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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지 않는 의사는 반쪽짜리 의사다
연구하지 않는 의사는 반쪽짜리 의사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2.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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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해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Korea가 어디 있는지 몰랐고, 안다는 사람도 일본·중국 옆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다. (북한보다도 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작년 헝가리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 여러 사람이 내 명찰만 보고도 ‘Oh, are you from Seoul?’이라고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의 1년 국민소득은 4만 달러에 육박한다. 핸드폰, 자동차, TV 등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전자제품의 상당수가 세계로 수출된다. 불과 15-20년 전에는 변방 국가에 지나지 않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좋은 의사’ 혹은 ‘명의’라고 하면 뛰어난 기술로 어려운 수술을 해내거나 오지에서 땀흘리며 청진기를 목에 걸고 진료하는 의사를 떠올린다. 학술보다는 진료 활동(clinical practice)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정열과 헌신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를 달성한 지금은 그 다음 단계의 의료를 만들어가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약과 기술이 발명되고, 타 전문분야를 통합하여 진료하는 ‘융합의학’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의학 발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으며, 실제로 의학 연구에 참여해보지 않은 의사들은 타 기관의 연구 논문을 임상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20세기 중반까지 좋은 의사는 개인적이고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성공적인 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한 명의 뛰어난 의사보다 다양한 구성원이 모인 팀을 필요로 한다. 특히 암이나 뇌졸중과 같은 중증 질환일수록, 여러 보건전문가의 역량이 동시에 투입되고 팀의 능력이 치료의 경과를 결정한다. 의학이 고도화될수록 의사들의 역할은 좁게 귀결되는데, 치료전략 결정(clinical decision making)이 바로 그것이다.

IBM에서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 ‘왓슨’은 이러한 치료전략 결정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그 방대한 데이터는 사람이 쓴 수많은 논문에서 나왔다. 나는 한 명의 환자와도 20여 분의 면담을 통해 그 사람의 걸음걸이, 목소리, 성격, 대화의 흐름, 통증의 주관적 정도 등 많은 양의 정보를 흡수한다. 그러나 여기서 데이터화하여 적어낼 수 있는 수치는 채 10%도 되지 않는다. 결국 환자의 치료전략을 결정하기 위한 최적의 정보는 환자를 실제 만나고, 최신 의학정보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의사에게 있는 것이다.

현대 의학에 있어서 연구 역량과 임상적 역량은 거의 정비례한다. 의사의 역할 중 술기보다는 치료 전략의 결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이는 학술적 지식의 양과 그것을 처리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장에 나가지 않은 사람이 적을 이기는 법을 알 수 없듯, 자기가 연구해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연구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중증의 질환을 진료하는 의사인데 연구하지 않는 자는 반쪽짜리 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 들어 대학병원 뿐 아니라 대형병원에서도 의사들을 연구성과에 기반하여 평가하는 추세는 매우 고무적이다. 연구 잘하는 의사가 진료도 잘하고 못 살렸던 사람도 살린다. 앞으로도 더욱 일선 의사들에 대한 연구가 권장되고 지원이 확립되어, 대한민국이 세계 의학을 견인하는 리더 중 하나가 되기를 기대한다. 

 

임채홍
고려대학교 의료원에서 임상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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