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0-26 09:17 (월)
가야 토기 살리기
가야 토기 살리기
  • 교수신문
  • 승인 2020.03.06 1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가야는 지금 이 순간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가야를 신비의 나라, 미지의 나라로 알고 있을 만큼 가야를 제대로,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가야의 유적이 발견되고 발굴되면서 가야에 대한 정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는 속 시원히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가야가 철과 토기에서 만큼은 다른 나라에 견주어 결코 뒤쳐지지 않았으며 어떤 면에서는 더 뛰어나 철과 토기의 나라라는 별명까지 붙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수많은 유물을 보아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새 모양 토기. ⓒ박찬희
새 모양 토기. ⓒ박찬희

토기는 녹슬지 않는다. 가야의 철기를 상징하는 갑옷은 하나같이 녹이 슬어 여러 점을 전시해도 관람객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반면 토기는 비록 깨져서 붙였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모습을 온전하게 전해주는 것이 많아 전시할 때 철기보다 유리하다. 게다가 신라나 백제의 토기와 비교해 보면 가야 토기만의 개성과 특징이 잘 드러난다. 지역별로 개성이 다르고 토기의 선이나 무늬가 부드럽고 세련되어 현대적인 감각과 이어졌다. 여러 종류의 토기 가운데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 토기는 뛰어난 가야 토기 수준을 대변한다.

다만 한 가지, 그러나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바로 색이다. 백자나 청자와 달리 토기는 검은색이나 짙은 회색을 띤 것들이 대부분으로 일부 관람객들은 토기를 철로 만들었다고 착각할 정도다. 물론 가야 토기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야 문화에서 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전시를 할 때는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가야를 주제로 한 박물관의 관건은 토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전시하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토기 전시는 관람객이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책으로 관람객의 발걸음을 잡아야하는 책 전시처럼 어렵다. 

토기 전시실. ⓒ박찬희
토기 전시실. ⓒ박찬희

국립김해박물관,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야를 다룬 박물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금관가야의 본무대인 김해에 있다. 다른 가야 전문 박물관과 달리 가야 문화를 담당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답게 이곳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전시하였다. 토기의 나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전시실 곳곳에서 가야 토기를 만날 수 있고 또 전시실 2층의 상당한 면적을 토기 전시실로 활용하였다. 말하자면 이곳은 가야 토기의 최전선이다. 이곳에서는 가야 토기를 어떻게 보여주려고 했을까? 

본격적으로 가야 토기를 만나려면 2층 전시실로 가야한다. 가야의 역사를 다룬 1층 전시실에서도 가야 토기를 볼 수 있지만 진면목은 이곳에 펼쳐졌다. 관람객들이 2층에서 만나는 첫 번째 전시물은 새 모양 토기다. 새들은 걷는 것처럼 진열장 바닥에 놓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벽면에 전시되었다. 옛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던 새 모양 토기는 이제 관람객들을 가야 토기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다음은 무덤의 주인공이 다른 세상에서 풍요롭게 살라는 뜻으로 만든 집 모양 토기다. 이 토기를 본 관람객들은 가야 사람들의 삶에 흥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어서 가야의 음식이 남아있는 토기, 제례 때 사용한 작은 토기가 이어진다. 이 공간까지는 일종의 맛보기다.

변화를 준 진열장. ⓒ박찬희

맛보기가 끝나는 곳에 본무대인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야 토기>가 시작된다. 전시실을 돌아드는 순간 온통 토기로 가득한 전시실이 거대한 도서관처럼 펼쳐져 웅장함과 장쾌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책 대신 수많은 토기들이 진열장을 따라 가지런히 늘어선 그곳은 가야가 토기의 나라라는 점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공간은 일단 성공이다. 그런데 넓은 전시실 전체를 토기로 채운다는 생각은 대담하지만 위험 부담이 적지 않은 모험이다. 이때 어떤 주제로 토기를 해석하는가, 어떤 식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겉보기에는 단조로워 보이는 유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진열장 안 전시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다. 이곳에서는 토기를 앞뒤로 전시하였고 중요한 유물은 바닥이 아니라 벽면에 따로 전시해 관람객의 눈길을 집중을 시키기도 하였다. 뿔 모양 토기나 수레 모양 토기는 그렇게 벽면으로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받침대에도 변화를 주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각형 받침대도 사용하였지만 그릇의 모양에 맞는 원형이나 전시 공간의 변화에 따라 곡선을 취하기도 하였다. 있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토기도 어떤 곳에 어떤 상태로 전시되었는가에 따라 관람객들이 받는 인상이 상당히 다르다.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진열장을 보면 토기를 부각시키기 위해 기울였을 박물관 측의 시간과 노력이 짐작된다.

토기 진열장. ⓒ박찬희
토기 진열장. ⓒ박찬희

전시실에서 한 진열장은 하나의 주제로 완결된다. 한 진열장 안에 여러 가지 주제가 섞여 있으면 관람객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가능성이 높다. 주제는 무난한 일반적인 범주로 설정해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도 하고 또 파격적인 주제를 정해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앞의 경우는 주로 상설전에서, 후자는 특별전에서 사용한다. 이곳에서는 모험을 시도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주제를 설정하였다. 전시실 입구에는 토기 가마의 모형을 전시해 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릇 받침과 같은 토기의 종류, 토기에 새겨진 기호, 상형 토기를 주제로 한 전시가 이어진다. 

상형 토기는 가야 토기의 특징과 인상을 관람객들에게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유물이다. 이곳에서도 몇몇 곳에 상형 토기를 따로 전시하거나 한 진열장에 모아 전시하였다. 그러나 전시된 상형 토기 가운데 관람객을 매료시키는 유물이 많지 않아 아쉽다. 가야 상형 토기의 세계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 유물들은 여러 박물관으로 흩어져 전시되었다. 유명한 말 탄 사람 모양 토기(국보 275호)도 이곳이 아니라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었을 정도다. 만약 이 곳에 말 탄 사람 모양 토기 정도의 수준을 갖춘 상형 토기 몇 점만 모여 있다면 생각 이상으로 영향력이 클 것이다. 명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명작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때문에 한때 김해 지역에서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말 탄 사람 모양 토기를 이 토기의 고향인 김해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국립김해박물관은 토기 전시실 후반부에 승부수를 띄웠다. 승부수의 핵심은 막대한 양이다. 관람객들은 <가야 토기는 지역마다 다르다>라는 주제로 여러 진열장을 빼곡하게 채운 토기의 숫자에 놀라고 압도당한다. 양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장과 같은 몇 단의 유리 진열장 위에 수많은 토기들을 모내기 하듯 빈틈없이 꽂아 넣었다. 진열장 받침이 유리여서 높은 곳에 있는 토기는 마치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꼭 수장고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전시는 토기의 개별적 특성보다는 수많은 토기가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는 집합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군인들이 열병하는 듯한 이 진열장은 힘주어 외친다. 

“가야는 역시 토기의 나라라고!”

전시는 진화한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 기법도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한 방법들이다. 앞으로 토기가 어떻게 전시될지, 그곳에 다시 가면 어떻게 전시가 바뀔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전시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든 토기를 바라보는 눈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날수록, 상상력을 발휘할수록 전시가 생동감 넘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또한 가야 토기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고민할수록 가야 토기는 진열장을 나와 관람객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