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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가타리의 국내수용 현황
펠릭스 가타리의 국내수용 현황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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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이론분야 환영...철학쪽에선 외면

최근 펠릭스 가타리의 주요 저서들이 국내에 본격 소개되고 있다. 이미 들뢰즈와의 유명한 공저서들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분자혁명'(1998)을 시초로 해서 올해에만 '기계적 무의식', '세가지 생태학', '카오스 모제' 같은 단독저서를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온 한국은 가타리에 대한 원전독해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가타리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비본질적이고 비맥락적이다. 들뢰즈 이론을 활용한 석박사논문은 현재 49편에 이르지만 가타리를 단독으로 논한 논문은 한편도 없다. 게다가 대부분 들뢰즈-가타리의 욕망이론, 기계이론, 反파시즘론 등을 인터넷, 문학, 건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시험적으로 적용시킨 논문들이다. 국내 연구자들 가운데 가타리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는 연구자는 소수다.

가타리의 주저들을 번역해온 윤수종 전남대 교수가 가타리의 '무의식' 재해석에 대한 논문을 최근 발표한 바 있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과 탈주의 철학에 대해서는 사회학자 이진경 씨가 전문가로 꼽힌다. 미국 조지아대에서 '노마톨로지' 관련 논문으로 박사를 받고 돌아온 정형철 부산외대 교수는 가타리의 생태적 사유를 동양적 사유와 만나게 접점을 모색 중이다. 이득재 대구대 교수는 바흐친과 가타리의 언어철학을 비교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어찌 보면 가타리는 정신분석학, 철학, 생태사상, 언어철학 부분에서 폭넓게 수용되는 듯하지만, 실천적 성향이 강한 이론분야에서 부분 섭취되고 문화연구자들에게 착상을 빌려주는 수준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작 가타리에게 반응해야 할 정신분석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서는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타리에 대해서 국내 정신분석학계는 거의 '부친살해'의 감정을 갖고 있다. 그가 프로이트를 계승한 라캉의 상징계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전통적 이분법 또한 비판한 탓이다.

라캉 전공자인 홍준기 서울대 강사는 "사회에만 관심 가지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속시원히 보이겠지만 철학적으로는 도그매틱한 면이 많고, 실현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이론"이라는 단호한 입장이다. 이런 강한 비판은 가타리의 초기 이론이 당대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보수풍조와 과격한 단절을 꾀한 것에 대한 역반응의 연장선상에서 조심스럽게 수용될 필요가 있다고 해도, 가타리 이론의 지나친 근본주의와 현실적합성 여부를 논란의 도마에 올려놓는다.

물론 많은 들뢰즈주의자들은 가타리의 이런 근본적 성향은 그의 철학이 현실을 견고한 억압구조로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가타리는 정신병자들이 그린 그림에 나타난 자아표현의 기발함이 피카소가 놓친 어떤 국면을 표현해놓고 있다는 식으로 분석하는데, 이는 기존의 학자들이 무의미로 배제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전복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진태원 서울대 강사는 가타리의 이론이 "추상수준이 아주 높은 이론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스타일이 독특"하지만 "그건 필연적이기보다는 남다른 걸 추구하는 프랑스 사상가들의 성향일 듯"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별을 통해 가타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들뢰즈는 언어이론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적었는데, 가타리는 기존 구조주의 언어이론이 갖는 랑그/파롤의 축을 화용론의 축으로 옮겨 놓음과 동시에 그 화용론을 영미적 전통과는 멀리 떨어진 시스템 속에서 제시함으로써 독창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화용론 학자들은 가타리의 주장을 지방방송으로 여기고 있다. 화용론을 전공한 김상희 고려대 연구원은 "요즘 프랑스 언어학계도 구조주의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긴 하지만, 영미전통과 절충한 '대화화용론', '통합화용론' 쪽이 강세"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가타리가 자신의 횡단성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이야기는 이 난해하고 당혹스러운 이론에 대한 접근방식을 시사해준다.

추위 때문에 몸을 밀착시킨 고슴도치들이 가시 때문에 다시 떨어졌다가 뭉치길 반복하면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 따뜻하게 지낸다는 이야기다. 가타리의 이론은 평범한 상식을 찔러서 따갑게 하지만, 접근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그를 음미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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