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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 대전환의 시대,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통찰의 재미] 대전환의 시대,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이혜인
  • 승인 2020.03.16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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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사회 | 저자 홍성국 | 메디치미디어 | 388쪽

제목만 보면 『피로사회』, 『투명사회』, 『위험사회』 등 그동안 유행했던 또 하나의 사회 분석서가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들기도 하겠다.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과 변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는 불편한 생각과 함께. 물론 그런 의구심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란 대개 복합적 요인들이 상당한 기간동안 상호작용하면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다양한 사회 현상들의 추이와 상관관계를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업계 수장이자 애널리스트로서 국내외 정치, 경제 현상들을 분석하고 천착해온 경험을 토대로 저자가 도출해 낸 ‘수축사회’라는 키워드는 최근의 세계 질서와 사회 변화를 한마디로 압축하고 꿰뚫는 통찰력을 담고 있다.

저자의 문제 의식은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태도와 접근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만약 세상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적 전환 상황에 놓여있다면 더 이상 과거의 해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란 점에서 그렇다. 현상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과거의 해법에 기반한 대안들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사회 문제의 대안을 취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 모두가 갖고 있던 가정은 ‘세상은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전제 하에 개인, 기업, 국가 모두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상에 기초해 자신의 선택을 최적화해 왔다. 그런데 만약 그런 가정과 전제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유명한 ‘독수독과(毒樹毒果)’ 명제처럼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 선택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시대적 전환은 세상이 ‘팽창사회’에서 ‘수축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더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순환적 변화의 일면이 아니라 게임의 룰과 판이 바뀌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생각에서 저자는 이를 일시적 ‘변화(change)’가 아니라 시대적 ‘전환(transition)’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세계적으로도 팽창 논리에 기반한 리더들의 결정은 실제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일예로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한 미국, 중국, 일본의 대응방식을 보고 있으면 이를 여실히 확인하게 된다. 미국의 트럼프는 자국이기주의적 사고로 코로나 방역을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고, 중국의 시진핑은 권위주의적 판단으로 정보를 차단하는 데 급급하다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을 초래했으며, 일본의 아베 역시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코로나 확산 사실을 덮으려고 의도적으로 소극적 대응 태도를 보이다 코로나 확산을 더 부채질하는 결과만 초래하고 있다. 각국의 이런 패착은 모두 팽창사고에 기반한 패권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고, 코로나같은 세계적 전염병의 확산도 따지고보면 성장과 발전을 전제로 끝없이 확대되는 인간의 욕망이 자초한 환경 재앙이 아닌가.

저자의 분석을 인정하든 않든 세상은 이미 수축사회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신호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세계적인 인구 감소, 수요 감소와 저성장, 그로 인한 경제 불평등, 세계적 차원에서 확대되고 있는 양극화다. 『21세기자본』의 토마 피케티나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같은 석학들에 따르면 20 대 80의 불균형이 10대 90이 되더니 이젠 1 대 99의 사회로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최근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상위 1%가 전체 50%의 부를 차지하고 하위 50%가 전체 1%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성장 신화는 수명을 다하고 제로썸의 수축사회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을 멈춘 파이를 두고 서로 싸워야하고, 이 파이는 제로썸을 넘어 마이너스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한 최근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은 과잉공급과 노동소외를 초래하면서 수축사회의 갈등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저자는 수축사회의 해법으로 공동체 전체의 번영을 위한 이타주의와 세계적 차원의 도덕혁명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를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해법은 지나치게 근본적이고 당위적인 주장이어서 구체성이 부족하고, 이기심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수축사회의 갈등을 도덕적 설득으로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약점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ecosystem)로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팽창 지향 사회가 초래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생태계 자체가 존재할 수 없고, 축소사회가 내재한 문제를 더 심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자만 존재하는 생태계는 세상에 없다. 다수의 약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생태계는 자멸한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네가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축소사회의 운명을 살아야 할 우리에게 경고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김선진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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