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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깬 작은 거인”
“계란으로 바위를 깬 작은 거인”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3.11.07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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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퇴직금 지급 소송에서 승소한 김동애 교수

결국 법원은 원칙과 상식을 믿고 고지식하게 대응해 나간 老 강사의 손을 들어줬다.

“들뜨고 흥분돼서 얼떨떨해요.”

10월 30일, 승소 판결을 받고 서울지방법원을 나온 김동애 교수(56세, 동양사)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항소6부(재판장 박용규 부장판사)는 대우교수와 시간강사 등으로 재직했던 김동애 교수가 한성대를 상대로 “7년 6개월 근무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퇴직금 8백55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승소를 하고도 김 교수는 믿기지 않는 듯, “1심에서 지고 이번에도 이길 거라고 기대 안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1년 전 교육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며 대학 강사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있나요”라던 그의 말대로 물이 바위를 뚫듯, 계란으로 바위를 깨듯 이제야 4년 반의 긴 법정 소송을 끝내게 된 것이다.

99년 한성대가 대우교수였던 김 교수를 사전 예고 없이 시간강사로 강등시키자 ‘직위해제 및 감봉처분 무효소송’을 낸 것을 시작으로 2002년 5월 낸 ‘퇴직금 지급 소송’까지 4년 반이란 시간 동안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김 교수는 “퇴직금 자체가 아니라 비정규직 교수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것이 기쁘다”라며 연방 주위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느라 상기된 모습이었다. 김 교수의 판례로 일용 잡급직으로 분리되던 시간강사들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임금을 목적으로 ‘강의’라는 근로를 학교 쪽에 공급한 김 씨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라며 “강사가 1시간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2배 정도의 준비시간이 소요된다고 판단되므로 실제 근로시간은 강의시간의 3배로 봐야 된다”라고 밝혔다.

“1주일에 6~9시간 강의를 한 김 씨는 강의 준비시간까지 합칠 때 그 3배를 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근로기준법의 퇴직금 규정이 배제되는 주당 근로시간 15시간미만의 ‘단시간 근로자’로 볼 수 없다”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번 판례가 비정규직 교수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난 6월, 비정규직 전국교수노조(위원장 변상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낸 진정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사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는 지난번 행정심판 판례가 제 경우에 도움이 됐듯이, 제 판례도 다른 강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사실 56세의 老 강사인 그가 길고 험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남긴 판례를 가지고 싸울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난해에는 좋은 조건의 프로젝트 연구교수 자리도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물리쳤다. “연구하다 보면 못 싸울 것 같아서”였다.

요즘 김 교수는 건강히 눈에 띄게 나빠졌다. 2001년 12월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해 2002년 6월부터 지금까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오면서 몸이 상하기도 많이 상한 것.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 교육부 앞에서 9일간 단식농성을 하며 몸이 많이 상했어요. 영하 17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 버티려고 하니”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가 단식을 하는데, 동료 강사 선생님이 나흘간 같이 단식을 하더라고요. 쓰러져서 실려갈 때, 도와주셨던 분들 생각이 났어요.” 그는 단식 농성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약속했던 9일까지의 시한을 지키기 위해 퇴원한 후 농성을 계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퇴직금을 받게 돼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임금 등의 처우가 개선되겠지만, 시간강사가 교원으로 인정되기까지는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정규직 교수들과 같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을 일용잡급직으로, 사람 취급 안 하는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시간강사가 교원의 지위를 얻을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애 교수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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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애 2003-11-09 14:06:01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강사 2003-11-08 13:51:04
감격... 정말 휼륭하다.
잘못된 관행으로 부터 사회가 조금씩 바로서가는 느낌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퇴직금 지급은 상식적인데, 이것을 보이는데 4년이란 긴세월을 보내신분께 찬사를 보냅니다.
강사생활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낸 젊은30-40대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