자신의 삶을 솔직히 써내려가며 니체 철학이 청소년용 철학이라는 오명을 벗겨내고 중년의 철학으로 다시 써내려간다. 그러나 철학이 모든 것을 곧장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는 두 번째 알프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치열한 사유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암시한다. 그것이 니체가 말한 끊임없는 “되어감”의 과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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