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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뜨거운 논쟁의 현장에서
【딸깍발이】 뜨거운 논쟁의 현장에서
  • 교수신문
  • 승인 2020.02.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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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선 교수

“본교는 숙명‘여자’대학교 입니까? 숙명 ‘여성정체성’ 대학교입니까? 아니면 숙명‘소수자’ 대학교입니까? 트랜스젠더 입학을 지지하는 분들께 묻습니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고정관념을 근거로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나누려는 시도에 강한 우려를 표합니다.” 찬반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명신관 앞 게시판이 대자보로 가득 찼다. 온라인 공간도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트랜스젠더 입학을 취소하라는 청원, 학칙을 개정하라는 요구까지 거셌다.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 학생은 스스로 입학을 포기하였다.

여성만 허용된 여대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은 설 자리가 없었다. 논쟁의 중심에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여대’ 레디컬 페미니즘 연합>과 소수자 인권의 측면에서 트랜스젠더를 수용해야 한다는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있었다. 한쪽은 “‘여대’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본 약자는 여성이고 트랜스젠더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대 캠퍼스에서조차 화장실에 불법촬영장치가 있는지 탐지결과를 올려야 하는 환경에서 트랜스젠더는 여성들의 안전할 권리를 위협하는 존재다.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겪어야만 하는 차별과 위협, 두려움을 트랜스젠더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은 본다.

한편 다른 쪽은 “진정한 페미니즘은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외된 여성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여대를 세웠고 그런 점에서 여대가 힘없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젠더 위계에서 차별받고 있는 여성들을 인재로 키우기 위해 여대가 있듯이,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게 트랜스젠더의 교육권을 지켜주는 일은 여대의 정체성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해외의 여대들도 이미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쪽의 주장과 반박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자신을 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면에서는 강자일 수도 있음을 잊고 다른 약자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숙대 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트랜스젠더 학생이 남긴 글이다. 갈등의 현장이 된 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젠더란 무엇인가? 한 사회가 사회문화적으로 길들이는 성, 태어난 성별에 맞게 ‘이래야만 한다’는 틀로 만들어지는 성이 젠더다. 트랜스젠더는 타고난 성과 성정체성이 맞지 않아 고민하다가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성전환수술까지 오죽하면 감행하는 이들이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 때문에 아직도 차별받는 여성이 있는 것처럼, 트랜스젠더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성정체성으로 우리 사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존재다.

“학교에서 유령이 되었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배제당하며 겪었을 트랜스젠더의 애환을 ‘정상인’들이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정상성, 당연함은 단지 그 정상성의 형태가 통용되는 집단에 소속된 이들만을 위한 가치다.” 『나와 타자들』에서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은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따라서 ‘정상’적인 여성이 아니기에 ‘당연’히 여대 입학은 안된다는 시각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어느 쪽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분법적 젠더 규범에 기반한 문화에서 트랜스젠더는 사각지대에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과연 군대에서, 여대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것이 답일까? 그런 점에서 이번 논란은 우리가 어떤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숙제를 던져 주었다. 대학은 다양성을 배우는 곳이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비판과 토론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는 사유의 공동체다. 자신이 경험한 것만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이유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타자의 문제에 공감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열띤 논쟁과정을 거쳐 정반합의 지혜를 찾아가도록 대학사회가 이 문제에 먼저 나서야 한다.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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