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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8)] 전염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8)] 전염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 교수신문
  • 승인 2020.03.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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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우울
코로나19로 일상생활 대변화
전염병 그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태도가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어

정말 몰랐다. 내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지를. 다들 느낄 것이다. 위대한 일상의 힘을. 
전염병, 옛날 말로 염병, 아니 ‘옘병’이 돌자 사람들이 움츠리기 시작했다. 2개월이 지나고 급격히 전염자들이 증가하는 바람에 모든 모임이 불허되고 늘 운영되던 기관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나? 아침에 하던 운동을 못한다. 보직을 할 때 8시부터 회의에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보니 죽을 것 같았다. 총장이 술을 꺼리니 다음 타자에게 일이 넘어왔다. 그래서 1시간 먼저 일어나기로 작정을 하고 운동을 하다 보니, 다행히 습관이 된 것이다. 살려고 시작한 것인데, 그것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운동 후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아침 찬바람을 맞는 상쾌함이 좋았는데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한다. 
도서관도 막혔다. 대출, 반납 모두 안 된다. 글쎄, 소설을 다 읽지 못했는데 반납 기한을 늘여주었으면 고마울 테지만 갑작스러운 폐쇄에 당황한다. 사전 고지도 없이 무작정 통보다. 이번 방학에는 책 내느라 소설도 빌리지 못해서 더 속상하다. 
파리 날리는 식당이라도 팔아주자는 공연한 의무감을 느끼지만 음식점이 닫아버린 경우가 많아 미리 전화를 해야 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손님이 없어 그냥 문을 닫고 쉬는 경우가 많아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동네가 썰렁하다. 
학교에도 사람이 없어 대학 맞나 싶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학교가 썰렁해졌다가 개학에 가까워지면 활기를 띠는 것이 교정인데, 개강이 다가올수록 사람이 더 눈에 안 보인다. 학생들이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가 그리울 정도다. 매일이 일요일 같다. 
상황이 이 정도면 종교집회는 삼갈 줄 알아야 하는데 대단하다. 1/3의 교회가 오프라인 예배를 보겠단다. 하나님의 뜻이 정말 그런 것인가? 신도의 뜻이 정말 그런 것인가? 행여 십일조 때문인가? 
우리 또래가 배운 영어 예문 가운데 하나에 페스트가 유행할 때 교회에 모여 기도하자고 한 종교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묻는 지문이었다. 예전에는 질문거리가 됐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그 사실을 개방적으로 공유하는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는 논쟁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교회 측에서는 이런 회의를 가질 것이다. 
첫째, 그다지 전염의 위험이 없다. 
둘째, 마스크 등으로 철저히 보호하면 전염의 우려는 없다. 
셋째, 정부의 발표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위험한 발상이다. 나도 첫째와 셋째에 대체로 동조하는 무서운 사람이지만, 그래도 중앙관리기관에서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무슨 배짱인지? 세 가지 말고도 ‘신의 뜻’이나 ‘돈의 논리’가 들어간다면 정말 이건 아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의 지성, 정확히는 현재 대한민국 종교계의 수준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1/3이면 전체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누가 누구를 욕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미세먼지가 뿌옇게 지속될 때 우울을 느꼈다. 하루 이틀을 넘어가면서 나의 기분이 점차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제 전염병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 때가 됐나 보다. 전염병 그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태도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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