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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국립현대미술관의 ‘眞景-그 새로운 제안’ 展
예술계 풍경: 국립현대미술관의 ‘眞景-그 새로운 제안’ 展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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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게 비춘 시대의 표정...다채로운 표현 돋보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眞景-그 새로운 제안’은 그 새로움 때문에 낯설게 다가온다. 진경이 환기시키는 조선 후기의 준엄한 수묵담채화와 복잡하고 혼란한 현대의 풍경이 머리 속에서 그리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탓이다.

과연 주최 측은 어떤 ‘진짜 풍경’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총 62명의 현대작가가 모두 2백50점의 작품을 출품하는 이번 전시회는 ‘원형으로서의 자연’, ‘대기로서의 풍경’, ‘양식으로서의 산수’, ‘환경으로서의 도시’ 등 네개의 소주제로 그림을 나눠서 배치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적, 인공적 환경”을 아우르는 주제라는 게 기획자의 설명이다. 물론 ‘진경’이라면 그런 포괄성 안에서 시대의 앞뒷면을 꿰뚫는 수직적 시각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눈길 끄는 겸재 정신의 후예들

먼저 눈길을 끄는 이들은 겸재 정선의 후예들이다. 김애영의 북한산이나. 원인종이 치악산과 청계산, 그리고 이호신의 월출산, 임택의 금강산 등 우리의 산하를 담은 작품들은 제각각 현대판 진경정신을 내세웠다.

하지만 嫡子라고 하기엔 역시 재해석의 의욕이 앞선 듯 작가들의 자연을 변형시키는 모티프는 각각 개성이 넘쳤다. 돋보인 건 원인종의 치악산이다. 몇십년 동안 관찰한 눈매로 재현해 놓은 치악의 웅자한 산맥은 조밀할 정도로 구체적이며  입체적이다.

마치 산맥 전체에 황토색 빌로드천을 덮은 것처럼 산의 근육이 밖으로 잘 배어나온다. 최고봉에만 약간의 초록물감을 입힌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혹시 흘러넘치는 생명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꺼져가는 희망봉을 제시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긴장감이 들었다.

현대인에게 ‘진경’은 무엇인가

이번 전시회는 네가지 주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그림과 그림 사이의 표현격차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발길은 이곳저곳으로 내밀어진다. 도시, 그 깊숙한 삶의 영역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 눈을 끌어당기는 탓이다.

우선 표현기법이 무척 다양하다. 박능생은 여전히 전통적인 수묵기법으로 도시공간을 재현하는데, 먹의 풍부한 농담과 모필이 이뤄내는 필선과 여백은 거대한 양감으로 도시풍경을 밀어 올린다. 현대 도시의 천가지 만가지 모습이 오로지 묵의 스펙트럼 속에서 살아난다. 먹 속에 어떻게 저리 많은 빛깔이 있었을까. 단색조의 작품은 또 있다. 황토색 하나로 채색한 조병연의 작품은 도시 속의 황토정서를 붙잡고 있다.

이런 도시풍경화들이 우리 삶을 비교적 원거리에서 잡았다면 최호철의 ‘을지로 순환선’은 과장된 표현으로 현대인의 일상을 그려낸다. 마침 산동네 앞을 지나치는 전차 안은 얼기설기한 판자촌 마을을 닮는 듯 일그러지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도시의 음지는 마치 구겼다가 다시 펴기를 반복하는 삼류 포스터 같다.

광주개발 과정에서 배제된 도심 한가운데 마을을 보여주는 정선휘의 ‘도시의 섬’은 도시의 환락적인 불빛과 마을의 점등된 듯한 은은한 불빛을 대조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둠’이 사라진 ‘미드나잇’을 보여준다. 김성호의 새벽은 어떤가. 초소에 밝혀진 불빛이 까마득히 멀어 보이는 공장(혹은 창고)에 그 주황색 길을 길게 드리우는 장면은 침묵, 고요, 암흑 등 새벽의 고유한 요소들에 확대경을 들이댄 것처럼 은근한 감동을 준다.

시간성의 축적으로 구현된 진경세계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리기 위해 버린 몽당붓이 얼마나 많았으면 산을 이뤘다고 한다. 이것은 眞景이라는 것은 시간성의 침윤을 거쳐서 획득된 의미이리라. ‘원형으로서의 진경’에 속한 작품들은 축적된 체험의 시간을 여실히 보여준다. 강운의 ‘구름’이나 김창영의 ‘모래회화’ 역시 단순한 소재인 듯하지만, 작가들이 일생동안 매일 경험한 것들에 근원적인 정서를 담으려했다는 느낌을 안겨줬다.

작업시간의 축적은 독특한 寫生의 강화로 나타난다. 산 구석 돌멩이 하나라도 놓칠세라 섬세함을 보여주는 김천일의 수묵화가임에도 현장작업만을 고집해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사실주의적 섬세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코 산의 구조도 놓치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김창태의 ‘그곳에는’은 점묘법으로 진경을 이뤄내는데, 작가의 상상력은 도화지의 한 귀퉁이 같은 백색의 먼 산과 실경에 가까운 눈밑 풍경을 한 공간에 놓아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동경의 기분을 준다.

박정렬의 ‘영원한 토지’는 벽화기법을 응용해 회칠한 캔버스 위에 흙가루를 곱게 부숴 색채를 해 토지를 재현해 낸 독특한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조병연의 산수화 역시 자연염료로 오랜 시간을 거쳐 자기 마을을 토속적 정서로 표현해냈다. 특히 수차례의 답사를 통해 나무 한 그루까지 세세히 표현해 낸 그의 구도법은 겸재의 ‘금강전도’의 성격과 직접 연결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기 생애의 모든 시간이 담긴 고향을 그린 진경이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강요배의 ‘황파’는 제주도 앞바다의 거친 파도를 묘사한 것이지만, 그건 제주4?3운동을 겪은 작가의 경험을 담은 것으로 파도 속에는 민중들이 녹아나고 있다. 작가는 자아가 투영된 거울로서의 자연을 만나는 것이다. 김을 역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62명의 작가가 내놓은 2백 5십 여점의 진경들이 펼쳐진 이 전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관람자는 충분한 미적 체험의 시간을 확보해야만 할 것 같다. 덧붙여, 진경과 나의 거리를 무화하는 진중한 독법도 필요하다.

●진경이란

‘眞景’이란 조선 후기 우리 산천을 중국의 것이 아닌, 조선 고유의 예술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1~1751)의 진경산수화나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 사천 이병연(?川 李秉淵, 1671~1751) 등의 시문학에 나타난 정신을 후대 학자들이 표상한 용어다. 진경정신의 대두는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조선중화주의’를 내세울 만큼 성리학에서 독자적인 학문체계 정립, 사회경제적 안정감과 함께 서울에 군거하기 시작한 경화세족의 예술적 취향이 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나타났다.

특히 화단에서는 기존의 남종화 기법을 토대로 전형적인 우리 그림인 진경산수화의 세계가 겸재에 의해 완성되는데, 당시 주류였던 중국의 이념적?관념적 정형산수화를 탈피해,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발로 답사하며 실제 존재하는 구체적인 자연을 우리 정신으로 묘사해나갔다. 독특한 구도와 개성적인 준법, 농담이 강한 필묵법과 안온한 설채법이 특징이다.

간송학파를 이끄는 최완수 관장은 “진경이란 진짜 있는 경치를 사생해낸 시와 그림이라는 의미도 되고, 경치를 그 정신까지 묘사해내는 시와 그림이라는 의미도 된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해석하고 그려낸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진경이다”라고 말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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