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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것의 고통
기억한다는 것의 고통
  • 교수신문
  • 승인 2020.03.0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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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교수)

공적인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의 기억은 얼마나 효과가 있나? 50년 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다큐멘타리 <기억의 전쟁>(이길보라감독)은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다큐멘타리 성격도 갖고있다. 베트남 양민학살은 아직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증명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증언을 하는 베트남인들에 의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억에 의해 역사적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그 어려움을 의미하는 제목이 기억의 전쟁이다. 베트남인들은 기억을 더듬고 그것을 부정하는 여론과의 전쟁을 하며 힘겨운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 한국에서 열린 시민법정에 이어 베트남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클로즈 숏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의미하는 바다. 한국인이 증명하려 하지만 여전히 베트남인들의 기억속 문제라는 말이다. 

영화는 학살을 기억해내는 세 명의 베트남인 증언을 보여준다. 이어 박물관의 모형을 통해 한국군을 불러내고 당시의 군가를 통해 과거를 끌어낸다. 증언중 하나는 베트남인들의 무덤을 다음 날 불도저로 다 밀어버렸다는 것도 있다. 전쟁은 적만을 죽여야 하는데 문화도 말살한다. 황석영의 단편소설 [탑]은 베트남 마을에서 밤새 목숨을 내걸고 오래된 탑을 지켰는데 아침에 미군이 명령을 내려 허물어 버렸다는 허망한 내용을 다룬다. 

당시 한국이 저지른 야만적인 행동이 있었다면 그것도 자발적인 것인지 미국의 명령이었는지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속에서 베트남참전 회원들은 하나같이 양민을 학살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서로의 증언이 엇갈린다. 그들은 조국의 부름을 받았고 베트콩들을 소탕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한다. 전몰장병 위령제 무대위에서는 구슬픈 가락과 살풀이 영상이 한국도 희생자라는 또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쟁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시작했지만 여성과 남성의 문제 혹은 피해자와 또 다른 피해자의 대립구도로 변해감을 느낄 수 있다. 영화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 구도화되는 느낌은 편집이 주로 베트남인들의 시각에서 주도해 가기 때문이다. 다큐멘타리도 극영화처럼 주인공이 있다. 이 다큐의 주인공들은 세 명의 베트남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한국인들에게 직접 피해를 봤거나 혹은 피해를 목격한 증인들이다. 영화가 한국참전군인들의 증언도 취재하긴 하지만 그 분량은 거의 미미하다. 반면 베트남인들의 주장은 길고 상세하게 현장을 증언한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여주고 동정적인 음악도 첨부된다. 이러한 이미지들로 인해 관객들은 한국참전군인들의 주장 보다도 베트남인들의 증언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한국정부가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영화처럼 기능한다. 쓰치모토 노리야키의 다큐영화 <미나마타>(1971)는 공장폐수로 일본 어민들이 미나마타 병으로 집단폐사한 사건을 공장이 한동안 은폐했고 마침내 공장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고발한다. 다큐는 그러한 결과가 도출되기 전부터 카메라로 피해사례를 취재해 나갔다.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도 그러한 고발다큐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양민학살이 있었는지 현재로선 분명히 밝혀진 게 없다. 유일하게 있는 증거는 당사자들의 증언뿐이다. 정부는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고 증명해내는 전쟁이 한동안 증언자와 공적 기관간에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진정한 다큐는 그런 역사적 사실의 판결이전에 이미 존재한다. 사건이 사실이든 아니든 억울한 약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상황속에 카메라는 일단 존재한다.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지만 논쟁을 유발하는 것도 다큐의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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