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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국가 대한제국
극장국가 대한제국
  • 조재근
  • 승인 2020.04.23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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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 성취 과정 그려
극장국가 대한제국 / 김기란
극장국가 대한제국 / 김기란

 

김기란 | 현실문화 | 351쪽

1897년부터 1910년까지 불과 10여 년 남짓 존재했던 대한제국의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제국의 시대, 황제의 시대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고종은 자신이 통치할 대한제국을 유럽의 전제군주가 통치하는 제국에 맞춰 새롭게 정비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대한제국 선포는 서구 제국들이 정복자의 야욕을 숨기지 않던 시대, 현실적으로 만국공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세계 질서 속에 편입되어 대한제국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고종은 피정복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과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열망의 간극을 스펙터클의 극적인 효과로 넘어서려 했다. 유럽의 제국에 비견할 만한 대한‘제국’의 외양을 갖추는 한편, 황제권을 과시적으로 재현하는 국가의례와 국가 공식행사를 대대적으로 기획했다. 정치적 ‘상징’을 통해 불안한 정치적 ‘현실’을 극복하려 한 고종의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극장국가 대한제국』은 그 시작부터 균열을 내재한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를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고종이 어떻게 현실적인 정치권력이 아니라 극장국가의 효과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성취했는지를 입증해 보인다. ‘극장국가(theater state)’는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발리 왕국을 분석하는 데 적용한 개념이다. 기어츠는 1900년대 발리 왕국에서 통치자의 정치권력 행사가 일련의 정치제도가 아닌 국가의 과시적 재현을 통해 이루어졌음에 주목했다. 곧 극장국가는 국가의례를 통해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국가 형태를 의미한다. 권력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재현물을 통해 통치자가 지금, 여기 함께한다고 믿게 되는 순간 비로소 강력한 정서적 환기, 일체감의 집단적 분기(奮起)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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