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9:00 (토)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6] 자연은 어떤 사람에게도 남을 지배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6] 자연은 어떤 사람에게도 남을 지배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0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니 디드로
디드로의 초상화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는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다. 디드로에 대한 문헌은 대단히 풍부하지만, 그를 아나키스트로 다룬 문헌을 나는 본 적이 거의 없다. 뒤에서 보듯이 모렐리는 디드로의 필명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디드로 연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하튼 아나키스트로 보이는 모렐리와는 달리 디드로는 계몽주의 사상가로 유명하고,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 그의 책 어디에서도 그를 아나키스트로 설명하지 않는 만큼 여기서 그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디드로도 루소처럼 가난한 칼 장수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에 의해 성직자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보헤미안 생활을 하여 아버지에 의해 감금되기도 했다. 그 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작가가 되기로 하여 가정교사나 서점 점원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이에 분개한 아버지가 의절을 선언하여 10년간 빈곤에 시달렸고, 가난한 여성과 결혼하여 아버지와는 더욱 멀어졌다. 빈곤 속에서도 디드로는 《백과전서》의 공동 편집자가 되어 실용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의 확산을 통해 점진적인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자들의 자신감을 공유했다. 지식을 일관성 있는 전체로 제시함으로써 《백과전서》은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사고의 샘이 되었다. 

디드로는 현실 정치에서 군주제를 받아들였지만, 보다 계몽된 형태로 받아들였다. 그는 에세이 《정치적 권위》에서 왕이 인민과 계약을 맺고 끊임없이 상의하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한 글에서는 교회 재산을 국유화하고, 자유로운 보편적 교육을 제공하며, 완전한 종교적 관용을 보장할 것을 권유했다. 공리주의자로서 그는 모든 좋은 입법의 근거는 행복뿐이라고 주장했다. 루소의 일반의지에 대한 개념을 채택한 그는 개인은 인류 전체의 이익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과전서의 표지

그러나 디드로는 양면적인 사상가여서 언제나 중심적인 철학적 문제에 대해 마음을 정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그는 그가 독단적인 의견을 파괴하고 공개 토론을 장려할 수 있게 한 대화의 변증법적 장르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엄격히 결정론과 유물론을 주장했지만 그의 대화체 풍자소설 중에서 《운명론자 자크》는 도덕적 결정론의 결실을 책임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운명을 이끌고 간다고 믿지만 실은 운명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다.” 자크는 운명을 믿지만 자유롭다는 듯이 행동한다. 다시 말하지만, 디드로는 때때로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억제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그 열정이 ‘항상 옳게 우리를 고무시킨다’고 믿었고,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은 마음이라고 믿었다.

이 주제는 현대사회와 관습·도덕에 대한 변증법적 풍자인 《라모의 조카》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펼쳐진다. 라모의 조카는 음악인이자 도덕적인 개인주의자로 행복은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주로 관능적인 쾌락을 즐기며 ‘덕의 품격’에는 무감각하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가 영원하기를, 좋은 포도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스러운 여자들과 어울리고,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라. 그 외 나머지는 허영심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런 쾌락주의에 끌리면서도 디드로는 여전히 미덕이 나름의 보상을 가져다준다고 느낀다. 그는 또한 인간이 만든 법이 자연의 법칙을 반영하기를 바랐다. 그는 최고의 법률은 자연에 가장 밀접하게 부합하며, 이것은 ‘인간의 정열을 반대함으로써’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장려하고 공공과 사익에 적용함으로써 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그의 공개적인 입장이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훨씬 더 급진적인 생각을 즐겼다. 그것은 ‘자연은 어떤 사람에게도 남을 지배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는 그의 믿음이었다. 그의 초기 반응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단결시키고자 하는 그의 소망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자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느낄 것을 요구했다. “나누고 다스려라는 그 격언은 고대의 것이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폭군이 만든 것이다.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너를 단결시키는 것이 나의 의지다. 그리고 내가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라블레의 길을 가는 수도승처럼 ‘각자는 자신의 뜻대로 해야 한다’고 선포할 권리마저 포기했다. 흠잡을 데 없는 아나키즘 정서를 가지고, 그는 어떤 법에도 복종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결코 공공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다! 자연은 종도 주인도 만들지 않았다. 나는 법을 주거나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디드로는 《아버지의 자녀와의 대화》라는 단편 소설에서, ‘누구도 법을 어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자연은 영원히 좋은 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인간이 만든 법보다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게 한다. 그는 어려운 도덕적 문제에서 자신의 지침으로 ‘자연적 형평성’을 호소한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아이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반항하고, 아버지가 모여든 아들들을 해산하면 ‘현명한 자를 위한 법은 전혀 없다’고 한다. 디드로는 논쟁의 양면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히 아들을 동정한다. 게다가 그는 자기 써클의 지적 엘리트를 넘어 도덕적, 사회적 자유를 확장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좀 더 심사숙고된 성명서에서 디드로는 스위프트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유럽 문명을 열대지방의 상상의 사회와 대조하여 비판했다. 1771년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자신의 세계 여행에 대한 묘사를 발표한 후 디드로는 부갱빌의 타히티 방문에 대한 가공의 기사를 썼는데, 이를 그는 <드 부갱빌의 여행기 보유>라고 불렀다. 그의 대담한 추론은 아나키즘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신중하게도 그것을 출판하지 않았다. 볼테르가 하인들 앞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의논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디드로는 자신의 딸이 자신의 대담한 도덕적 사고를 실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1796년 프랑스 혁명 이후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디드로는 억압적인 종교와 호전적인 국가로 서구 문명을 공격하기 위해 태평양의 ‘원시’ 낙원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법이 없는 아나키 사회를 제시했다. 그의 타히티인들은 고귀하고 야만인이 아니다. 그들은 기독교 문명의 위선과 비열함을 대조하며 비난한다. 그들은 ‘자연의 순수한 본능’을 따르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지 않으며, 땅이나 성에 사유재산 관념이 없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랑을 즐기며 간통, 근친상간, 간통을 모른다. 그들은 범죄나 죄, 질투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원하는 것이 거의 없고 비옥한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은 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섬 전체가 마치 대저택의 아파트처럼 오두막 하나하나를 가진 하나의 대가족처럼 보인다. 

타히티인들의 욕망은 단순하지만, 필요에 의해 부과되는 단순함이 아니라 합리적인 행동강령이다. 타히티인 오로우는 성직자와의 대화에서 자연과 이성에 호소하며 유일한 도덕적 규칙은 ‘일반적인 선’과 ‘특정적인 효용’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가장 깊은 감정이지만 그것은 성적 자격에까지 확장되지 않는다. 즉 원하지 않는 아기를 피할 정도로 성숙하기 전의 성교에는 엄격한 금기가 있다. 

부갱빌과 타히티 노인 사이의 대화에서, 노인은 새로 도착한 유럽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행복을 망치고, 여성들 사이에 불화와 수치심을 야기하고, 질병, 죄책감, ‘인공적 욕구’와 ‘상상의 미덕’을 도입했는지 개탄한다. 그의 분노는 서양의 탐욕과 호전성, 특히 무엇보다도 억압적인 성적인 규범에 의해 타오른다. 이어지는 섬 사회에 대한 논의에서 디드로는 ‘인간 사이에 존속하는 영원한 관계에 도덕을 정초함으로써 종교법은 불필요해지고, 민법은 자연의 법칙을 선포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연의 법칙을 세심하게 고수하는 타히티인은 어떤 문명인보다도 좋은 법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전체 대화는 인간이 만든 법과 문명화된 무질서보다 선호되는 자연법칙과 자연 질서를 축하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