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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새로운 재미
[학문후속세대]새로운 재미
  • 이진영
  • 승인 2020.03.13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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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지만은 않았던 6년의 의대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면서 환자를 접하게 되는 임상의가 되었다. 환자를 만나고 처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인턴 시절 초반에 상당히 무겁게 다가왔지만 점점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이 좋았고, 조금이라도 나로 인해 환자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좋았다. 보호자나 환자의 따뜻한 눈빛과 간혹 미숙함에도 양해해 주시던 환자들에 좀 더 보답하기 위해 힘들었던 인턴 시절을 열심히 보냈던 것 같다. 그 후 다양한 수술 종류와 수술 이후 호전되어 퇴원하는 환자들에 매력을 느껴 비뇨의학과를 선택하였고, 전공의를 4년 지내게 되었다. 전공의 시절 동안 비뇨의학과 여러 수술과 술기, 전문지식을 배웠고, 그중 일부 연구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연구를 장기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연구에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공의 3년 차쯤 명순철 교수님 연구실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교수님께서 주제를 생각하시면 그와 관련된 논문들을 검색해보고, 실험 계획을 생각해보고, 해당 사이트들을 뒤져서 약품들을 신청했다. 수십, 수백만 원에 달하는 약품을 클릭하고 구매할 때는 혹시라도 잘못되진 않을까 마음을 졸이기 일쑤였다. 동물 역시 기간에 맞춰 주문하고 실험일을 맞춰 투약 후 희생시키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다. 물론 같이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더 능숙하게 하셨지만, 전공의 업무를 하다가 잠시 온 나로서는 나의 일이라기 보다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전혀 재미있지가 않았다. 결과 역시 시원하게 탁 나와주면 좋으련만 예상한 것과 다르게 나왔을 때는 미궁에 빠지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 같은 허탈함에 실망했었다. 그때 이런 힘든 연구를 지속하시는 교수님들에 대한 경외심은 느꼈지만, 역시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를 갔다 오고 서울아산병원에 임상강사로 가게 되면서 다시 임상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 집에도 며칠씩 못 가는 상황에서 연구에 관심을 갖기 힘들었고, 스승이신 김청수 교수님께서는 여러 기초 연구들을 하고 계시면서 항상 그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당장 눈앞의 임상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어 눈꺼풀이 내려왔다. 이후 연차도 올라가고 승진하게 되면서 조금 여유도 생기고, 교수님과 연계된 연구실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보고 듣는 것은 좀 더 많아지게 되었지만 심드렁한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앙대학교로 옮겨오게 되면서 장인호 교수님 연구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최근 미국과 교수가 면역기전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면역치료에 관심이 높아졌다. 실제로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새로 개발된 면역치료제들이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방광암에서는 명확한 기전이 다 설명된 것은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확실한 효과를 보여주는 BCG 방광 내 주입요법이란 면역치료가 30년 넘게 행해지고 있었고, 이를 최근 각광 받는 면역관문 기전과 접합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주셨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신진과제에 선정되었다.

연구는 환자에게 적용되기까지 머나먼 일이라고 생각되어 심드렁했던 마음이, 일부 환자에서 종양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그리고 과제가 선정되면서 어쩌면 나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연구팀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접하고 이에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 생각을 보태고 조금씩 그게 실현되는 과정을 보는 일은 신선했다.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고 어설픈 생각이라도 존중해주는 연구팀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기대는 관심으로 관심은 점차 재미로 변해갔다.

연구는 연구자의 상상력을 현실화해가는 단계라고 생각된다. 설계도만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듯이 구체화해가는 부분은 연구팀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동료로서 함께 조율하는 과정에서 배울 점도 많다. 머나먼 길이지만 동료들과 같이 자신이 상상한 집을 지어간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언젠가 우리가 완성한 집에서 환자들이 편하게 쉴 수 있기를 꿈꾼다.

 

최세영 중앙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임상조교수
중앙대학교 비뇨의학과에서 박사를 받았고 비뇨기계 종양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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