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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재난 속의 대학
국가적 재난 속의 대학
  • 교수신문
  • 승인 2020.02.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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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덕성여대 명예교수‘대학: 담론과 쟁점’ 편집인
윤지관
덕성여대 명예교수
‘대학: 담론과 쟁점’ 편집인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으로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각종 행사를 취소하고 개강을 연기하고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등 정부시책에 호응하고 있지만, 막상 개강 이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불안한 상황이다. 애초 대학개강의 연기는 전체 외국인 학생의 절반에 가까운 7만명이 넘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대거 유입이 초래할 혼란을 우려해서였다. 교육부에서 이들 유학생들에 대한 관리지침을 내려보내고 대학들도 대비를 하고 있지만, 과연 전문성도 재원도 부족한 대학들이 이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할 역량이 있는지부터가 불확실하다. 격리 수용할 기숙사 자체가 미흡한 데다 이를 관리할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인 유학생 관리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국면으로 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외국으로부터의 유입을 차단하는 일보다 국내의 발병을 관리하고 확산을 막는 것이 초점이 되는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만약 중국인 유학생이 관리대상이라면 대구 경북을 기폭제로 한 사회적 감염이 현실로 나타난 상황에서 대구 경북 출신의 학생들도 관리되어야 할 터이다. 나아가서 비단 이 지역 출신 학생들만 문제이겠는가? 국가의 통제정책에 최대한 협조해야겠지만 교실에서의 강의를 비롯한 수많은 모임들이 있기 마련인 대학에서 감염에 대한 봉쇄 차원의 대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과연 이 국가적 재난의 시기에 대학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전염병이 창궐한 알제리의 도시 오랑이 봉쇄되면서 조성된 각박한 환경에서 인간들의 삶의 양상들을 그려낸 카뮈의 [페스트]를 떠올린 것은 필자만이 아닐 법하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되었던 중국 우한시의 봉쇄조치가 그런 인간조건을 환기시킨 것이다. 페스트는 결국 물러나지만, 언제 감염될지 모르는 환경에서 인간들의 이기주의와 상호불신과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을 카뮈는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에 맞서서 인간다움과 삶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겪는 곤경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연대와 공감의 힘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부에서 총력대응 중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3월 중에 진정되지 않더라도 대학의 개강을 무한정 미룰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에 하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기가 시작되면 대학의 통상적인 활동들조차 크게 위축될 것이 예상된다. 여기에 대학에서 감염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교실환경은 물론 교육 및 연구현장들이 타격을 입을 것은 자명하다. 현재의 역학조사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최악의 경우 캠퍼스의 여러 기구들, 나아가서 대학 자체의 폐쇄조치조차 감수해야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 속에서 대학은 어떻게 이 혼란에 대처할 것인가?

사태 전개에 따라서는 감염의 사회적 확산이 일상화되는 경우 한국 사회는 카뮈의 오랑시와 같은 인간조건 속에서 사회 내부의 분열과 차별, 그리고 상호불신과 혐오가 기승을 부릴 여지가 없지 않다. 실상 타자에 대한 경계와 불신, 그리고 혐오의 요소들이 이번 사태의 저변에 부글거리고 있다는 것은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을 비하하는 반응이 서구에서 일반화된 데서도 드러난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인 한 설혹 코로나 감염자들이 학생 등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 속출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대응해야하고, 증오나 혐오가 아니라 동감과 연대의 분위기가 캠퍼스를 지배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사회전체의 문화를 성숙시키는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국가적 재난이 국민 대다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소외되고 취약한 계층에게 더 위험스러운 질병이라는 점에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환기시키고, 상호불신과 혐오와 차별의 부정적 문화를 폭로하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사회에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대학에서도 서로 간의 경쟁과 차별과 혐오가 부각되고 공유의 가치가 무너져 있다는 자조섞인 비판도 무성했다. 어떤 점에서 대학은 이번 사태를 통해 과연 대학의 본령으로서의 공동체적인 의식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를 심문하는 시험대 앞에 서 있는 셈이다. 국가적 재난 속에서 대학의 진정한 사회적 책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정신을 지키는 보루가 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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