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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7)] 자기 몸에 맞는 일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7)] 자기 몸에 맞는 일
  • 장성환
  • 승인 2020.02.2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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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 아저씨

이 아저씨 이야기는 꼭 소개하고 싶다. 그 아저씨의 여러 모습이 날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그 아저씨를 즐겁게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점에서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학교 근처 세차장이 있다. 그곳에 가는 까닭을 들자면 세차보다는 기름값이 싸고 출퇴근 때 들릴 수 있어서다. 세차를 자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기름 넣으러 갔다가 기다리는 차가 없으면 할 뿐이다. 그래서 세차 할인권을 준비해놓고 다닌다. 그 전 할인권으로 먼저 세차부터 하고 다시 할인권을 받는 식이다. 기름 넣는 도중에 다른 차가 세차하겠다고 들어서면 억울해서 세차를 포기한다. 더러운 성질이다. 
그 세차 아저씨도 성질이 더럽다. 야단도 잘 친다. 나도 많이 혼났다. 빨리 앞으로 달라붙지 않고 뭐 하냐, 차가 왜 이렇게 더럽냐, 자동으로 백미러가 꺾어지지 않느냐, 할인권 기한이 지났지 않느냐 등등이다. 
권위도 넘친다. 차를 앞으로 진행시키거나, 좌우로 틀거나, 바로 그 자리에 정지하라는 손동작에 절도가 넘친다. 앞으로 오라고 할 때는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고, 오른쪽 왼쪽으로 옮기라고 할 때는 손바닥을 펄럭거리고, 멈추라고 할 때는 주먹을 꽉 쥔다. 손으로 많은 말을 한다. 움직이라고 할 때는 나긋나긋하게, 서라고 할 때는 박력 있게, 그리고 세차 기계 소음 때문이겠지만 목소리는 크게. 
또 담배를 물고도 말을 잘 하니 신기하다.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서부극에서 짧은 시가를 입술 구석에 물고 인상 쓰는 것 같다. 작고 마른 체구에 주름살도 꽤나 있어 강해 보인다. 친절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있어, 너도 너의 일을 똑바로 해! 너는 나의 서부를 지나가는 역마차에 불과해! 
잘 보이려고, 재미있어서, 회의석상에서 받아온 과자, 사탕, 그리고 운동 후 남은 바나나를 아저씨께 가끔 드린다. 웃지도 않는다. ‘그래, 잘 먹겠소.’ 이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도 나는 그 아저씨에게 상납하려고 차에 과자를 챙겨놓는다. 덜 혼나려고, 한 대 안 맞으려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가 나와 비슷한 또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미 꼬리를 내린 몸, 나보다 어른으로 보인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대는 나의 주인. 
나는 칼 앞에 목을 내놓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로다. 그대는 나의 면도사. 
아저씨는 다리를 절며 다닌다. 태생인지, 사고인지 모르지만 내가 처음 볼 때부터 그랬다. 그것 때문인지 나는 그 아저씨에게 세차 일이 참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다시 신신당부한다. 제발 오해는 말라. 
직업이 있다는 것, 자기 몸에 맞는 일이 있다는 것, 사람이 모두 완전한 몸을 지닐 수는 없다는 것, 키가 크고 작은 사람이 있듯이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 그것뿐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우리도 미래의 장애인일 수 있다는 것도. 
만일 세차장이 없다면 그 아저씨에게 주어질 일이 얼마나 있을까? 숙명에 따른 직업을 믿지 않지만, 소명이라는 명분 아래 소시민을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타고난 기질이 있어 어떤 놈은 부리고 어떤 놈은 부림을 받는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아저씨에게 세차장만큼이나 남을 야단치면서 살 수 있는 업종이 있을까? 담배도 마음껏 물고 다니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말이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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