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3:35 (목)
[학술대회] 21세기 인문사회과학의 과제와 진로(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 21세기 인문사회과학의 과제와 진로(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주최)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3.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3-20 21:38:25
거창한 제목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의외로 작을 수 있다. 원대한 주제를 아우르려는 애초의 기획과 욕심은 그 무게에 눌려 논의의 실질을 얻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거대한 청사진의 제시 자체가 과욕일 수 있는 시대적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21세기의 인문사회과학의 과제와 진로’라는 큰 짐을 부려놓고 힘에 겨워하는 현실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야말로 21세기를 읽어내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의 실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15일 ‘21세기 인문사회과학의 과제와 진로’라는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는 성급하게 과제와 진로를 모색하기보다, 우선 인문사회과학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한 분석이, 혹은 지금껏 부재했던 분석에 대한 반성이 오갔다.

정보화, 인문학의 訃告는 아니다

1부에서 ‘정보화시대, 인문학의 진로와 과제’를 발표한 박찬길 이화여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정보화가 새삼스레 인문학의 枯死를 촉발시키지는 않았다고 전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적실한 현실진단이 선행되어야 위기의 실체를 밝힐 수 있으리라는 것. 인문학이 디딤돌인지 걸림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그는 정보사회와 산업사회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먼저 가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이의 과장으로 새로운 인식이 시작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연속성을 함께 읽어내는 섬세한 눈을 지녀야 한다고 것이 박 교수의 전언이다. TV의 시작으로 영화가 끝을 보리라는 예견이 틀렸듯이, 인공지능의 시작이 인간의 종합적 사고력의 끝이 아니고, 하이퍼텍스트의 탄생이 책의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박교수가 보기에 정보화가 인문학의 訃告라고 ‘과장’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우선이다. 정보화를 인문정신의 적인지 아군인지를 판가름하기보다는 “정보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현단계에서 어떻게 인문학의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는데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
박 교수는 몽떼뉴나 니체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삶에 봉사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이상에 충실하자고 주장했다. 박 교수의 제안은 소박하다. 인문학의 ‘사회교육 기능’을 회복시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가꾸자는 것이다.
2부에서는 최진배 경성대 교수(경제학과)가 조항제 부산대 교수(언론정보학과)의 ‘한국의 민주화와 미디어 : 정부와 주류 미디어의 관계’, 그리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의 ‘한국 사회과학의 반성과 21세기 전략’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다. 조항제 교수는, 미디어가 여론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미디어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섰으므로 “역사적 공과로 볼 때 국민을 대변할만한 자격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것. 조 교수는 또 하나의 신화를 깼다. “미디어 시장이 자정을 통해 걸러진 가치 있는 정보만을 소비자에게 전달해 그들을 ‘교양 있는 시민’으로 만들었을까?”라고 묻고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조 교수는 국가권력과 미디어 사이 관계의 추이를 정권의 변화에 따라 추적하면서 한국주류미디어의 성격을 설명했다. 정부에 대해 “‘자발적 협조’, ‘자유주의적 코포라티즘’이라 불릴만큼 ‘밀월관계’”였으나, 현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보수와 경제적 자유를 지향하는 미디어는 “야당과 ‘상동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입장을 공명”시켰다는 것. 나아가 자본과 시장에 공명하기 위해 이상적인 미디어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설명이었다. 조 교수가 보기에 “한국의 신문은 스스로 정한 협소한 이데올로기적 제한선과 다수를 추구하는 상업주의로 민주적 정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적 신뢰를 위협하고 있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IMF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실패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김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사회과학의 문제란, “과거나 현재나 ‘주체위치’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연히 “시장이 경제제도이자 정치사회제도라는 점” 그러므로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살펴봄에 있어서 개발독재 변형형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 변형형 신자유주의의 질적인 차이가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들끓고 있는 사회과학적 분석들이 양만큼의 효력을 얻지 못하고 이내 잦아드는 것도 “출발점 없는 추상담론”들에 불과해 내려서 되먹임할 땅과 현실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출발점 없는 추상담론’, 사회과학 위기초래

김 교수가 짚어내는 한국사회과학의 오류는 몇갈래로 나뉘지만, 결국 그 뿌리는 ‘연역이 아닌 귀납으로’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김 교수의 논의 안에서 이 구호는 ‘과학이 아닌 사상으로서의 사회과학’, ‘주의’중심의 사고보다는 ‘문제’중심의 사고’, ‘이론수입자에서 이론생산자로’, ‘이론적인 자주성과 자신감의 회복’ 등의 다양한 표현형을 얻고 있다. 김 교수는 그것만이 “지난 1백년 근대가 가져다준 한계를 청산하는” 유일한 길임을 갈파했다.
‘21세기 인문사회과학의 과제와 진로’라고 해서 대단한 ‘행동강령’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모한 기대일 터. 김동춘 교수의 지적처럼, 다시 ‘우리 각자가 선 자리’에서 출발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