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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5]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5]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4.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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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연적 자유를 갖지만 
그들은 아직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유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가질 수 없다.

시민적 자유는 법이 금지하지 않는 것을 할 권리
도덕적 자유는 스스로 부과하는 법에 대한 복종
루소 초상화

스위스의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아 친척집에 얹혀살면서 견습공, 하인, 가정교사, 악보 필경사, 통역사 등의 하류직업을 전전하다가 어느 연상녀 덕분에 독서를 한 탓에 인류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가? 그는 바로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다. 그가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쓴 최초의 논문, 《학문예술론》(1750)에서 사치와 게으름과 야망에 굶주린 지식인들은 반드시 대중을 타락시킨다고 하면서 권력에 의해 도덕과 취향을 타락시키고 위선을 조장하며 사람들을 오도하기 위해 예술과 과학이 남용되는 점을 비판한 점을 21세기 한국의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보다 대학은커녕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은 무학자의 글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평가될 수 있기나 할까?

게다가 그는 양심을 ‘성스러운 본능’이라고 믿는 도덕주의자이면서도 5명의 아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무정한 아버지이기도 했고, 자연 종교의 서정적인 옹호자였으면서도 정치적 편의를 위해 종교적 신조를 두 번이나 바꾸어 폴 존슨 같은 현대 보수주의자에게 사이비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조롱받은 것 역시 무학 탓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소위 ‘바바리맨’의 원조니, 여자를 등쳐먹고 평생을 산 사기꾼이라는 악명도 있다. 흔히 루소를 민주주의자니 자유주의자니 평등주의자의 원조라고 하지만, 히틀러야말로 루소의 후예라고 극언한 버트런드 러셀 같은 철학자도 있다. 그러나 루소는 금수저로 태어나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하게 한 세상을 사는 인간들을 경멸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을 고민하며 모순에 빠지는 역설적인 삶을 살았다. 누군들 그런 모순에서 완전히 청정할 수 있을까? 특히 비참한 현실을 살면서 유토피아 이상을 추구한 아나키스트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그런 모순과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측면이 루소가 아나키스트이자 동시에 반(反)아나키스트라는 점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루소를 아나키스트로 보지는 않지만, 특히 한국에서 나온 루소 관련 문헌에서는 대부분 그렇지만, 그가 아나키즘을 가능하게 한 사상의 분위기를 창조한 사람인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의 본성이나 인민주권에 관한 루소의 관점은 18세기의 프랑스혁명들과 영국의 고드윈이나 러시아의 톨스토이, 크로포트킨 같은 19세기 아나키스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스페인의 페레를 비롯한 20세기의 여러 아나키스트 교육사상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칸트를 비롯하여 아나키스트가 아닌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루소의 후원자, 바랑 남작부인

학문과 예술의 발전은 인간의 도덕적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학문예술론》에 이어 쓴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에서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유재산을 비롯한 기존 제도들에 의해 타락해 불평등이 초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사회생활의 기초로 자유에 최우선권을 부여하고 개성을 찬양한 루소는 《에밀》(1762)에서 자유로운 자연인을 길러내는 교육론을 펼쳤다. 그러나 기존 교사 중심의 전통적 교육관이 아니라 어린이의 흥미와 개성, 경험을 중시하는 아동 중심적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전개한 그의 아나키즘적인 교육목표와 자율적인 개인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권위주의적인 수단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에밀》과 같은 해에 출판된 《사회계약론》에서는 인민주권을 주장하면서도 에밀의 교사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반의지를 해석하고 조작하는 예외적인 남자나 남성 그룹인 ‘입법가’에 의해 설립되는 강력한 국가를 주장했다. 그곳에서는 당파가 허용되지 않고, 소수자가 보호될 수 없으며, 도덕 수호를 위해 검열이 강제되고, 시민종교를 거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도 했다. 심지어 국가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부정행위를 옹호하기도 했다. 게다가 전제주의는 열대 기후에 적합하고, 야만주의는 추운 나라에 적합하며, 좋은 정치는 온대에 적합하다는 유럽중심주의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평등과 인민주권에 대한 루소의 모든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안한 사회계약은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자유인의 자치사회’에 거의 부합하지 않으며, 그것은 분명히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조리법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다수와 다른 개인이, 순응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고 죄책감을 느낄 것으로 예상되는 완전한 만장일치를 기대한다. 그래서 루소는 결국 바쿠닌의 말하듯이 ‘현대적 반동의 진정한 창조자, 즉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자로 돌아선다.

루소는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자유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적어도 세 가지 종류의 자유, 즉 다양한 사회에 각각 압도적인 자연적, 시민적, 도덕적 자유에 대해 말한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연적 자유를 갖는데, 이는 서로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유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가질 수 없다. 시민사회에서 루소는 자유에 머무르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단결할 수 있는 결사의 형태를 발견하기를 바랐고, 자신이 스스로 만든 법을 준수하는 사람의 경우 그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시민적 자유는 법이 금지하지 않는 것을 할 권리가 된다. 반면 도덕사회에 존재하는 도덕적 자유는 스스로 부과하는 법에 대한 복종, ‘우리 자신에게 부과하는 법에 대한 복종’이다. 그러나 루소의 자유에 대한 이런 생각은 권위주의적인 궤변가들이 자유를 사랑하는 진보주의자인양 가장하는 길을 열어준다. 국가가 강요하는 더 높은 법에 대한 복종이 자유라고 루소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회에 대한 개인적인 반란이라는 맥락에서 루소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그의 권위를 갈망하는 태도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스위스 시계공의 아들인 그는 방황하는 직업생활 속에서 이합집산으로 보이는 세계에서 태어난 고립된 개인이라는 현대인의 불안을 경험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독립을 주장하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감독하는 아버지상도 갈망했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척되어 진정한 공동체의 완전체를 찾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성격과 사고방식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변명해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강한 가부장적, 우월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그의 견해와 여성에 대한 대우에서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후원자들의 지배에 분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하녀로 살며 20년이 지난 후에야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에게 가증스러울 정도로 그녀와 자신의 아이들을 공립 고아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대우했다. 그는 항상 여성을 ‘순종해야 할 성’으로 여겼다. 그의 교육에 관한 논문 다섯 권 중 네 권은 에밀의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반면 오직 한 권만이 그의 유연한 손녀가 될 소녀의 양육을 다룬다. 루소는 ‘여자는 기쁘게 하고 예속되도록 만들어진다’, ‘남자에게 호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남성이 활동적이고 강한 반면 여성은 약하고 미약하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드윈이 후기 루소를 반아나키스트라고 보고 외면한 것처럼, 프랑스 혁명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단계에서 독재자 로베스피에르가 그를 성인화했어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재산과 정부의 밀접한 연계에 대한 강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공격, 엘리트주의적 문화에 대한 비판, 인민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관심, 인간성의 자연적 선함에 대한 믿음, 그리고 단순한 삶의 폐쇄에 대한 칭찬으로 아나키즘 전통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루소는 서양 문명이 조장하는 심리적 장애, 특히 그것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경쟁적이고 위선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역사가 어떻게 완전한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한 인류의 우울한 기록이고, 현대인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사회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루소는 그의 글과 그의 삶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유롭지만, 그들은 쉽게 서로를 노예로 삼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계몽주의의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아나키즘과 권위주의자의 접근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고, 결국 19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아나키즘과 국가주의자의 날개가 갈라지게 만들었다. 루소는 권위에 저항한 점에서 선구적인 아나키스트였으면서도 권위를 갈망한 점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적이기도 했다. 초기 저술에서는 아나키스트이지만 후기 글에서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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